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소송대리권, 몸통까지 잘라가며 [추천시글]

 

 

특허소송대리권, 몸통까지 잘라가며

2021.08.20

 

송사에 휘말리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다툼은 끊임없이 생깁니다. 분쟁이 생겼을 때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분쟁은 대부분 소송으로 해결합니다. 소송에서는 ①사실 밝히기(사실관계)와 ②법률해석과 적용 문제(법률관계)입니다. 사실을 밝히고 분쟁을 정리할 법률을 적용받기 위해 대리인에게 사건을 맡깁니다. 대리인은 해당 분야의 실체를 잘 알고, 법률관계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 변리사의 소송 대리권 논란

대리인으로 활동하려면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송대리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은 변호사법과 변리사법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변리사법 제2조(업무)에는 ‘변리사는 특허청 또는 법원에 대하여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을 대리한다.’, 제8조(소송대리인이 될 자격)에는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이 규정을 읽으면 ‘변리사는 특허 사건에서 소송을 대리할 수 있구나’하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특허침해 소송을 다루는 일반 법원에서는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법을 다루는 법관이 법을 엉뚱하게 해석하다 보니 생긴 일입니다.

 

 

특허소송에서 변리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데, 현실에서는 대리권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실제 법정에서는 이른바 ‘쪽지 소송’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방청석에 앉은 변리사가 대리인석에 앉은 변호사에게 쪽지를 적어 전달하는 것이죠.

 

변리사는 법에 규정된 소송대리권을 현실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은 대기업보다는 자금 인력 능력이 달리는 중소기업에게 절실합니다. 현실상 필요한데 현실에서 막혀있으니 울며겨자먹기식의 개정안이 제출되어 심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2020년 11월 6일 이규민 의원 대표 발의). 개정안은 현행 법에 규정된 소송대리권에 갖가지 제한을 붙였습니다. 변호사와 공동해야 하며(이른바 공동소송대리라 합니다.), 변리사에게 실무교육을 이수하는 조건까지 붙었습니다. 변호사와 공동으로 대리한다는 것은 변호사 없이는 대리하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말하자면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몸통을 잘라버린 것입니다. 모양새가 참 사납습니다. 공동소송대리 법안은 현행 일본제도와 엇비슷한 것으로, 16대 국회에서부터 회기마다 제출됐습니다만, 상임위원회 또는 법사위를 넘지 못하고 매번 자동으로 폐기됐습니다. 

 

 

■ 개정안, 변호사만 반대한다

변리사에게 특허침해소송 대리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여론조사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중소기업, 발명자 어느 집단에 물어봐도 찬성합니다. 오직 변호사 단체만 반대합니다. 침해소송에는 반드시 변호사가 참여해야 하니까 변호사는 필수이고, 변리사는 당사자의 선택에 따라 참여할 수 있을 뿐인데도 반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아예 변리사가 소송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껄끄러워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2020.11.06. 변리사법 개정안 조문 대비표

 

■ 지식재산권 선진국을 향하여

변리사는 변호사 다음에 생긴 전문가입니다. 전 세계 대부분 나라에 변리사제도가 있으며,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주는 추세입니다. 특히 개원을 기다리고 있는 유럽특허법원에서도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부여했습니다. 그만큼 지식재산권이 전문분야이고, 변리사가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변리사도 민법과 민사소송법을 공부하여 변리사가 되기 때문에 소송을 대리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현행 변리사법은 1961년에 제정할 때 소송대리권을 명확하게 규정했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이번 개정안은 원래 있던 소송대리권의 몸통마저 잘라낸 법안입니다. 변리사에게는 굴욕스러운 법안입니다. 이런 개정안마저도 반대해서 되겠습니까? 우리 지식재산권 제도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데 발목을 잡지 않길 기대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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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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