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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입니까?
2014.09.22
천금의 사례와 경상(卿相)의 자리마저도 거절하고, 가난한 생활에 구애되지 않고 대붕의 뜻을 펼친 자유인. 도가(道家)사상의 원류 장자(莊子: 본명 莊周, BC 4세기 중국 사상가)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 장주가 어느 날 쌀독이 바닥나 군수 자리에 있는 친구에게 쌀값을 융통하려고 먼 길을 갔습니다.내심 귀찮게 생각하면서도 그냥 거절하기도 곤란해진 군수는 둘러대는 말을 했습니다.“그래 좋아, 2~3일 안으로 영지에서 거둬들일 세금이 들어온다네. 그것이 들어오면 자네한테 300 냥을 돌려주겠네. 그때까지 기다려 주게나.”거액의 돈보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장주는 보기 좋게 거절하는 군수에게 한마디 뱉었습니다.“참으로 고맙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네.”그리고는 특유의 비아냥대는 투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그런데, 아까 내가 이리로 오는 도중에 나를 부르는 놈이 있었다네. 누군가 하고 돌아보니 길바닥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에 붕어가 한 마리 있지 않겠나.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데 빠져 통 움직일 수가 없어 죽겠으니, 물 몇 사발만 떠다가 나를 살려 주세요’라며 통사정을 하더군.”“나는 귀찮아서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네. ‘그래 좋아, 내가 지금 남쪽 지방으로 유세를 가는 길인데, 2~3일 후에 돌아올 때 서강의 물을 듬뿍 퍼다 줄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게.’ 그랬더니 붕어란 놈이 화를 벌컥 내며 ‘난 지금 몇 사발 물이 있으면 살아날 텐데 어찌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이오. 차라리 나중에 건어물집에서 내 시체를 찾으시오’라고 퉁을 주더군.”장주는 군수에게 “이거 방해가 많았네. 실례하겠네” 한 마디 던지고는 그곳을 떠났습니다.장주의 이 고사는 철부지급(轍之急)이라는 성어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 급한 사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학철부어(轍駙魚)라고도 합니다. 말라버린[] 수레바퀴 자국[轍]에서 숨을 할딱거리는 붕어[魚] 신세를 뜻합니다. ‘모든 일에는 때(timing)가 있다’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말입니다.때를 놓치면 실패하거나 풍비박산하고, 어부지리 당하거나 지리멸렬하기도 합니다. 전국시대 송(宋)나라 양공(襄公)이 때를 놓쳐 전쟁에 지고 자신도 전사한 송양지인(宋襄之仁) 고사가 좋은 예입니다. 적이 강을 반쯤 건너올 때 공격하자는 건의를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며 거절했다가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절박한 사안, 절대의 위기에는 시의적절한 대응이 있어야 합니다. 콩가루 집안이어서는 나라가 망합니다. 지금 정치권은 블랙 아웃(black out: 대 정전) 상태입니다. 야당은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두 차례나 파기하고 장외투쟁을 벌이다, 급기야는 내홍으로 평형수 없는 배가 되었습니다. 여당은 팔짱만 낀 채 청와대와 국회의장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온 국민의 마음이 저리도록 침묵만 지키다 국회의 민생 외면만 탓하고 있습니다. 입만 열면 외치던 ‘국민’과 ‘안전’은 뒷전인 채…. 이럴 때가 아닙니다.놀면 입이 심심해서인지, 도를 넘은 악담들이 널을 뛰고 있습니다. 새정민주연합이 ‘새 피 수혈’한 장하나 의원은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당신은 국가의 원수가 맞다”고 했습니다. 뒤이어 김경협 의원은 “히틀러의 니치즘에 저항하듯 국민이 대통령에게 저항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귀태(鬼胎)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홍익표 의원은 “정부와 여당은 최악의 패륜 집단”이라는 글을 띄웠습니다. 북한은 어떤데…. 이럴 때도 아닙니다.병영문화 개선을 한창 떠들고 있는 사이 곳곳에서 썩어 빠진 군의 참상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상급자가 여군을 성희롱하고, 철책을 지키던 문제 병사가 동료를 구타 살상하고, 특전사 중사가 부하 2명에게 전기고문을 하고, 고문관 병사에게 벌레를 먹이거나 가래침을 핥게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1군 사령관이란 작자가 위수지역을 벗어나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렸습니다. 북의 미사일이 펑펑 날아다니고 있는데도…. 이럴 때는 더욱 아닙니다.불량 부품 공급으로 원전이 정지되고, 온 국민이 절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한전 직원들은 공짜 전기를 써댔다고 합니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소요가 잠잠해졌나 싶더니 청도에서는 경찰서장이 추석에 반대 주민 6명에게 돈 봉투를 돌려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성범죄로 처분(감봉· 정직· 견책)을 받은 교사 절반이 아직도 교단에 있다고 합니다. 의사는 한 사람의 병을 고치지만, 선생은 수십 수백 명의 혼을 치유하는 자리인데…. 이럴 때입니까?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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