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써 말이 많으니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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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써 말이 많으니

2014.12.12


역대정부에서 공직후보자의 과거 언행이 검증 과정에서 드러나 낙마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박근혜 정부 3년 차인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전 국민을 비탄에 몰아넣은 세월호 참사 수습의 일환으로 새 총리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난맥상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신문사 주필 출신인 문창극 전 후보는 교회에서의 강연 등이 문제가 되어 낙마했으니 ‘글’로써 흥했다가 ‘말’로 침몰한 경우였지요.

문 전 총리 후보자는 그 이전의 언행뿐만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해명하고 호소하는 과정에서도 말실수를 거듭했어요. 당시 주목한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요. 이를테면, “세월호에 내가 탔더라면 몇 명은 구했을 거”라고 말했어요. 희생자를 안타까워하고 유족을 위로하고자 하는 심정에서 한 말이겠거니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었어요. 열악한 상황에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하려고 노력을 기울였던 관계자와 민관군 잠수사를 모욕하는 뜻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말이었거든요.

문 전 후보자는 사퇴 성명도 변명과 합리화로 일관해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나의 사퇴로 나라의 화합과 통합에 대한 갈등이 심화됐다”는 말도 했지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 자신이 ‘나라의 화합’과 ‘통합’에 어깃장을 놓고 국민을 윽박지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사리에도 맞지 않고 선후도 뒤집는 말이었지요. 다른 누구도 아닌 국민에게 책임을 미루는 오연함보다는 “부덕의 소치로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점을 사죄드린다”고 ‘쿨’하게 물러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공인의 말실수 퍼레이드는 이어집니다. 한 패션그룹 총수인 적십자사총재가 국감 불출석을 따지는 의원들의 질타에 “국제정치학을 전공해서 (국내) 정치는 잘 모른다” 고 한 말은 애교로 보아야 하나요? 집권당 대표는 개헌 필요성 발언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시기를 둘러싼 논란을 봉합한답시고 “대통령과 싸울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유머스럽게 한 말이겠지만, 무슨 병정놀이도 아니고 싸우긴 왜 싸워? 아니, 누가 누구와 싸운다고?

연말을 좀 조용히 넘기는가 했더니 최근 유출된 ‘국정개입 의혹 문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비선 실세 의혹이 일부 구체화됨에 국민은 적지 않은 충격과 상처를 입었어요. 그런데도 문건에서 거론된 논란의 당사자는 음모론을 펼치며 나라의 장래를 우려합니다. “그런 소문에 휘둘리는 나라가 걱정이다!” 대통령도 한 말씀 거드시는군요. “내가 겁나는 일이 뭐 있겠느냐?” 자칫 우리 사회의 상식과 국민 정서에 각을 세우는 느낌이어서 불편합니다. 당연히 국민을 무서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잘못 내뱉은 말은 손쉽게 삭제하거나 되돌릴(Delete& Reset) 수 없어 당사자와 상대방의 관계를 해칩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한마디 한마디마다 발언의 파장을 신중히 따지는 소양이 필요한 것 같아요. 특히 국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막말은 그 폐해가 사회 전체 구성원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니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말이란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또는 어떠한 상황과 조건 하에서라도 해야 할 말이 있는가 하면, 해서는 안 될 말이 있거든요. 같은 말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사람도 있고요. 지적 수준, 판단능력, 균형감각의 문제입니다. 시쳇말로 눈치, 코치, 멘탈의 문제이겠죠. 말에 대한 선인의 잠언은 오늘 날에도 맣은 것을 시사합니다.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외국어대 독어과 졸업. KAL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역임.
한국수필(2008, 수필) 신인상 . 시와문화(2011, 문화평론)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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