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누구일까 [김홍묵]

 

 

‘그분‘은 누구일까

2021.11.01

 

내 님은 누구일까 어디 계실까

무엇을 하는 님일까 만나보고 싶네

신문을 보실까 그림을 그리실까

호반의 벤치로 가봐야겠네

 

1960년대 초반 권혜경의 노래 <호반의 벤치> 1절 가사입니다.

신문을 읽는 인텔리일까, 그림 그리는 예술가일까…낭만 가득한 호반(湖畔)의 벤치에서 환상의 ‘내 님’을 그려보는 여인의 상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노랫말입니다.

 

​가사는 이어집니다. 갸름한 얼굴일까, 도톰한 얼굴일까(2절) / 회사엘 나가실까, 학교엘 나가실까(3절)로. 혼기를 앞둔 처녀는 인생의 반려자가 될 낭군의 얼굴 생김새며 직업까지 오만가지 상념을 가슴 속에 수놓아 봅니다.

집안·학력·직장·봉급·재력·스펙·성격 등 온갖 함수를 대입해 보며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저울질하는 요즘 세태와 달리, 미지의 세계를 그려 보는 아가씨의 순애(純愛)가 호수에 물그림자처럼 비치는 모습입니다.

 

 

# 대장동 그분 범인인가 선인인가 가려야

 

그 아련한 가을 정취가 ‘그분’이 등장하는 바람에 여지없이 일그러져 버렸습니다. 민초들은 해안을 덮친 쓰나미, 산천을 태운 화마, 내 집을 앗은 폭풍, 논밭을 휩쓴 태풍 끝자락에 내팽개쳐진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성남시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불거진 윗선의 실력자 정도로만 알려진 채 끝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야당의 집요한(?) 추궁과 개혁한 검찰의 발 빠른(?) 수사에도 오리무중입니다. 개발을 설계하고, 집행하고, 거액을 챙긴 어느 누구도 아니라니 말입니다.

 

‘그분’은 ‘어르신’ ‘그 어른’에 버금가는 존칭입니다. 그자, 그 작자, 그치, 그놈(그년)과는 반열이 다릅니다. 훌륭한 상사나 인격자, 존경·사숙하는 사람에게 경의를 더해 붙이는 호칭입니다.

그런데 대장동 사건에 등장한 ‘그분’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배임, 뇌물, 직권 남용, 직무 유기, 조폭 연루 등 범죄 혐의자로만 이름이 오르내려서입니다. ‘그분’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으면 헐값에 땅을 수용당한 대장동 원주민과 천 배가 넘는 이득을 챙긴 개발업자 간의 불평등은 ‘착한’ 뉴 노멀(new normal)로 정착하고 말 것입니다.

 

 

# 또 존경받지 못하는 대통령 뽑아야 하나

 

정치판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호칭도 미친년 널뛰듯 합니다. “그년”(박근혜~ 이종걸 민화협 의장, 한·중문화협회 회장의 지칭), “쥐새끼”(이명박), “지팡이”(김대중) “놈현”(노무현), ‘돌’(전두환) ‘물’(노태우) “배달의 기수”(문재인)…. 국민의 안녕과 사회정의 구현, 세계 평화를 외쳐온 작자들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몇 해 전 원로 배우 김지미 씨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묘한 여운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남성 편력이 많았던 그녀는 “여러 남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누구였나?”는 질문에 이렇게 잘라 말했습니다.

“그놈이 그놈이더라.”

 

그놈이 그놈이란 그 나물에 그 밥,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대동소이(大同小異), 한식(寒食)에 죽으나 청명(淸明)에 죽으나와 같은 의미의 글귀로, 서로 비슷한 수준이어서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오줌 밭의 개싸움과 다를 바 없는 당과 후보들의 공방을 보면서 우리는 나라의 큰 머슴으로 또 그 나물에 그 밥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가 하는 자괴와 분노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처구니(큰 물건이나 사람) 뽑는데 그놈이 그놈이라니. 정녕 사랑하고 존경할 ‘내 님’, ‘그분’은 어디 계실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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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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