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법이 있나요?"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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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도 법이 있나요?"

2014.12.05


지난 11월 중순 어느 날 저녁 서울 조선호텔 오키드룸에서 ‘제10회 영산법률문화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참석자는 100명 정도. 소규모의 시상식 분위기였지만 전(前) 헌법재판소 소장, 서울대 총장, 교육부 장관 등 사회적 비중이 높은 법률가들이 참석했습니다.  

초대 손님으로 참석한 나는 상금을 보고 놀랐습니다. 5,000만원이었습니다. 재벌 기업이 설립한 재단도 아니고 이름도 낯선 ‘영산법률문화재단’이란 곳에서 주는 상금치고는 매우 큰 액수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10회에 걸쳐 시상식을 가졌고, 양삼승 이사장을 비롯하여 쟁쟁한 법조인들이 이사진으로 있는 것을 보면 법조계에선 이 재단 활동이 꽤 많이 알려진 듯했습니다. 살펴보니 박용숙(작고)이란 여류 사업가가 출연하여 설립한 것이 ‘영산대학’이고, 이어 영산법률문화재단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재단이 법률과 관련된 공익사업을 하게 된 동기는 아마 설립자의 아들 부구욱 영산대 총장이 판사 출신이라는 배경과 연관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실 나의 관심은 재단보다도 수상자 장명봉 국민대 명예 교수였습니다. 장 교수의 수상 광경을 보며 마음속으로 속물적인 상상을 했습니다. 연구비나 출판 비용이 모자라 아쉬워하던 장 교수가 큰 상금을 받았으니 좀 숨을 쉬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상식적 기준에서 보면 장명봉 교수는 좀 특이한 법률학자입니다. 그는 40여 년 동안 상아탑에서 북한법만을 연구해온 사람으로 70대 나이지만 그 학문적 열정이 여전한 사람입니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이지만 법률인은 권력, 경제력, 권위 등에서 사회의 주류 집단입니다. 그러나 장명봉 교수의 북한법 연구 활동은 비주류 중의 비주류의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육법 중심의 화려한 법률가 경력을 쌓는 대신 거의 모두가 관심을 두지 않는 북한법 연구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한 해에 수천 명의 변호사와 법학도가 쏟아져 나오는 이 사회에서 북한법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법률가는 30명 정도가 고작이라고 합니다.

법률 문외한이지만 나는 장명봉 교수를 보면서 그가 북한법 연구의 선구자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장명봉=북한법’의 등식이 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산법률문화상 시상식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장명봉 교수를 보면 사람들은 “북한에도 법이 있느냐?”고 물어 온다고 합니다. 그날 시상식에서도 짓궂은 후배 법학도가 농담 삼아 ‘북한법’을 연구하는 장 교수를 희화한 즉석연설을 하여 좌중을 웃겼습니다.

통일은 국민 모두가 바라는 염원이고, 북한은 하루도 관심을 끄고 살 수 없는 대상입니다.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기우뚱거리는 걸음걸이를 놓고 방송은 며칠씩 떠들어대지만, 북한법을 놓고는 단 몇 분도 언급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다보니 북한에 법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거나 관심이 없습니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 전혀 쓸모가 없거나 참고할 만한 것도 없으니 북한법은 남한 사람들에게는 죽은 법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북한에도 법은 엄연히 있습니다. 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헌법도 있고, 금연의 해독으로부터 주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담배통제법’도 있습니다. 장명봉 교수는 40여 년을 북한법과 그 변천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학생 때부터 통일 문제에 관심이 참 많았습니다. 정부의 통일 관련 논문 공모에 1등으로 당선되어 그 상금으로 막걸리를 같이 마셨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 “왜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를 보고 출세의 길로 나가지 않느냐”고 우정 물으면 그는 아주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최상의 인생은 학문하는 것이고, 고시 공부해서 법조인이 되는 것은 차선의 인생이다."

통일문제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북한 문제가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북한법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렇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북한법을 들여다는보는 것은 마음속에서 흥미가 유발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보통 사람의 흥미를 못 끄니 연구비나 출판비 구하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장 교수는 꾸준히 북한법을 연구하여 책을 내고, 세미나를 열고, 북한법령집도 시대 변화에 따라 발간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이 노(老)교수의 서가에는 북한법 관련 서적으로 꽉 차 있을 것입니다. 그의 머릿속도 북한법이 들어차서 빈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북한법에 대해선 관심이 없습니다.

북한법이 빛을 받고 유용하게 될 날이 올까요? 보통 사람들은 별로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남북 간의 활발한 교류가 생기거나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게 되면 북한사회를 지배해온 법체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통일을 가정하더라도 북한 사람들을 지배해온 법체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남한의 법체계로 하루아침에 대체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문제도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장명봉 교수의 북한법 연구 40년은 통일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의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사치레하러 갔던 행사에서 영산법률문화재단의 존재를 알고, 장명봉 교수의 공적을 확인하게 되어 흐뭇했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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