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불안요인 인플레이션[허찬국]

 

 

묵직한 불안요인 인플레이션

2021.11.09

 

■ 짜장면 값과 인플레이션 이모저모

공산품, 서비스 요금 등 여러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요즘 회자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1970, 80년대 높은 인플레이션을 체험했던 사람들에게는 폐해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인플레이션을 겪어보지 못한 독자를 위해 짜장면 값을 예로 봅시다. 매년 10%씩 오르면 7년 후에는 가격이 두 배가 됩니다. 짜장면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알바생의 월급이 매년 같은 폭이나 그 이상 오른다면 짜장면 점심이 비싸다고 느끼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점심 메뉴가 저렴한 라면으로 바뀌겠지요.

 

인플레이션으로 생활비가 오르니 경제의 악의 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물가가 오르면 같은 액수의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적어지기 때문에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하지요. 우리의 알바생이 내년에 받기로 하고 친구에게 5천 원짜리 짜장면 두 그릇 값(만 원)을 올해 빌려줍니다. 만약 한 해 사이에 물가가 오르면 내년 돌려받은 만원으로 짜장면 두 그릇을 못 사게 됩니다. 빌려주었던 돈의 구매력을 유지하려면 이자를 받아야 하겠지요. 연간 물가상승률이 높을수록 이자율도 높게 됩니다.

 

 

굳이 득실을 따지면 빚을 진 채무자가 유리하지요. 연금 생활자와 같이 물가와 무관하게 수입이 고정된 사람이 대표적으로 피해를 보게 됩니다. 채무자가 사회적 약자이니 인플레이션이 사회정의에 좋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입니다. 돈을 빌려주는 전주(錢主)는 앞으로 물가가 올라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걸 감안해서 이자를 요구합니다.

 

1960, 70년대에 물가상승률이 20%가 넘고 시중금리(회사채수익률)도 30%에 육박했던 해가 많았습니다. 금년 7월 현재 법으로 정한 우리나라 최고금리가 20%입니다. 당시의 높은 인플레이션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모든 전주를 고리대금업자로 만든 것이지요. 이래도 민란(民亂)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빠른 경제성장으로 일자리가 풍부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보통 정부가 빚이 제일 많은 채무자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정부가 진 빚의 실질적 부담, 즉 앞의 예에서 본 짜장면 몇 그릇으로 따져 갚아야 할 상환 부담이 줄게 됩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부채가 커지면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높아진다고 봅니다.

 

■ 연지준의 테이퍼링(tapering)과 한국의 상황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인 미국도 과거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 연방지급준비제도(이하 연지준, FRB)는 1980년대 초에 금리를 크게 올리며 매우 고통스런 불경기를 초래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교훈이 되어 인플레이션이 뿌리를 내리지 않도록 독립된 통화정책을 건실하게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FRB는 경기 회복 일변도의 적극적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금리를 영(0)% 가까이 낮추었을 뿐만 아니라 시중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시장에서 상당량의 국채 및 주택담보공채를 매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증유의 양적완화 정책은 물가가 안정되어서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올봄 이후 주요국에서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미국의 경우 6월 이후 3개월 동안 계속 전년 동월 대비 5%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FRB는 난처합니다.

 

지난주 파월 FRB 의장은 11월부터 양적완화를 줄이기 시작하는 테이퍼링을 시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매입하는 국공채 규모를 점차 줄여나가겠다는 것인데 발표된 추세대로 지속되면 내년 6월 양적완화가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현재의 물가 증가세가 단기적인 현상이며 실물 경제의 회복을 지원할 여지가 더 있다는 의견이 팽배한 가운데 나온 이번 발표는 연지준이 내년 여름까지 경제 상황의 전개를 보고 판단할 시간적 여유를 벌었다는 의미가 큽니다.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를 생각해봅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작금의 물가 상승세가 국제적 공급사슬망의 교란에 의한 한시적 공급 차질과 유가 상승에 기인한 것이어서 내년 봄쯤 물가가 안정되는 경우입니다. 이에 더해 실물 경제 회복과 고용 사정 개선이 뚜렷해지면 테이퍼링을 예정대로 진행하면 되겠지요. 그 후 금리도 지금 전망처럼 인상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금의 물가불안이 지속되며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 경우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의 속도는 실물경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실물경제가 건실한 모습이면 테이퍼링도 빨라지고 금리 인상도 지체 없이 이어질 개연성이 큽니다. 반면 실물경제가 부진한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뚜렷해지면 선택이 어려워지겠지요. 테이퍼링 종료나 금리 인상이 좀 늦어질 수 있습니다.

 

캐나다 등 몇몇 나라들은 이미 정책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영국, 호주 등도 조만간 참여할 전망입니다. 미국은 이들에 비해 더 신중히 징검다리를 두드리는 모양새인 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자리 잡기 시작한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는 의중이 엿보입니다. 내년 2월로 파월 연지준 의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것도 불확실성을 높이는 하나의 변수이지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요국들이 유동성 축소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내년 초쯤 되면 이런 정책 변화의 효과로 그동안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턱없이 올라간 자산 가격들이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저금리에 의존하여 빚을 내어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았지요. 시중금리 상승으로 부채 부담이 과도해지는 가계와 기업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일부 자산 가격도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내년 봄 정부가 바뀌는 시기라 대응책임의 주체가 애매해지며 불안이 증폭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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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2006 자유칼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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