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출신 맏며느리, 릴리 씨의 행복한 추석나기

 


 

 

다문화가정 며느리 릴리(이주희) 씨

 

“Lilly, what is the best part of 추석 to you? (릴리 씨, 추석의 어떤 점이 가장 좋은가요?)”란 질문에 릴리(이주희) 씨의 대답은 ‘Family(가족)’이었다.

 

릴리 씨는 상부 미얀마(Upper Myanmar 또는 Upper Burma)의 친(Chin) 부족 출신으로 1996년 12월, 대한민국 땅을 처음 밟았다. 대한민국에 오기 전까지 그녀의 머릿 속에 ‘추석’이나 ‘Thanksgiving Day’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얀마에는 추석과 같은 명절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대한민국의 며느리로서 맞는 추석이 그에겐 더없이 신기하고 반가울 수밖에 없다. 다문화가정 며느리 릴리 씨의 추석은 어떤 모습일까.

 

그에 따르면, 미얀마에서는 대부분 가난한 가정이 많아 추수감사절을 즐긴다는 건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스럽고, 고향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보다 5배나 더 큰 국토를 이동하기가 쉽지 않아 명절 자체가 없다고 한다. 다만, 미얀마는 300개가 넘는 방언과 100개가 넘는 부족들을 보유한 ‘다문화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국가인 만큼 각 부족들마다 특유의 명절을 즐긴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역마다 부족이 한데 모여 부족의 역사와 현재의 성취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전통가요에 맞춰 가무를 즐기며, 소나 돼지를 잡아 요리도 해먹는 ‘친 내셔널 데이(Chin National Day)’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추석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함께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단위이다.

 

우리나라에선 추석 때 가족 단위로 명절을 즐기는 반면, 미얀마에서는 부족 단위로 축제를 즐기고,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에는 다른 부족의 사람들도 초대해 함께 즐긴다. 그러기에 한 가족이 한데 모이는 대한민국의 추석은 릴리 씨에게 더욱 ‘색다른 축제’ 같은 느낌이다.

 


다문화가정의 며느리 릴리 씨가 생각하는 추석은 어떤 모습일까.

 

“솔직히 말하면, 저의 첫 번째 추석은 조금 지루했어요.”

 

1997년 9월, 한 목사님의 집에서 혼자 생활하던 릴리 씨는 기독교 방식으로 상을 차리고 예배를 드리는 목사님 가정의 추석맞이 모습을 첫 추석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굳이 멀리까지 찾아가 한데 모여 함께 송편을 빚거나 전을 부치고, 둘러앉아 밥을 먹는 모습은 릴리 씨에게는 참 생소한 장면이었다.

 

목사님의 친척들 중 그 누구도 영어를 사용하지 못했고, 릴리 씨도 당시에는 한국말 소통이 원활치 않았기에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자신을 가족처럼 여겨주는 가족들의 모습에 릴리 씨도 조금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듬해인 1998년 맞은 릴리 씨의 두 번째 추석은 현재의 남편과 결혼을 한 뒤였다. 한 가정의 며느리로서 직접 준비할 게 더 많아진 명절이었지만, 가족의 온정이라는 것을 더욱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기에 추석의 의미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여전히 의사 전달에 불편함을 느꼈지만, 그녀를 많이 배려하고 사랑해준 시어머니와는 어렵지 않게 소통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그녀를 전통시장에 데려가 차례상에 올릴 재료들을 구입하고 상을 차리는 법을 일일이 가르쳐줬다.

 

시어머니가 준비하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본 릴리 씨는 “정말 많은 친척들이 오시는 줄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 모든 음식들이 차례상을 위한 것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웃음지었다.

 

모든 창문과 문을 열어놓고 차례를 지내며 조상님을 기다리는 가족의 모습에 릴리 씨는 미얀마의 비슷한 풍습인 ‘낫츠(Nats)’를 떠올렸다고 한다.

 

거실에 한데 모여 식사를 한 뒤 가족끼리 담소를 나누고, TV에서 방영되는 특선영화도 보고...그녀가 들려주는 추석의 기억은 우리가 경험한 그것과 꼭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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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씨는 “오랜만에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 정을 나눌 기회가 되는 추석이란 명절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릴리 씨는 “제가 맏며느리이기에 대부분의 음식을 도맡야 만들어야 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시어머니께 배워 한국음식을 하나하나 만들어내는 것이 너무나도 즐겁기만 했죠.”라며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니 오히려 뿌듯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랜만에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추석이란 명절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큰 축복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다문화가정과 며느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저는 대한민국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참으로 행복했어요. 대한민국 땅을 밟은 순간부터 저는 이미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추석과 같은 명절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정말 시어머니가 귀찮아하실 정도로 여쭙고 또 여쭈어서 한국의 문화에 대해 정확히 알려고 노력했어요.”

 

“요즘에는 한국 사회에도 다문화가정이 참 많이 늘었어요. 한국의 전통문화가 아직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문화를 자신의 문화라고 받아들이고 사랑해 보세요.

 

그 과정에서 고향의 전통문화를 엮어 익숙해지도록 노력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구요. 어떤 방법으로든 한국을 사랑하세요. 한국 사회, 한국의 가정에서 살아가는 당신은 이미 한국인이고, 그 모든 것이 가족을 위한 일이니까요.”

 

릴리 씨는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상담코칭학을 배우고 있는 대학원생으로 학생, 부부, 이혼한 다문화가정 여성, 이주노동자 등 한국 사회에서 상담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에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녀는 상담과 코칭을 전공하는 교수가 되어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다문화 며느리뿐 아니라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꿈이다.

 

다정다감
정책기자단|권다빛
tabithakw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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