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의 진화] 부동산에도 AI 컨버전스

 

프롭테크(proptech) 빠르게 확산

재개발 설계 바꿔 500억 추가 수익

 

# 서울 중랑구 망우1구역은 2012년 조합 설립 이후 사업성이 낮아 재건축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북쪽에 위치한 초등학교 일조권을 보장하면서 아파트 층수를 조정해 가장 수익성이 높은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내는 게 큰 숙제였다. 설계사무소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릴 때마다 며칠이 걸리는 것은 물론 비용도 수백만 원이나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롭테크 스타트업 텐일레븐이 개발한 인공지능(AI)이 한 방에 해결했다. AI는 하루 만에 유려한 스카이라인을 그려내면서 용적률을 기존 220%에서 270%까지 끌어올렸다. 그만큼 사업성이 높아진 셈이다.

 

   부동산(property)에 AI와 빅데이터 같은 첨단 기술(technology)을 접목한 프롭테크(proptech)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부동산은 수많은 법규와 규제로 양이 방대하고 복잡한 데다 핵심 정보가 정부나 건설사·시행사처럼 일부에 쏠려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프롭테크 스타트업 서비스가 상용화 단계에 진입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디지털 혁신이 본격화하고 있다.

 

 

텐일레븐이 개발한 건축설계 솔루션 '빌드잇'은 지도에서 필지를 클릭하면 AI가 건축법 등 법규와 지형, 주변 건물의 높이 등을 고려하면서 용적률·일조권·조망권을 최대치로 높일 수 있는 설계안을 자동 생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편집도구 솔루션(디자이너)이 3D(차원)로 건축물을 그려낸다. 김선후 텐일레븐 기획실장은 "공동주택 2000가구를 건축설계하려면 3~5일 걸리지만 AI는 30분이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설계는 아파트 한 동의 층수를 낮추면 다른 동 높이나 배치를 모두 조정해야 해 법규뿐만 아니라 주민을 비롯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연쇄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며 "거의 모든 게 수작업이어서 시간과 비용을 많이 투입하는데 이 과정을 AI로 자동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I는 가구별 일조량도 클릭 한 번에 보여준다. 예컨대 101동 501호·502호·503호의 일조시간을 분 단위로 산출한다. 조망권도 데이터화했다. 가구별로 실제 얼마나 한강이나 산 조망이 가능한지 3D로 보여준다. AI는 필지에 맞춰 공동주택, 다세대, 연립주택, 오피스텔까지 모든 건축물 설계안을 만들 수도 있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불광5구역 재개발 조합도 텐일레븐의 AI가 설계안을 바꾸면서 약 100가구가 늘어났다. 주변 실거래가로 단순 계산하면 약 500억원에 달하는 수익이 늘어나는 효과다. AI를 도입해 절약한 시간과 비용까지 감안하면 사업성은 더욱 높아진다.

 

 

프롭테크 스타트업 스페이스워크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형 부동산에 대한 최적의 개발안을 도출하는 솔루션 '랜드북'을 서비스한다. 서울에서 건물이 있는 토지 중 100평 이하가 80%, 200평 이하가 90%에 달하는데도 소규모 필지는 전문가에게서 직접 수익성 분석이나 건축 상담을 받기가 어렵다는 점에 주목했다. AI가 토지 활용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셈이다.

 

랜드북의 두 축은 건축설계 엔진과 가격 추정 엔진이다. 건축설계 엔진은 평형, 주차장 타입, 분양·임대 여부, 엘리베이터 유무를 비롯한 다양한 조건을 입력하면 법적으로 타당한 범위에서 수익성이 높은 설계안을 3D 이미지로 출력한다. 가격 추정 엔진은 대상 건물 임대료나 분양 가격이 어느 정도일지 예측해 실제 개발하면 얼마를 벌 수 있을지 추정한다. 지금까지 랜드북이 검토한 토지는 지난달 기준 1986만5800여 필지, 토지면적은 총 45억8901만7356㎡에 달한다. 조성현 스페이스워크 대표는 "누구든 쉽게 부동산 개발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9월 베타 버전을 선보인 뒤 11월 중 정식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라며 "국내외 건축·공간 문제를 풀 수 있는 범용 서비스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빅데이터로 재건축 사업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프롭테크 스타트업 다윈중개는 지난 3월 △재건축을 통해 늘어나는 용적률△전체 대지면적△주변 지역 분양가△세대당 평균 대지면적 △사업진행 속도 등을 토대로 서울·수도권 일대 모든 재건축 단지의 사업성을 지수화했다. 100을 기준으로 지수가 클수록 이익이 커지고, 작을수록 추가분담금이 늘어난다. 16일 기준 잠실주공5단지는 재건축 지수가 101, 개포주공4단지는 142, 장미1차는 89 등이다. 다윈중개는 재건축 지수를 만들기 위해 정부와 서울시, 지자체,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이 제공하는 재건축 관련 공공데이터를 한데 모았고, 여기에 용적률이 정확하지 않는 단지에 대해 토지·건축물 대장을 일일이 확인해 데이터의 완성도를 높였다.

 

건축설계 솔루션 적용한 시뮬레이션 사례 https://www.buildit.co.kr/sample?pid=1 edited by kcontents

 

 

재건축 투자 예상 금액도 계산해준다. 잠실주공5단지 35평에 투자할 경우 25평을 분양받는다면 주변 실거래가 기준 재건축 이익이 3억2000만원 정도 예상되고, 전체 투자 예상 금액은 25억3000만원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김석환 다윈중개 대표는 "재건축은 투자자들 관심이 많은데 정보의 비대칭 때문에 재테크 격차가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모든 사람이 손쉽게 재건축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서비스를 내놓은 배경을 설명했다. 다윈중개는 AI가 실거래가뿐만 아니라 일자리, 개발 호재, 대중교통 등 28개 요소를 분석해 사용자에게 실거주·재테크 등 목적에 맞는 아파트를 추천하는 서비스도 내놨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프롭테크 시장이 '마지막 금맥'으로 불린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은 전 국민의 관심사인 데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국내에서도 프롭테크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프롭테크포럼에 따르면 국내 프롭테크 기업의 매출 규모는 작년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누적 투자 유치 규모도 작년 1조6913억원을 기록했다.

[임영신 기자 / 우수민 기자]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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