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떡해!...정규직 전환 후, 공기업 채용 50%가까이 급감 ...'신의 직장’ 이제 신도 못 들어가
"그동안 노력 물거품"
서울 관악구에 사는 김모(25)씨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입사를 2년째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필기시험에 합격했으나, 면접에서 떨어진 후 절치부심 준비해 왔다. 하지만 지난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하면서, 올해 신규 채용 규모를 대폭 줄였다. 김씨는 “올해는 합격이 더욱 어려워질 것 같다”며 “정규직 입사를 위해 공부해 온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환 인력 많은 상위 10곳 보니
올해 신규 채용 규모 확 줄여
인천국제공항공사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25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들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본지가 한국경제연구원과 현 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규모가 큰 상위 10개 공기업의 채용 규모(계획)를 분석한 결과, 이 기업들은 올해 총 3821명을 신규 채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3년간 연평균 채용 규모(연간 7102명)의 54% 수준이다. 비정규직 없애는 데 앞장섰던 공기업들이 신규 채용 규모를 크게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영향도 일부 있지만, 정규직 전환에 따른 인건비 부담과 인력 운용의 경직성 때문에 공기업들이 신규 채용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비정규직 총 8259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한국전력의 경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연평균 신규 채용 규모는 1700명이었지만, 올해는 1100명으로 35% 감소했다. 한국공항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철도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취업 준비생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공기업들이 거의 절반 가까이 신규 채용을 줄였다. 이런 공기업들의 신규 채용 감소로 청년층의 취업률은 더욱 하락하고, 해당 기업들은 새로운 인재를 뽑지 못해 인력 순환이 안되고 경쟁력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책적으로 추진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영향으로 가뜩이나 좁은 청년 취업문이 더 좁아지고 있다”며 “기존 일자리를 보호하는 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정책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은진 기자 조선일보
한전 35% 인국공 45% 채용 줄여
현재 신입 직원 채용 절차가 진행 중인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총 65명의 신입 직원을 뽑을 계획이다.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연평균 118명을 뽑았는데, 올해는 그 절반만 채용하기로 했다.
코로나 사태로 공항 이용객이 급감한 영향도 있지만, 최근 4년 사이에 8000명에 가까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한 부담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대졸 신입 연봉이 4635만원에 달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신(神)도 들어가고 싶어 하는 직장’으로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방문해 “임기 내에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zero)’ 시대를 열겠다”고 발언해, 공기업의 정규직화 바람에 도화선이 됐다. 취업 커뮤니티에선 “이제 정말 신만 들어갈 수 있다” “정규직 전환에 성공한 비정규직이 진정한 승자”라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신의 직장’ 좁은 문, 점점 더 좁아진다
8일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올 들어 공기업들은 신규 채용 규모를 대폭 줄이고 있다. 정규직 전환 실적이 높은 10개 공기업은 올해 신규 채용 규모를 최근 3년간 연평균 신규 채용 규모보다 46%가량 줄였다. 이 공기업들은 최근 4년간 5만명에 가까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데 앞장섰다. 이렇게 정규직 인력 규모가 누적되면서, 올해 신입 채용이 급감하게 된 것이다.
한국철도공사는 올해 총 1470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그동안 매년 3000명 가까운 신입 직원을 뽑았는데, 올해는 절반으로 줄였다. 이 회사 역시 최근 6000명 이상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끝마쳤다. 금융권 공기업인 중소기업은행도 올해 채용 규모(200명)를 예년(330명)보다 크게 줄였다. 한국도로공사, 수력원자력 등도 30% 이상씩 신규 채용이 감소했다. 아직 채용 계획을 발표하지 않은 마사회를 제외하면 모두 신규 채용 규모를 큰 폭으로 줄인 것이다. 여기에는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발표 이후 신규 채용 계획을 무기한 연기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빠져있다. 2997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LH까지 포함하면 주요 공기업의 신규 채용 감소 폭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 공기업들은 신입 연봉 3000만~4000만원, 안정적인 근무 환경 등으로 청년층에서는 최고 인기 직장이다. 김용춘 한경연 고용정책팀장은 “급격하게 추진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결국 청년들에게는 좋은 일자리를 줄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일자리 정책의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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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사이 9만3000개 줄어든 청년 일자리
전체적으로 봐도 청년들의 취업문은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최근 9년간 청년층(15~29세)의 취업자 수를 분석해보면, 2017년 상반기까지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다 2018년부터 감소하거나 정체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자리 정부를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년 취업자 수는 4년 사이에 9만3000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노동 규제로 기존 취업자는 지나치게 보호되고 있는 반면, 투자와 신규 고용이 위축돼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분석했다. 캐나다 프레이저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 자유도는 162국 중 최하위권(145위)으로 파키스탄(137위)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일단 한번 사람을 뽑으면 일을 잘하든 못하든 무조건 정년까지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신규 채용을 꺼릴 수밖에 없다”며 “기업이 일자리를 인적 투자로 여겨야 하는데 반대로 기업 리스크로 받아들이는 게 우리 경제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신은진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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