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의 맏형 '현대건설'이 존중받는 이유

 

현대건설, 맏형이라는 이름의 무게

 

 현대건설을 재계에서는 종종 건설업계의 맏형이라고 부른다. 사업규모만 따진다면 현대건설에 필적할 만한 곳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항만 공사 등 오래된 업력, 그리고 건설업만으로도 회사채 시장에서 'AA-' 등급을 받을 수 있음을 입증한 데 대한 존중의 의미가 담겨 있다.

 

현재 회사채 시장에서 건설업은 그야말로 위기의 산업이다. 'A'등급 건설사도 단기자금 조달에서 두 자릿수 금리를 제시받는 상황이다. 국고채 대비 민평 3사의 가산 금리 상단이 언제 뚫려도 이상하지 않다. 자본시장에서 건설업의 가치를 지켜 줄 맏형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건설업계의 맏형 '현대건설'이 존중받는 이유
[출처: 현대건설]

 

 

레고랜드 직격타 맞은 건설업, 온몸으로 지킨다

현대건설은 6일 연합인포맥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초 계획했던 회사채 발행을 연기한 것은 채권시장의 건설업종에 대한 평가와도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자금부서 관계자는 "현대건설 채권발행 결과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동종업계 관계자와 투자자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지속적인 금리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비정상적 자금 경색 상황에서 시장평가 가격을 상회하는 고금리 조건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 맞는지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빚어진 고금리 상황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맥락은 거세되고 고금리 발행 기록만 남는다. 이렇게 되면 현대건설의 기업가치는 물론 건설업종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그대로 굳어질 수 있다.

 

연합인포맥스 발행사 만기별 크레디트 스프레드(4788화면)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현대건설은 자기 신용등급 대비 3년물은 0.6bp, 5년 물은 2.0bp 낮은 금리에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시야를 외부로 넓혀 보면 'A+' 등급인 다른 건설사는 회사채를 발행할 때 동일 신용등급에 비해 3년물 4.4bp, 5년물 5.3bp의 금리를 더 얹어줘야 한다. 이 등급의 다른 건설사는 3년물 6bp, 5년물 3.3bp의 가산금리가 형성됐다.

 

현재 'A+' 등급의 회사채는 국고채 대비 3년물은 190.5bp, 5년물은 215.0bp의 금리를 더 얹어줘야 한다. 같은 등급의 건설사는 여기에 추가 금리를 얹어 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것만이 아니다. 단기자금시장에서는 적정 스프레드가 실종됐다. 연기금 등 장기투자자가 빠진 자리를 자산운용사들이 채우다 보니 부르는 것이 값이다. 'A'등급 건설사 보증물이 두 자릿수 금리를 요구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최근 'BBB'등급의 한 건설사 회사채는 소액이지만 무려 연 60%대 금리에 거래돼 시장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칫 이런 시기에 우량 등급인 현대건설이 대규모 채권 발행에 나서면 그렇지 않아도 경색 국면인 건설업계의 자금난이 가중될 수 있다.

 

현대건설 자금부서 관계자는 "회사가 건설업계의 맏형으로 불리고 있는 만큼 금리 밴드 상단을 방어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며 "바이어 주도의 시장에서 건설업 기업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금성 자산 3조 원에 담긴 비밀

현대건설은 작년 말 별도 기준으로 3조414억 원의 현금 및 단기유가증권을 보유하고 있다. 2013년 1조 원 부근이던 현금성 자산은 매년 꾸준히 늘어 2020년 이후 3조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 그룹에서 인수한 이후 현대건설에 수시로 주문한 것이 안정적인 현금 보유였다. 유동성은 지금도 그룹에서 챙길 정도로 현대건설 재무의 핵심 지표로 자리 잡았다. 현대건설 정도의 신용을 보유한 기업에서 3조 원 수준의 현금을 굳이 보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

 

현대건설 IR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과거 리먼 사태나 금융위기 등의 경험을 통해, 외부로부터 자금 유입이 힘들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3개월은 버틸 수 있는 유동성을 보유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의 연간 매출액은 별도 기준으로 10조 원을 오르내린다. 월별 매출로 따진다면 9천억 원 정도, 그러니까 현대건설의 현금성 자산은 3개월 매출을 기준으로 형성된 셈이다.

 

 

현대건설 IR 관계자는 "기업 단위에서 통제할 수 없는 이벤트가 발생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이를 수습하는 데 짧으면 한 달 이내에 진행되기도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는 3개월은 걸렸다는 것이 회사가 가진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건설이 외부 결제에서 인색한 기업은 아니다. 현대건설 협력업체들은 결제 대금을 100% 현금으로 지급받는다.

 

현대건설 자금 부서의 다른 관계자는 "하도급계약 100% 현금 결제를 통해 협력사와의 상생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의 맏형 '현대건설'이 존중받는 이유
현대건설의 기념비적인 프로젝트 사우디 주베일 항만공사 현대건설 edited by kcontents

 

협력사와의 상생 프로그램도 업계 맏형의 다른 모습이다.

 

현대건설은 지난달 9일 동반성장위원회, 협력 중소기업과 '양극화 해소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임금 및 복리후생 지원, 임금지불능력 제고 지원, 경영안정 금융 지원 등 3년간 총 1천703억 원 규모의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내년 자금 운용에 대해서는 예단할 수 없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내년 투자금액은 아직 사업계획 수립 중이지만 예년과 같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여전히 채권 시장에는 건설업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지만 다행히 이달 1일 한전채가 민평 대비 낮은 금리에 발행하는 데 성공하는 등 안정을 찾는 분위기다. 정부에서 채권시장 안정펀드를 가동한 훈풍이 냉기를 조금씩 몰아내고 있다.

 

현대건설은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기업가치를 존중받는다는 전제하에 내년 1분기 이후에는 다시 발행시장을 찾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현대건설 자금운용 관계자는 "내년 1분기에는 채권 시장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며 "현대건설을 비롯해 건설업종의 기업가치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다시 살아난다면 자금시장을 다시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남승표 기자 spna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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