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심한 '비호감 경쟁' 대선[임철순]

 

 

이 한심한 '비호감 경쟁' 대선

2021.10.15

 

내년 3월 9일 치러질 20대 대선은 ‘민주화 이후 최악의 대선’이 될 것 같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경기지사로 대선 후보가 정해졌습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11월 9일 대선 후보가 결정됩니다. 그러나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지금도 이번 대선이 우리나라의 미래와 정치발전에 기여할 거라고 기대하는 유권자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여야 유력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역대 어느 대선 때보다 높고, 여야 간이든 각 당 내부든 주고받는 정치공방과 토론이 기대 미달의 저질이기 때문입니다. 향후 5년간 나라를 이끌어가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생각과 수준이 겨우 이 정도인가 싶어 기가 막히고 놀라울 정도입니다.

 

한국갤럽이 9월 17일 공개한 차기 대선 주자 호감 여부 조사결과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국민의힘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 등 여야 상위권 후보 4명이 모두 ‘호감’보다는 ‘비호감’ 답변 비율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비호감 답변 비율이 호감 답변의 두 배에 가깝거나 그 이상입니다. 이 지사는 호감 34%, 비호감 58%, 윤석열 전 총장 호감 30%, 비호감 60%, 홍준표 의원은 호감 28%, 비호감 64%였습니다. 이미 경선에서 졌지만 조사 당시 이낙연 전 대표도 호감 24%에 비호감이 66%나 됐습니다.

 

 

<뉴스토마토>라는 매체가 여론조사업체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지난 10~11일 실시한 ‘선거 및 사회현안 9차 정기 여론조사'에서 ’호감이 가장 떨어지는 대선후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38.9%가 이재명 후보를, 29.1%가 윤석열 전 총장을 꼽았습니다. 이어 홍준표(7.4%), 안철수(6.5%· 출마 선언도 안 했지만), 유승민(5.4%), 심상정(5.2%), 원희룡(2.4%) 후보 순이었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보이는 안 대표는 지난 12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여야 대선 주자에 대해 “국민들께서 한마디로 ‘실망스럽다’고 하신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말이 놈놈놈”이라며 대선 주자들을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빗댔습니다. 안 대표는 “영화 제목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건 놈놈놈이 ‘나쁜 놈, 이상한 놈, 추한 놈’이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동의합니다. 찍어주고 싶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 지사가 치적으로 내세워온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은 ‘대장동 게이트’라는 이름이 어울릴 법한 대형 개발비리로 얼룩지고 있습니다. 추한 전과사실이나 형수 욕설 등 이 지사의 품성과 행태에 대한 혐오는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도 지지자들이 많은 게 정말 놀랍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지난해 4·15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야권·검찰발 ‘고발 사주 의혹’에 연루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망에 올랐습니다. ‘검찰총장의 눈과 귀’라는 수사정보정책관의 관여 사실이 확인됐으니 이 또한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이라는 홍준표 의원의 막말 행태와 비호감은 이미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각 경쟁자들의 캐릭터와 면면이 기대 이하인 데다 문재인 정부 이래 극단적으로 공고해진 진영논리와 극단화·양극화가 ‘비호감 대선’을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진영 대결 양상이 강해짐에 따라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이 아니면 무조건 거부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또 과거 대선 후보들은 표를 의식해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기도 했지만 지금 지지율 상위권 후보들은 지지층 편향적 선거운동에 치중하고 있는 게 다른 점입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정권 재창출보다는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국민의 욕구가 일관되게 강합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대선 경선주자들에게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 경선은 창피한 수준의 공방전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TV토론 때 윤 전 총장이 세 번이나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나온 사실이 드러난 이후 무속·주술 공방이 벌어지더니 항문침 전문가가 누구와 가까운가를 두고 논평 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정신머리를 고쳐야 한다느니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느니 말싸움이 점입가경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야권이 자리한 정치적 환경과 토양에 비해 후보 개개인의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대통령이 되면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국가 경영전략과 비전이 빈곤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잘한 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정권만 교체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외교 국방을 비롯한 대외적 국가전략이 정교해야 하고 연금개혁 노동개혁을 비롯한 국내 문제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든 야든 미래전략을 토론하기는커녕 잡다하고 사소한 신상문제나 흠결을 꼬집고 헐뜯는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으니 한심한 일입니다.

 

 

나라는 선진국에 편입되고,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는 성장해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되고, 우리 대중문화가 자랑스럽게 세계를 선도하는 상황인데도 정치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으니 답답한 일입니다.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 그놈이 그놈인 바에야 일 잘하는 사람을 뽑겠다거나 이번엔 무조건 정권교체다, 누가 후보가 되든 야당을 찍겠다는 식의 선택을 한다면 대선 이후의 나라꼴이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습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에 경쟁양상이 좀 나아지고 여야 정책대결이 전개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지금으로서는 어려워 보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꾸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궁리하는 대선이 되게 하라고 촉구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권자들이 참 고달프고 괴롭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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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데일리임팩트 주필,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등 수상. 저서 ‘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 ‘손들지 않는 기자들’, ‘노래도 늙는구나’,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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