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내전의 비극 [김수종]

 

아프간 내전의 비극

2021.08.26

 

지난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장세력이 수도 카불을 점령했을 때 카불 공항에서 벌어진 난민의 필사적 탈출 몸부림은 실로 충격이었습니다. 활주로를 향해 이동하는 미 군용기를 에워싸고 달리면서 동체나 날개를 붙잡아 보려는 처절한 광경 말입니다. 서울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실패가 뻔하게 보였을 테지만, 난민들에겐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본능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 부시 정부가 9·11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테러집단 알카에다의 온상이라는 이유로 탈레반 정부를 응징하기 위해 2001년 10월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미국은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고 친미 정권을 세웠습니다. 내전에 찌든 아프간이 자위 능력을 가진 나라가 되도록 돈과 병사 훈련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는 부패했고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탈레반은 치밀하게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회유와 협박으로 지방 정부와 군을 와해시켰고 끝내 대통령궁을 접수했습니다. 대통령은 탈레반의 카불 점령 소식을 듣고 국외로 도망쳤습니다.

 

 

20년 아프간 전쟁은 이제 마무리 단계입니다. 마지막 미군이 탄 비행기가 이륙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약 2천5백 명의 미군 생명을 희생하며 끝없이 계속되는 아프간 전쟁에 지친 미국인들은 "다음 대통령에게 아프간 전쟁의 짐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바이든의 결정에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 아프간 사람과 이웃해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살 때 아프간 사람이 옆집에 살았습니다. 한국의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이 줄지어 있는 구조인데, 그의 집과는 작은 잔디밭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까무잡잡한 첫인상을 보고는 터키사람인 줄 알았는데 인사를 나눠보니 아프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영국 백인이었습니다.

 

 

그에겐 조셉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그는 또래인 우리 아이와 잘 어울려 놀고 틈만 나면 우리 집에 놀러왔습니다. 조셉은 우리 집 생활습관에 맞춰 거실에서 으레 신발을 벗고 놀았습니다. 어느 날 조셉에게 "너 어느 나라서 왔니?"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조셉은 "잉글랜드"라고 강조하듯이 대답했습니다. 아프간 청년이 영국에 체류하다가 그곳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주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TV에 아프간 얘기가 방영됐습니다. 평소라면 채널을 돌려버렸을 터인데 이웃이 아프간인이어서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바위 산을 배경으로 초원이 펼쳐지고 양귀비 꽃이 수놓은 듯 피어있는 환상적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총을 둘러멘 민병대 차림의 병사 한 사람이 양귀비 꽃밭 한 귀퉁이에 서 있었습니다. 정말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프간은 세계에서 양귀비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나라로 아편 밀수의 본거지입니다. 부족끼리 내전이 심한데 그들의 주 수입원이 아편 거래라는 거였습니다.

 

당시는 소련군이 아프간을 점령해서 공산정권을 세웠던 냉전시대였습니다. 내전으로 정정이 불안하면 사람들은 안전한 곳을 찾게 마련입니다. 조셉 아버지가 영국에 체류하다가 내전을 치르던 아프간이 소련의 침공을 받자 귀국을 포기하고 안전한 미국을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해 보았습니다.

 

 

어쨌거나 그 이후로 9·11테러 때까지 마음속에 새겨진 아프가니스탄의 이미지는 조셉네 가족, 양귀비 꽃밭, 총을 멘 전사가 전부였습니다.

 

​미군의 아프간 철수를 보며 베트남 패망의 재판(再版}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미군 비행기를 붙잡으려는 난민 모습은 1975년 '사이공 최후의 날'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전쟁의 결과로만 본다면 미국의 아프간 철수는 영광의 탈출이 아니라 굴욕의 탈출로 기억될 것입니다.

 

아프간 전쟁 후유증의 관심은 두 방향으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미국이 떠난 힘의 공백을 놓고 중앙아시아의 판도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지정학적인 관심입니다. 또 하나의 관심은 재집권한 탈레반 체제 아래서 정부군이나 미군에 협조했던 사람들이 무자비한 박해를 받을 거라는 우려입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 부분을 크게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3천여 만 명의 아프간 국민들은 탈레반 정부가 어떤 일을 벌일지 몰라 불안할 것입니다. 미국에 협력하다 특별 비자를 받고 탈출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괜찮겠지만 그러지 못한 친 정부 시민들은 탈레반 정부가 자행할 보복이 두려울 것입니다. 또 탈레반 정권이 국정을 안정시키는 데 실패해서 내전이 격화된다면 아프간 국민들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빠질 것입니다. 낮에는 정부군 밤에는 반군에 시달리거나 희생될 것입니다.

 

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조셉네 가족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상상해 봅니다. 스스로를 영국인이라고 생각했던 조셉은 미국인이 되어 아프간전쟁같은 것엔 관심도 없이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안경을 낀 눈매가 배우 더스틴 호프만과 비슷했던 조셉의 아버지는 카불 공항의 광경을 TV화면으로 보며 어렸을 때 내전에 찌들었던 고향 산천의 양귀비 꽃을 떠올리며 미국 생활의 안락함과 함께 동족의 비극에 착잡한 감회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삼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쟁은 처참합니다. 내전은 더 비극적입니다. 국가 간의 전쟁은 일단 종전하면 국경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지만, 내전은 같이 살면서 끝없이 서로 헐뜯고 보복하니 더 무섭습니다. 문득 요즘 우리 정치권이 권력을 두고는 국민도 나라도 생각하지 않고 파당만 위해 싸우는 것을 보면서 내전이란 인간의 본능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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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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