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고’ 미국 증시 불구 한국은 왜 지지부진한가

 

‘반도체·중국’에 묶여 하락하는 한국 증시

코스피지수, 3000선에서 지지부진

 

미국 주요 주가지수들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한국 코스피지수는 3000선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힘을 못 쓰면서 미국 증시와 한국 증시의 탈동조화(디커플링)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시장과 탈동조화 심화돼

반도체 업황 악화에 중국 리스크까지 증시 발목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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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국 증시는 미국 증시를 따라 움직인다. 미국 주요 지수가 오르면 코스피지수도 오르고 미국 주요 지수가 내려가면 코스피지수도 내려간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미국 주요 지수가 상승해도 코스피지수는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탈동조화가 국내 증시의 산업적 특성을 반영한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한국 증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 등 산업이 최근 발생한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업종이어서 타격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또 소비재를 파는 기업들 위주로 구성된 미국 증시와는 달리 중간재를 파는 기업들이 주를 이루는 한국 증시의 특성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의 구조도 미국 주가지수와 코스피지수가 따로 움직이는 데 영향을 준 원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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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11%P 벌어진 한·미 증시… 10년 만에 최대폭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코스피지수와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차이는 10.11%포인트(P)로 2011년 2월 9.50%포인트 이후 10년 8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양 지수의 차이는 S&P500지수 등락률에서 코스피지수 등락률을 뺀 값이다. 10월 한 달 동안 코스피지수가 3.20% 하락했고 S&P500지수는 반대로 6.91% 올랐다.

 

지난달 코스피지수는 6개월 만에 3000선을 밑돌았다. 10월 1일 3056.21로 시작한 지수는 10월 29일 2970.68까지 하락했다. 반면 S&P500지수는 4317.16으로 시작해 4605.38까지 상승했다. 4주 연속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로 마감했다. 지난 2일(현지 시각)에도 S&P500지수는 4630.65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다시 바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공모주 등 일부 단기 수익을 낼 수 있는 종목들에 대한 투자가 아니면 한국 증시 수익률이 저조하다”라며 “차라리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수익률이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도체는 공급망 차질 영향, 한풀 꺾인 중국 경제도 한국 증시 발목

전문가들은 미국 증시의 호조를 한국 증시가 따라가지 못하는 주요 원인을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의 영향을 집중적으로 받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코로나 팬데믹 확산으로 재택근무 등 원격 시스템에 대한 수요는 급증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수요도 함께 늘었다. 그런데 반도체를 생산하고 판매하기 위해 필수 원자재를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실어 나르는 공급망은 이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반도체 생산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내년도 국내 반도체 기업의 영업이익 전망치(컨센서스)는 68조원이다. 7월말에 추산했던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가 82조원이었는데 3개월 만에 이보다 14조원(20.5%)이 줄어든 것이다.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증시가 지지부진한 근본적인 원인은 반도체 업종 중심의 내년도 실적 하향 조정”이라며 “반도체 업종이 코스피지수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 반도체 업종의 이익전망치가 내려가면서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전체의 내년 이익 전망치도 2% 정도가 하향 조정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신중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공급망 차질 문제에 더 취약한 반도체, 자동차, IT, 디스플레이 분야의 기업이 증시에 상장된 비중이 높아 공급망 훼손에 대해 더 큰 영향을 받았다”며 “미국은 상대적으로 공급망 문제에서 자유로운 금융이나 소프트웨어,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중국 경제가 슬로우 다운(경기 둔화)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중국과 한국 등 이머징마켓에 펀드로 투자하는 외국인 자금의 규모 전체가 감소해 한국 증시의 수급도 악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

한국 증시 상장 기업 중에 경기 사이클에 민감한 중간재 중심의 기업이 많고, 한국 경제가 최근 경제성장률 둔화를 겪고 있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도 한국 증시가 지지부진한 요인으로 꼽힌다. 소비재 시장은 경기 사이클에 시차를 두고 늦게 반응하지만 중간재 시장은 바로 반응하는 특징이 있다.

 

최근 중국 경제성장률(GDP)은 확연한 둔화세다. 3분기 GDP 성장률이 전년 동기보다 4.9% 성장했는데, 지난 2분기 7.9% 성장률보다 크게 둔화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부동산 가격하락 등 부동산 시장이 악화하고 있고, 최대 건설사 중 한 곳인 헝다(恒大·에버그란데)는 파산 위기를 겪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8%를 밑돌고 내년에는 5% 성장도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와중이었던 지난해 성장률(2.3%)을 제외하고는 최근 30년 사이 최저 성장률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은 중간재를 파는 기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형성돼 있어 경기 사이클에 가장 먼저 움직인다”며 “지난 2분기를 고점으로 해서 경기 사이클이 꺾인 상태”라고 했다. 정 센터장은 “미국의 경우 소비재 중심의 산업구조여서 경기 사이클에 우리보다 더 늦게 반응한다”며 “현재 미국 경제와 증시는 정점을 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손민균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 경제가 슬로우 다운(경기 둔화)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중국과 한국 등 이머징마켓에 펀드로 투자하는 외국인 자금의 규모 전체가 감소해 한국 증시의 수급도 악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오 센터장은 이어 “대(對) 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 비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로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도 중국 경제 둔화가 한국 기업들에 주는 부담으로 작동해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다만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나 정부의 기업 규제 강화 등은 최근의 코스피지수 하락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최근에 시장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크게 부각된 경우가 없었고 기업 규제 강화 등 정부의 정책기조는 최근 몇년 사이 지속됐기 때문에 최근 코스피지수 조정은 이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해용 기자

김효선 기자

이정수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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