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은 생명, 젖, 사랑입니다(1)[노경아]
미역국은 생명, 젖, 사랑입니다(1)
2021.11.03
“이마가 나오면서 귀 빠진 세상 첫날/폭염보다 무덥고 지독한 산통 끝에/ 겨운 몸 일으켜 앉아/ 첫국밥을 먹는다// 생일날 찰밥을 먹어야 덕이 있다고/ 삼신할매 지앙밥에 몸 풀고 다시 살아/ 고래도 새끼 낳으면/ 미역밭 찾아간다// 땀나고 터진 입술에 뼛속까지 헛헛한/ 첫국밥 한 사발에 허리 펴고 젖이 돌아/ 단전에 힘 들어가고/ 미루었던 잠을 잔다”
옥영숙의 시 ‘첫국밥’입니다. ‘첫국밥’ 하면 ‘탄생’ ‘생명’ ‘젖’이 떠오릅니다. 첫국밥은 아이를 낳은 뒤에 산모가 처음으로 먹는 국과 밥, 즉 미역국과 흰밥을 뜻합니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풍습을 기록한 이능화의 ‘조선여속고’에도 첫국밥 이야기가 나옵니다.
“임신부가 해산하면 민가에서 짚자리, 기저귀, 쌀, 미역을 장만해 놓고 첫국밥을 먹기 전에 산모 방의 남서쪽을 깨끗이 치운 뒤, 쌀밥과 미역국을 세 그릇씩 장만해 삼신(三神)상을 차려 바쳤는데, 여기에 놓았던 밥과 국을 산모가 모두 먹었다.” 귀한 아기를 점지하고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잘 키우고 순산시켜 준 삼신할머니를 위해 쌀밥과 미역국으로 정성껏 삼신상을 차리는 조상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우리에게 미역은 예나 지금이나 참 각별합니다. 집안에 임신부가 있으면 미리 미역을 준비하지요. 임신부가 몸을 풀고 나서 먹을 미역은 절대 값을 깎지 않습니다. 상인들은 미역의 중간을 자르거나 꺾지도 않습니다. 값을 깎으면 아기의 수명이 짧아지고 미역의 중간을 꺾으면 산모가 난산한다는 속설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미역은 생명과 맞닿아 있습니다.
25년 전 겨울 첫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는 소고기 미역국에 밥을 말아 떠 먹여주며 “지금부터 먹는 밥은 다 젖이 되는겨. 무통주사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도 애기를 생각해 팍팍 먹어야 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마는 50여 년 전 4킬로그램이 넘는 나를 낳느라, 세상의 빛이 꺼지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너무도 아파서 눈앞이 캄캄해졌을 때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답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엄마가 내뱉은 첫 마디는 “달우(우리 큰오빠 이름) 아부지, 정전이유? 애는 어뗘유, 손가락 발가락 다 괜찮쥬?”였다네요.
“그날 니덜 아부지가 끓여준 첫국밥이 어찌나 맛나던지, 단숨에 다 먹었지 뭐여. 그러고 나니 머리카락이 수북하고 살이 올라 뽀얀 애기 얼굴이 보이더라. 갓난애 같지가 않았어. 지금도 그 미역국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미역국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생일에도 “미역국 말고 니덜 좋아하는 올갱이(다슬기의 충청도 방언) 삶아서 호박, 부추, 아욱 넣고 끓여 먹자”고 합니다. 자상했던 아버지가 그리워 눈물을 흘릴까 봐 그러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20년 넘게 엄마 생신엔 된장을 풀어 끓인 올갱잇국을 먹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이달엔 구수한 미역국 냄새를 맡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험생이 있는 집에선 가족의 생일이 있어도 미역국을 끓이지 않을 테니까요. 시험에 떨어지거나 직장을 잃었을 때 '미역국 먹었다'라고 표현하잖아요. 이는 일제강점기 때 나온 말입니다. 당시 일본이 우리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을 때, ‘해산(解散)’이 임신부가 몸을 푼다는 ‘해산(解産)’과 발음이 같아 나온 표현이라고 합니다.
|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미역국에 대한 편견은 떨쳐버려도 좋을 듯싶습니다. 지난해 수능이 끝난 후 한 수험생이 쓴 글은 많은 의미를 던집니다. “수능 날 아침 엄마가 미역국 해주심. 엄마한테 화내려고 했는데 엄마가 ‘수능 못 쳐도 니가 못해서 못 친 게 아니라 엄마가 미역국 해줘서 망친 거라고 생각해’라고 말씀하심. 아침밥 먹다가 울었음. 수능장 입구에서 큰절하고 시험 잘 치르고 원하는 대학 붙었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 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 담당 연구원, 이투데이 교열팀장을 거쳐 현재 한국일보 교열팀장.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