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경제] 한국 대표 석학 경제학자의 일갈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

 

“선진국들은 항상 사다리를 걷어찼다.”

 

   한국을 대표하는 석학으로 불리는 공학자 겸 경제학자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가 수년째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한국이 재도약할 비책을 내놓으며 한 말이다. 먼저 지붕 위(선진국)에 도달한 나라들이 후발주자(개도국)가 못 올라오게 사다리를 걷어차는 일이 반복돼 온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번엔 기필코 한국이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선진국과 한국 같은 후발국의 차이점 알아야 해

자유무역 아닌 보호무역 병행해야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

 

김 명예교수는 1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주최로 열린 조찬포럼에 연사로 나섰다. 그는 올해 4월 후배인 김연배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한국의 시간 : 제2차 대분기 경제 패권의 대이동’이란 책을 펴낸 바 있다.

 

 

 

유럽의 소국 네덜란드는 17세기 세계의 패권국이었다. 라인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해상교통로의 요지에 자리잡은 네덜란드는 그 시절 유럽 전체 무역용 선박의 무려 75%를 보유할 정도로 상업이 번창해 막대한 국부를 쌓았다. 김 명예교수는 자유무역에 힘입어 영원히 영화를 누릴 것 같았던 네덜란드가 어떻게 영국한테 패권국 지위를 넘겨줬는지 설명했다.

 

“후발국은 내생적 성장만으로는 선발국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무역, 그리고 고율의 관세 부과 같은 산업정책을 동원해 외생적 성장을 해야 합니다. 당시 후발국이던 영국이 바로 이렇게 해서 네덜란드를 제압하고 패권국이 됩니다. 일단 패권국이 되자 영국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보호무역을 비판하고 자유무역을 주창합니다. 선진국이 된 이상 이제는 자유무역이 영국에 더 유리해졌기 때문이죠.”

 

김 명예교수는 자유무역이란 엄밀히 말해 무자비한 ‘무차별 무역’에 가깝다고 규정했다. 어른과 어린이가 똑같은 규정에 따라 게임을 하는 형국이란 뜻이다. 자유무역 체제 아래에선 선진국이 후진국을 이길 수밖에 없다. 세계사는 먼저 선진국이 된 나라들이 ‘게임의 룰’을 슬쩍 바꿔 후발 개도국들의 선진국 클럽 가입을 어렵게 만드는 행태가 꾸준히 이어져 온 것이라고 김 명예교수는 강조했다.

 

“영국이 앞장서고 나서자 미국이 그를 따라했습니다. 미국, 영국 같은 선발주자한테 독일, 일본 등 후발주자들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 바로 세계대전입니다. 전쟁을 통해 선발국이 후발국을 제압했습니다. 그렇게 제압을 당한 나라들 중 세계대전 이전부터 막강한 기술력을 쌓아 온 독일과 일본은 ‘동반성장’을 내세운 미국의 패권 아래 기어이 선진국 클럽에 합류합니다. 오늘날의 G7(주요 7개국) 체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 대만 등 다른 후발국은 그 안에 못 들어가고 있죠. 선진국은 항상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김 명예교수는 G7으로 대표되는 선발국, 그리고 한국 등 후발국의 차이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미 선진국 울타리 안에 들어간 나라들은 자유시장의 이점을 최대한 누리며 내생적 성장을 할 수 있지만 후발국은 자유시장에 정부의 개입, 즉 산업정책을 더한 내·외성적 성장의 길을 택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김 명예교수는 “나는 성장론자가 아니고 분배와 복지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며 “다만 복지는 반드시 지속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경제가 충분히 성장해야 분배, 그리고 복지도 뒤따라온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속 불가능한 복지는 포퓰리즘이요, 나라를 망치는 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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