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놀이에 대한 추억[한만수]

 

전쟁놀이에 대한 추억

2021.10.21

 

요즈음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 시리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39개 국가에서도 상위권에 오를 정도입니다. 말 그대로 전 세계적인 증후군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에는 1960년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여러 가지 놀이가 나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든지 ‘달고나 뽑기’,‘줄 당기기’. ‘구슬치기’ 등의 놀이는 그 시절 골목이나 공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오징어 게임에 나오지 않는 놀이로 남자애들의 ‘전쟁놀이’와 여자애들의 ‘고무줄놀이’, ‘땅따먹기’나 ‘공기놀이’ 등이 있습니다.

고무줄놀이는 편을 갈라서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진 쪽은 둘이 고무줄을 잡고 이긴 쪽에게 노래를 지정해 줍니다.

 

 

“나리, 나리, 개나리…”

이긴 쪽은 노래를 부르면서 발목에 고무줄을 걸어 넘깁니다. 고무줄을 넘기다가 실수를 하면 다음 순서가 얼른 나가서 노래를 이어 부르며 고무줄을 넘기는 놀이입니다. 1단은 가볍게 고무줄을 뛰어넘을 수 있지만, 단수가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더해집니다. 그래도 번갈아 가며 고무줄을 넘다 보면 저절로 운동이 될 뿐만 아니라 재미도 있습니다. 물론 짓궂은 남자애들이 후다닥 뛰어와서 면도칼로 고무줄을 끊어 놓지 않아야 합니다.

 

남자애들이 즐기는 전쟁놀이는 일종의 서바이벌게임입니다. 나무로 만든 총이나, 칼 등을 갖고 노는 놀이치고는 긴장감이 넘치는 놀이입니다.

 

제가 살던 장터에는 모두 세팀이 있었습니다. 쇠전거리 근처에 사는 아이들끼리 만든 부대, 정자나무를 중심으로 골목에 사는 아이들, 그리고 제가 속한 장터 아이들입니다. 넓은 장터에서 ‘오징어 게임’이나 ‘십자 놀이’, ‘깡통차기’ 등을 할 때도 끼리끼리 어울려서 놉니다.

 


 

전쟁놀이도 자연스럽게 세 팀이 서로 싸우게 됩니다. 장터보다는 뒷동산에서 많이 하는 전쟁놀이를 하려면 일단 진지를 구축해야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지라고 하기보다는 일종의 참호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진지를 구축하려면 대장이 지시하는 대로 집에서 삽이나 괭이 등을 갖고 가야 합니다.

 

으슥한 숲이나, 흙이 잘 파지는 기슭에 사각형으로 진지를 만듭니다. 기둥을 세워 지붕도 만들고, 진지가 적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도록 나뭇가지를 꺾어 와서 위장도 합니다. 늦봄이나 초가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진지를 구축하고 났을 때의 그 뿌듯함은 저절로 배가 부를 정도입니다.

 

며칠 있다가 진지에 가보면 나뭇잎은 모두 시들어 있고, 바닥에 깔아 놓았던 가마니 위에는 솔잎이며 티끌이나 나뭇잎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 대장의 지시에 따라 다시 보수작업을 합니다.

 

또래들 중에서 비교적 덩치가 크거나, 나이가 한두 살 많거나, 잘사는 집 아이들이 차지하기 마련인 대장의 지시는 절대적입니다. 적군이 올 만한 장소로 가서 보초를 서라고 하면 나무로 만든 총을 들고 보초를 서기도 하고, 마실 물을 떠 오라고 하면 동네까지 내려가서 주전자에 샘물을 떠 옵니다.

 

 

“넷! 다녀오겠습니다. 대장님.”

동갑내기라도 대장한테는 반드시 존댓말을 써야 합니다. 지금도 어렸을 때 전쟁놀이를 생각하면 저절로 소리 없는 웃음이 나옵니다. 어른들에게 대장에게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전쟁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형들을 따라다니며 부대원이 됐고,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나름대로 법칙을 지켰던 것 같습니다.

 

전쟁놀이 방법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적군을 먼저 발견한 아이가 "탕탕!" 하고 총소리를 내면 반드시 "으악" 하며 땅바닥에 쓰러져야 합니다. 체포할 때는 적군을 먼저 발견한 아이가 ‘손들엇!’이라고 고함을 지르면 얼른 두 손을 번쩍 들어야 합니다.

 

적군을 체포해서 진지로 데리고 갈 때도 체포당한 쪽은 두 손을 들고 앞장섭니다. 체포한 아이는 심각한 얼굴로 등을 쿡쿡 밀어가며 진지로 갑니다. 포로들은 진지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양지쪽에 세워두거나 새끼줄로 구분을 해 놓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칼싸움도 비슷합니다. 나무가 몸에 닿으면 두 손을 번쩍 들고 "으악!"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쓰러집니다. 죽은 아이는 다시 싸울 수 없습니다. 한쪽으로 물러나서 또래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볼 뿐입니다.

 

말을 타야 하는 상황이 오면 입으로 “따그닥! 따그닥!” 말이 달려가는 소리를 내며 달려갑니다. 상대편도 말을 탔다고 가정을 하면 말소리를 내며 달려옵니다.

 

나무를 잘라서 만든 총 모형이며, 막대기를 깎아 만든 총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이 나오면서 전쟁놀이는 긴박감이 사라졌습니다. 건전지를 넣은 플라스틱 총은 방아쇠를 담기면 불빛을 번쩍이며 총소리를 내지만 그냥 갖고 노는 것에 그쳤습니다.

 

 

요즘은 놀이가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놀이와 게임은 비슷한 뜻을 가졌지만 바탕은 다릅니다. 놀이는 여러 사람이 모여 즐겁게 노는 것을 뜻합니다. 게임(GAME)은 경쟁이나 경기를 뜻합니다. 놀이는 져도 즐겁지만, 게임은 지게 되면 기분이 가라앉거나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놀이와 게임은 진행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차이가 납니다. 놀이는 상호 간의 약속으로 진행이 되지만, 어른들의 서바이벌게임 같은 경우는 페인트볼을 직접 쏘는 것으로 확인을 합니다. 놀이는 진행 방법을 단순히 약속만 했는데도 구속력은 페인트볼을 맞았을 때보다 더 엄격합니다.

 

놀이는 인성(人性)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게임은 인성보다는 능력을 중요시하는 까닭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인성이 무너지고, 물질 만능이 판을 치는 세태를 풍자한 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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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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