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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비, 11월의 노래
2014.11.18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것들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섣달 그믐날 갈가마귀 우짖는 소리가 그럴 법하지만 들어본 적은 없으니 열외로 합니다. 주변에서 사례를 찾아보죠. 장마철 짐 부리는 이삿짐센터 특장차나 경적을 울리며 다급히 길을 헤치는 119구급차는 어떤가요? 아파트 좁은 복도를 걷는데 들려오는 억눌린 개 울음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이 외출하고 혼자 남겨져 그런 걸 거예요. 슈퍼마트 같은 데서 엄마 품에 안긴 채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아이 역시. 엄마랑 함께 있는데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 것인지?겨울을 재촉하는 비도 사람의 마음을 착잡하게 합니다. 지난 휴일 ‘언뜻’ 비가 왔어요. 11월 첫 주말도 비가 내렸죠. 그날, 그러니까 첫 일요일 저녁 일이 있어(없어) 오랜만에 세종문화회관 뒤 광화문 골목을 쏘다녔어요. 때마침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젖은 나뭇잎들이 치솟았다가 불온한 삐라처럼 천지사방에 흩뿌려져요. 그 옛날 상업은행 뒷골목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더군요. 생맥주집, 우동집, 생선회센터, 7080다방, 라이브카페 등등. 아니 변했다가 다시 옛 시절을 찾아가는지도 모르죠. 괴짜 헤비록밴드 ‘건스 앤 로지즈(Guns N’ Roses)’가 부르는 ‘11월의 비(November Rain)’라는 노래가 있어요. 11월이면 라디오에서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9분이나 소요되는 명곡입니다. 노래도 노래지만 뮤직비디오가 노래를 더욱 돋보이게 하죠. 행복한 결혼식장에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난장판이 되는군요. 화면이 바뀌어 결혼식장이 장례식장으로 변하며 노래는 절정으로 치달려가요. “가끔 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죠/ 우리 모두가 그러해요/ 어떤 것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아요/ 차가운 11월의 비마저도~”비가 그치면 겨울이 올 거예요. 아니 이미 겨울의 초입에 들었는가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짐승, 사물들은 어떻게든 겨울을 나겠죠. 스스로 실종돼 거리를 방황하든, 배낭을 베개 삼아 쪽잠을 자든, 구덩이를 파고 동면에 들든, 유빙(流氷)으로 떠내려가든, 아니면 가등(街燈)처럼 홀로 빛을 뿌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든. 그런데 겨울을 두려워하면서도 겨울을 기다리는 이 마음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원래 우리네 삶이 이중적인 면이 있는 터에 이랬다 저랬다 갈피를 잡을 수 없고 모호해서 그런 건가요? 살다보면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일 거예요. 몸이 아프기도, 마음이 스산하기도 하죠. 지금 그런 고통스런 상황에 놓여 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좌절의 늪에 한 발을 들여놓고 있을 때보다 절망 속에 침잠할 때가 오히려 더 안온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겨울엔 눈물도 얼어붙을 거예요. 몸이 고통스러우면 마음의 괴로움이 설자리를 잃어 견딜 만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최백호도 “가을엔 떠나지 말라”고 노래했나 봅니다.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라”고. 이래저래 가을은 위험한 계절! 계절이 계절인지라 록의 대부 신중현이 작사 작곡한 노래 ‘마른잎’을 자주 흥얼거리게 됩니다. 나직한 음성의 장현이나 짙은 허스키의 김추자도 좋지만, 유독 임아영이 부른 노래를 듣고 싶어요. 하이톤의 위태롭고 불안한 음색이 마음속 현(絃)을 건드리는군요. “마른 잎 떨어져 길 위에 구르네/ 바람이 불어와 갈 길을 잊었나/ 아무도 없는 길을 너만 외로이 가야만 하나~”박인수가 부른 소울의 명곡 ‘봄비’도 생각나네요. 이 가을에 웬 봄비? 하긴, 마음이 허한 사람에겐 봄비나 가을비나 마찬가지죠. 가자미나 도다리나, 노가리나 코다리나 그게 그거지예. 비운의 가수 박인수는 마약과 기행, 가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고, 요즘은 병고에 시달린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네요.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외국어대 독어과 졸업. KAL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역임.한국수필(2008, 수필) 신인상 . 시와문화(2011, 문화평론)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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