쟁신과 양신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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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신과 양신

2015.02.16


친구는 쟁우(諍友) 닐우(友) 적우(賊友)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쟁우는 모든 일에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정의(情誼)로 친구를 권유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닐우는 아첨하기를 좋아해 편할 때는 합류하지만, 위기에 처하면 등을 돌리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적우란 사사로이 무리나 짓고, 나쁜 짓을 일삼는 간사한 자를 말합니다.

신하도 친구와 마찬가지로 쟁신(諍臣) 닐신(臣) 적신(賊臣)으로 구분합니다.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 때 안영(晏, ?~기원전500)은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상이자 쟁신으로 꼽힙니다. 그는 하루에 임금의 잘못을 세 번이나 지적한 일화로 유명합니다. 명군은 아니지만 경공은 그런 안영을 처벌하거나 죽이지 않은 처사로 평가를 받는 왕입니다.

어느 날 지방순시 중 경공이 “만약 옛사람들이 모두 장생불로했다면 지금 어떤 상황일까?” 하고 묻자 안영이 대답했습니다. “죽음은 인의(仁義)의 사람에겐 영원한 안식이고, 불인한 사람에겐 영원한 제재(制裁)입니다. 만약 옛 사람들이 모두 죽지 않았다면, 제나라의 정공(丁公) 태공(太公)은 아직도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을 것이고, 환공(桓公) 문공(文公)은 그들을 보좌하고 있을 것이며, 대왕께서는 아마 삿갓을 쓴 채 농기구를 들고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경공은 이 말을 듣자 화가 나서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잠시 후 양구거(梁丘據)가 수레를 몰고 달려오는 것을 보고 왕은 “양구거는 나와 가장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고 칭송했습니다. 안영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임금이 단맛을 볼 때 신하는 쓴맛을 느껴야 하고, 싱거운 맛을 볼 때 짠맛을 느낌으로써 상호 보완을 이루어야 합니다. 양구거는 임금이 단맛을 볼 때 자기도 단맛을 같이 보면서 아부를 일삼고 순종만 하니, 그것을 어찌 조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왕의 안색이 크게 일그러졌습니다.

저녁때 서쪽 하늘에 혜성이 나타나자 왕은 대신 백상(伯常)을 불러 혜성이 가져올 재난을 막을 기도를 올리게 하려 했습니다. 안영이 극구 말렸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나랏일은 돌보지 않고 간사한 무리와 가까이 지내며, 음주나 여색만 즐기고 있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문예를 진흥시키고 간언을 널리 받아들여 덕정을 베풀면 사람을 시켜 기도를 드리지 않아도 혜성은 스스로 사라질 것입니다.” 왕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안영이 죽은 지 16년이 지난 어느 날 경공은 신하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습니다. 왕은 주흥이 올라 즉석에서 화살로 과녁을 쏘았습니다. 화살이 빗나갔는데도 신하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습니다. 왕은 불쾌한 표정으로 활을 팽개치면서 “안영이 죽은 뒤로 다시는 나의 과오를 지적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왕의 노여움을 무릅쓰고 직언을 한 안영에 대한 그리움을 경공은 잊지 않았습니다. 

당(唐) 태종(太宗) 때의 명신 위징(魏徵, 580~643)은 또 신하를 양신(良臣)과 충신(忠臣)으로 구분했습니다. 양신이란 자신은 후세에 추앙받는 명성을 얻고 군주에게는 성군이라는 훌륭한 칭호를 받도록 하며, 자손 대대로 그 가계가 이어져 복을 누리는 신하입니다. 충신은 자신은 물론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군주는 폭군으로 떨어지고 나라도 가문도 멸망하며, 다만 충신이었다는 이름만 남긴 신하입니다.

태종 6년 어떤 자가 위징이 자신의 친척을 불공정하게 감싼다고 참소했습니다.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나 태종은 조사관을 시켜 “앞으로는 본심을 분명하게 밝혀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말도록 하라”고 위징에게 전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위징은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군신이나 상하가 남의 평판만 따른다면 나라의 흥망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라며 왕의 지시가 옳지 않다고 직언했습니다. 

왕은 자세를 가다듬고는 “내가 앞서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한 뒤에 곧 그것을 후회했다”며 “앞으로 숨기거나 거리끼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격려했습니다. 위징은 앞서 설명한 충신과 양신의 다른 점을 언급하면서 “아무쪼록 폐하께서는 저를 양신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바랄 뿐, 충신으로 만들려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고 간청했습니다. 

뒷날 태종이 “요즘 조정의 신료들이 아무도 의견을 말하지 않는데 그 까닭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위징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직 충분히 신임을 받지 못하면서 간하면, 듣는 측은 자기를 헐뜯는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또 신임을 받으면서 간하지 않는 것은 국록(國祿)만 축내는 도둑놈이라고 매도합니다.” 그는 군주에 대한 간언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위징은 이어 사람마다 재능이 달라 무기력한 사람은 충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못하고 친밀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말을 안 하며 벼슬자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무심코 말을 했다가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워질까 봐 말을 아낀다며, 어느 경우든 입을 다물고 상사에게 거슬리지 않게 동조함으로써 그날그날을 무사히 넘기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총리 인선을 놓고 여야는 물론 온 나라가 시끌벅적합니다. 경찰 고위직과 도지사에다 3선 국회의원으로 여당 원내 대표까지 오른 이완구 후보자는 큰 결격사유는 없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청문회를 전후 해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흠집투성이로 드러났습니다. 박사학위 논문 표절, 부동산 투기, 병역 면탈, 구시대적 언론관 등 앞서 낙마한 어느 총리 후보 못지않은 ‘스펙’을 갖추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첫째, 이 나라에 과연 흠결 없는 인물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5,000년 역사를 면면히 이어 오면서 5,000만 명에 이른 인구 중에 재상감 하나 고를 수 없는 나라가 됐으니 말입니다. 흠이 있어도 선출직 국회의원은 괜찮고 행정부 총리는 안 되는 논리라면 각종 선거 제도는 합리적인지도 궁금합니다. 대의정치의 모순입니다.

둘째, 정치적 타협이나 여당 단독 처리로 그런 사람이 총리가 되더라도 과연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고 국민을 계도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이 남을 탓하면 똥 먹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 될 테니까요. 제 허물은 덮어 둔 채 할 말을 다 하고 권한도 행사하는 ‘책임 총리’ 노릇 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독 총리’로도 맛이 떨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셋째, 언제까지 식상한 정치 놀음에 나라와 국민이 휘청거리고 허우적대야 할지 암담합니다. 사람의 자격은 양심과 도덕으로 형성되고 법으로 규정된다고 봅니다. 고함치고 윽박지르거나 감싸고 덮으려는 천박한 싸움보다 아예 고위 공직, 의회 의원, 자치단체장 등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을 법으로 규정해 놓으면 어떨까요. 국민의 4대 의무를 근간으로 삼으면 되겠지요.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일수록 엄격한 잣대로 평가해야 하니까요.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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