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온탕 오가는 백년대계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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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온탕 오가는 백년대계

2014.08.08


한국인은 모두 교육 전문가, 입시 전문가라고 말을 합니다. 입시가 그만큼 중요한 인생사라는 뚯이죠. 2~3년 쯤 전에 길가의 재활용 분리수거장에서 중학교 국어 교과서를 주워 집에 갖고 가서 읽다가 놀랐습니다. 담장을 없앤 학교를 찬양하는 글이 교과서의 비교적 앞쪽에 삽화와 함께 길게 실려 있었습니다. ‘담장을 없애고 난 후 좋은 점이 무엇일까요’라는 식의 일방적인 질문도 보였습니다.

요즘 학교 모습이 어떤가요. 성추행이다 뭐다 해서 범죄의 표적이 되자 담장을 높인 학교에 인력이 배치되어 출입자를 감시하고 학교 주변에 모니터가 설치되었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운동장에라도 들어갈라치면 무엇으로 힘을 쓸까 걱정스런 연로한 보안관이 “왜 왔냐”고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학교 운동장을 동네 주차장으로 쓰자는 발상까지 나오던 나라입니다. 한치 앞을 못 내다보는 교육현장의 증거들입니다.

공원이 부족한 한국적 현실에서 운동장은 동네 사람들이 운동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학생과 교사 외에는 출입하지 못하는 외국의 예를 들먹일 것도 없이 운동장은 기본적으로 교육의 성역인 학교 고유의 것입니다. 너무 넓은 운동장이 탐난다면 운동장을 용도변경해야죠.

초중고교는 아니지만 세계적인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이화여대의 복합 캠퍼스가 떠오릅니다. 모임 때문에 몇 번 가 본 교정은 볼 때마다 참 예술적이어서 경탄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금남(禁男)의 역사적 교정이 관광지로 등장해 뭇 관광객의 무차별한 사진 촬영에 노출되는 것이 씁쓸합니다.

교육이 지표 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봅니다. 특목고와 자율형 사립고 논란도 그렇고 교육부의 방침에 순응한 듯 입학생의 25퍼센트를 차지하는 정시모집에서 논술을 폐지하고 100퍼센트 수능으로 선발한다는 서울대도 그렇습니다. 1997년 대학입시에서 논술을 도입한 것은 19세기 초 나폴레옹 시대에 만든 200년 전통의 프랑스 대입자격시험 바칼로레아 등의 창의적인 교육 방식을 원용하자는 목표였습니다.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문제처럼 평소에 깊게 탐구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교육을 본받자는 것이었죠.

논술 덕분에 활자이탈 세대인 대입 수험생들은 상위권 대학을 겨냥하며 교양서적과 신문을 탐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논술이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교육부 주장에 20년도 못 가 달달 외우는 주입식 암기교육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죠. 수능의 변별력을 보완하면서 나름대로 대학의 특성도 살리고 고교 교과과정 안으로 정착되어가던 통합교과형 논술을 흔드는 냉·온탕 왕복의 모습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당시에 교육부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교육부가 뭐 하는지는 국민들도 잘 모른다는 불만이었을 것입니다. 역사교과서 논쟁, 수능시험의 변별력 시비, 전교조 문제, 특목고와 자사고 논란, 학교 ‘왕따’와 폭력. 어느 갈등 하나 해결의 조짐은 안 보입니다.

성공회대 총장 출신인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최근 경기도 안산시의 신흥 명문인 동산고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여 교육부의 결정만 남겨 놓았습니다. 안산 동산교회 김인중 목사가 설립한 동산고는 해마다 서울대에 20~30명이 진학하는 학교입니다. 서울대 합격이 교육의 전부가 아니지만 일단 동산고는 경기도에서 수월성 교육에 가장 성공한 학교라고 평가받을 만 합니다. 이런 수월성의 ‘블랙홀’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여러 가지 잣대를 들이대 일반고로 평준화하려는 시도에 학부모들은 세종시의 교육부로 가서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답답합니다. 인권조례다 뭐다 해서 교사는커녕 경찰관들도 의심스런 젊은이조차 마음대로 조사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학폭’이 28사단 고 윤 모 일병 폭행 살해 같은 무서운 병영의 폭력으로 자라납니다. 교육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걸핏하면 어릴 때부터 공부만 강조해 인성이 안 키워졌다며 공부와 인성을 딴 세상의 것처럼 분리하지만 제대로 된 공부는 인성을 마땅히 포함하는 것이죠. 승객을 팽개치고 도주한 세월호 선원들, 선장 이준석, 유병언 사주와 그의 후계자라는 차남 유혁기는 누가 교육시켰나요? 세월호 침몰로 이 나라 교육의 실패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봅니다. 학력도 인성도 놓친 것이죠.

뻔뻔한 정치인들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민생’을 염불처럼 외면서 평준화를 주장하지만 제 자식들은 왜 비싼 국내 외국인 학교에 보내거나 외국행을 택하게 한 것일까요? 비교우위를 믿는 영악함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돈이 모자라 자녀를 외국에 못 보내는 부모들은 국내에서라도 좋은 교육을 실시한다고 믿는 학교에 자녀를 보낼 권리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아무리 학교가 못 크게 막는다고 해도 해외의 경쟁 학교들은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급부상하는 중국의 교육열은 폭발적입니다. 서울대를 없애면 교육의 모든 게 해결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를 없앤다고 미국의 하버드나 MIT, 영국의 옥스퍼드, 중국의 칭화대, 일본의 동경대 같은 명문대가 사라지나요.

우물안 개구리들처럼 글로벌 경쟁을 보지 못하고 ‘두더지 잡기’ 오락처럼 고개를 내밀면 때려잡으려는 식의 ‘교육 협박’은 미래지향적인 창조적 교육을 망치는 쇠망치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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