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에서 글쓰기(2)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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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에서 글쓰기(2)

2014.08.12


지난 7월 21일 자 칼럼 ‘뷔페에서 글쓰기(1)’가 소개된 후 몇 몇 독자들이 댓글로 격려해주시고 이메일로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글과 뷔페 음식이 닮은 것인지 미처 몰랐네요.” “정말 그러고 보니 그런 면이 있군요.” “본인의 글쓰기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꺼번에 다 먹어도 소화만 잘 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등.

질책성 비아냥도 있었지요. 일반 독자가 아니라 주로 필자를 아는 지인이나 친구로부터 들은 반응이었지만요. “그렇게도 할 일이 없냐?” “그러다 음식 다 식겠다.”  뼈아픈 지적도 있었습니다. “언제 철들래?”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그래도 부정적 언급이 무관심보다는 좋은 것 같습니다. 반어적 표현인 데다 ‘우정 어린 설복’으로 다가오니까요.

#4. 한 접시에 두 종류의 음식을 담지 않는다

지난 칼럼의 세 번째 항목 ‘한 접시에 산더미처럼 음식을 담지 않는다’와 같은 맥락입니다. 생선초밥과 탕수육을 함께 먹으면 무슨 맛이 있겠어요? 그밖에도 궁합이 맞지 않는 음식은 많습니다. 이를테면 피자와 육개장은 어울리지 않죠. 남녀 관계에 비유해볼까요? 결혼이란 것이 죽자 사자 좋아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꼭 서로 뜻이 맞아서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렇더라도 한 번 저지른 결혼을 되물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어지간하면 그냥 가죠. 하지만 뷔페 음식 고르는 것이야 내 주장대로 아니겠어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성질의 제재(subject matter)나 주제(theme)가 충돌하면 시너지 효과는커녕 서로를 해칩니다[同歸於盡]. 억지로 꿰맞춘 몽타주 포스터로는 눈 밝은 독자(bounty killer)를 피해가지 못합니다. 글이 갈팡질팡한다니까요. 격언에도 가르침이 있지만 ‘나무에 대를 접해서는’ 안 되죠. 우물물과 강물은 서로를 넘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필가 손광성 선생도 수필이론서에서 글의 일관성을 특별히 강조했나 봅니다. 언뜻 최백호의 노래가 들려오네요.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비라도 우울히 내려버리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5. 평소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찜하라

간만에 뷔페에 가서 실성 든 사람처럼 늘 먹는 음식을 산더미처럼 ‘쟁여’ 오며 뿌듯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심하게도. 그러니까 김치, 김밥, 된장국, 호박죽, 소시지, 족발, 베이컨말이, 잔치국수, LA 갈비(철 지난 지 오래라고요!) 같은 음식들을 지극정성으로 챙기더라니까요. 분위기에 따라서는 오래된 트로트 가요가 가슴을 헤집듯 새삼스럽지 않은 음식이 유난히 ‘땡기는’ 날도 있죠. 그래도 뷔페에서는 아니에요. 그런 음식들은 먹자골목이나 동네 주변 맛집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요.

글쓰기 작법에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쉬클로프스키(V. Sklovski, 1893~1984)로 대표되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주장에서 유래하는 기법인데, ‘무엇을 표현하는가?’보다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일상적인 언어를 거부하고 낯설게 표현하여 긴장을 유발하면 미적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본 것이죠. 한마디로 대상을 낯설고 새롭게 표출하여야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주장이에요.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부한 관점, 식상한 표현, 죽은 은유(dead metaphor)는 안 쓰니만 못하답니다. 나만의 고유한 발상과 참신한 표현이 글의 가독성을 높일 수 있지 않겠어요?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외국어대 독어과 졸업. KAL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역임.
한국수필(2008, 수필) 신인상 . 시와문화(2011, 문화평론)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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