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소리 상소(上訴)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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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소리 상소(上訴)

2014.12.11


□ 지금으로부터 168년 전인 1846년 평안도 용천(龍川) 기생 초월(楚月)이 헌종(憲宗) 임금에게 시폐(時弊)를 통탄하는 108조목의 상소를 올렸습니다. 당시 초월의 나이 열다섯. 천애고아로 관기(官妓) 생활을 하다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를 다녀오던 심희순(沈熙淳)의 눈에 들어 그의 첩실이 된 초월은 남편의 품계가 올라감에 따라 당상관의 외명부(外命婦)인 숙부인(淑夫人) 직첩까지 받은 총명한 여자였습니다. 몇 대목을 옮겨 봅니다.

# 신하는 강도, 백성은 어육
좋은 얼굴을 한 큰 도적[好面大賊: 호면대적]이 조정에 가득하여 국사를 어지럽히니, 신하는 강도가 되고 백성은 어육(魚肉)이 되어 도탄에 빠져,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근심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밝고 신하가 곧으면 만사를 다 도모할 수 있는데, 지금 형용은 직임(職任)을 사고파는 탐관오리가 백성의 기름을 빨고, 좌수 아전이 나라 곡식을 훔쳐 먹는 세상입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원이니 한 번 민심을 잃으면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 사모 쓴 도둑이 너무 많아
전하께서 등극(1835년)하신 이래 조정의 사모(紗帽) 쓴 벼슬아치들을 살펴보면 다 용렬한 도적들입니다. 특히 고을 원의 책실(冊室: 비서)이 본관보다 한층 더 심하게 굴고, 고을 정사를 임의로 처결하니 아전들도 부지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요즘 각 고을 향장(鄕將) 사령(使令) 무리가 너무 많아 그 10분의 1만 줄여도 문서를 거짓으로 꾸미거나 국고를 축내는 폐단이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 이보다 260년 앞선 중종(中宗) 원년(1506년) 연산주(燕山主)를 내쫓은 반정으로 왕이 된 중종에게 사헌부와 사간원 홍문관에서 잇달아 상소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 용인의 잘못 이보다 심할 수 없어
옛날에는 덕 있는 사람을 작위에 올리고, 재주 있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름이 공적(功籍)에 들어 있으면 어질고 어리석음을 묻지 않고 시신(侍臣)이 되어 조정에서 거들먹거립니다.

젖내 나는 나이에도 부형(父兄)의 공에 기대어 벼슬을 얻으니, 용인(用人)의 잘못이 이보다 더한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근년부터 궁궐의 정치가 더욱 도리를 잃었습니다. 척속(戚屬)들의 사사로운 배알과 비자(婢子)들의 문안이 너무 잦고 요란하여 궁문이 저자와 같습니다.

# 구휼 아닌 국고 축내는 사창
사창(社倉)은 본래 가을에 곡식을 사들여 갈무리해 두었다가 춘궁기에 싼값으로 방출하여 백성을 구제하는 곳인데, 그 우두머리 사장(社長)이 공정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중 지독한 자는 제 것처럼 마음대로 써버리거나, 친구를 불러 술자리를 베풀어 날마다 마셔버리고는 “불이 났다” “도적을 맞았다”고 둘러대기도 합니다.

□ 재위 39년 동안 정승을 밥 먹듯 갈아치운 중종 22년(1527년)에도 대사헌 손중돈(孫仲暾)과 대사간 임추(林樞) 등이 인사의 부당함을 직언했습니다.

# 총신과 권력자는 교만해진다
삼가 듣건대 작상(爵賞)은 천하의 공기(公器)이므로 사적으로 친한 사람에게 내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왕후의 친정붙이와 인척들이 연줄을 타고 은혜받기를 희구하고 있습니다.

왕실의 지친이나 외척들에게는 공의(公意)가 시행되지 않는 것이 작금의 형편입니다. 무릇 사람이 임금의 은총을 받는 지위에 있으면 스스로 교만해지지 않는 이가 드뭅니다.

# 정승 자리는 국가 안위와 직결
정승을 임명하는 일은 나라의 큰일입니다. 사람을 잘 고르느냐 못 고르느냐에 따라 국가의 안위가 결정되므로 임금도 감히 독단하지 못하고 반드시 대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가 임박해도 마음이 결정되지 못하여 ‘갑’을 임명했다가 다시 ‘을’을 지명하여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아 보이므로 신 등은 매우 의혹스럽습니다.

□ 인조반정의 공신 원두표(元斗杓)는 효종(孝宗)이 즉위한 해(1649년) 국가 원로 자격으로 시폐를 개혁할 것을 진언했습니다.

# 직언 없는 것은 국가의 불운
바르고 강경한 말을 조정에서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더러 꿋꿋한 선비가 있어 서로 어긋남을 말하면 아첨하는 자들이 입을 모아 비난하고 배척하여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가령 조정에 크게 간사하고 교활한 자가 나타나서 ‘권력의 자루’[權柄: 권병]를 훔쳐 잡고 마음대로 휘두른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바른말을 하겠습니까. 조정에 ‘곧은 말’[直言: 직언]이 없다는 것은 나라에 정말 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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