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에서 글쓰기(1)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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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페에서 글쓰기(1)

2014.07.21


별로 뷔페를 즐기지 않습니다. 왔다갔다 하는 것이 수선스럽고, 집에 돌아와선 꼭 라면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하지만 내 주장대로 살 수만은 없죠. 문우들과 함께 신촌의 학교 근처에 있는 뷔페에 들렀어요. 13층 스카이 레스토랑이어서 전망이 좋은 데다 점심 특가인지라 저렴하고 그런대로 구색을 갖춰 괜찮았답니다.

뷔페 음식에 빗대어 글쓰기(수필)를 연결해 보았어요. 찰나적인 영감이 내습한 것은 아니고 그냥 평소 해오던 생각을 적은 것이니 그러려니 하세요. 그러니까 대수롭지 않은 착상이자 ‘웃기는(웃기지도 않는)’ 깨달음을 나누고 싶단 말이지요.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1: 거리를 두고 전체를 조망해야  

뷔페식당에 들어서면 무엇을 하나요? 겉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영역을 확보합니다. 그다음엔? 쫓기듯 대충 아무 줄에나 끼어들어 'TV 동물 농장'에 나올 법한 훈련된 개처럼 잽싸게 접시를 낚아챈 다음 ‘탑돌이’나 ‘강강술래’를 시작하는 순서입니다. ‘아일랜드(음식을 차려 놓은 섬)’가 몇 개 있고, 무슨 음식이 차려져 있으며, 어떤 줄이 붐비는지 등을 살펴보지 않는단 말이지요. 뷔페 음식이 ‘해치워야 할 그 무엇’은 아닐 텐데요.

글은 또 어떻게 쓰는가요? ‘필(글감)’이 왔다고 무작정 펜을 든다고요? 아니, 그건 옛이야기입니다. 컴퓨터를 켜죠. 근데 그 순간 그 많던 생각들이 눈 녹듯 사라진단 말이죠. 그러면 다음 순서는? 딜리트 앤 리셋(Delete & Reset)입니다. 또 딜리트 앤 리셋. 그런 난감한 상황이 되풀이됩니다. 타임루프에 갇히지 않으려면 대충이나마 어떤 내용을 포함할지 골격을 짜고 글의 순서를 머릿속에 그린 후 시작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때그때 단상을 적은 메모지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필휘지(一筆揮之)’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무슨 동파(東坡) 소식(蘇軾) 같은 당송팔대가도 아니잖아요.

#2: 뷔페 음식에도 순서와 차례가 있다

뷔페 음식이 물론 고급 한정식이나 격식을 갖춘 코스 요리는 아니지요. 그러나 음식을 먹는 순서는 다를 바 없습니다. 대충이라도 차례를 지켜야 음식끼리 어긋나지 않아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거든요. ‘전채나 샐러드ㅡ>수프나 죽ㅡ> 찬 음식ㅡ>더운 음식ㅡ>가벼운 식사 대용 음식(김치말이 국수 등)ㅡ> 케이크와 과일 같은 후식ㅡ> 커피나 홍차 같은 음료’ 순입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랍니다. ‘서두ㅡ>발단 및 전개(본문1, 본문2, 본문3, 본문4, 본문5...)ㅡ>전환 및 절정ㅡ>결미’ 순으로 문단(음식 모둠)과 문단(또 다른 음식 모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변화가 있으며 나름의 질서가 잡혀야 하지요. 그래야 산만하지 않고 단정한 글이 됩니다. '옷'과 '글'은 아무려면 ‘선(線)이 살고 깔끔하게 떨어져야’ 입는 맛, 읽는 맛이 난다니까요.

#3: 한 접시에 산더미처럼 음식을 담지 말라

뷔페에서는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며 욕심내지 말아야 해요. 음식 어디로 도망가지 않거든요. 부족한 음식은 식당 측에서 계속 채워 놓습니다. 글쓰기에 응용하자면, 한 편의 짧은 글에 생각과 느낌, 산하와 사물, 자연 현상을 한꺼번에 거론하지 말란 말이지요. 산, 숲, 꽃, 시내, 강, 바다, 하늘, 구름을 모두 책임지려고 고심하지 말아요. 잘못하면 '왕십리'로 빠져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고요(이거 말이 되나요?). 장 콕토가 말하길, ‘비눗방울도 뜰을 한꺼번에 다 담을 수 없어 떠돈다’고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한 개의 글에는 한 개의 주제만 다루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두 개 이상의 주제를 배치하는 고난도 기법(서브플롯)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심조심. 강호의 절정고수나 시도해 봄 직해요.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로 시작하는 황진이의 시조가 그런 중의적(重意的) 표현의 예지요. 벽계수(碧溪水)는 마음에 둔 낭군, 명월(明月)은 황진이 자신이어서 자연 현상에 빗대 별리(別離)를 노래한 것입니다. 다음은 이어지는 구절입니다.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명월이 만공산할 제 쉬어감이 어떠리.’

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외국어대 독어과 졸업. KAL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역임.
한국수필(2008, 수필) 신인상 . 시와문화(2011, 문화평론)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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