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은 밤에도 쉬지 않는다 [추천시글]

 

 

통증은 밤에도 쉬지 않는다

2021.08.13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제하가 쓴 단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오래전에 읽었습니다. ‘죽은 아내의 환영을 따라 낯선 고장을 떠도는 한 사내의 사흘에 걸친 여정을 그린’ 소설 내용보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제목에 꽂혔지요. ‘왜 좀 쉬었다가도 가지. 다리도 아플 텐데...’ 1년 반여 계속되는 코로나 상황을 겪으며 ‘통증은 밤에도 쉬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코로나 상황을 나며 우울증, 무력감, 상실감 같은 마음의 병 3종 세트를 앓느라 그렇잖아도 힘든 터에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허리를 못 쓰겠더라고요. 정확히는 허리와 연결된 오른쪽 목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부위입니다. 근육통의 성격이 본디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왜,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왜 병원을 안 찾았겠어요. 의사 선생님은 신뢰할 만한 분이었습니다. X-ray를 찍은 후 다시 마주 앉았지요.

 

 

“선생님, 제 병명이 무엇인지요?”

“디스크 계통입니다. 5, 6번 경추, 여기 좁아진 부분 보이시죠?”

“아, 예, 선생님.”

“여기서 비롯해 엉덩이로 쭈욱 이어지죠. 환자분 연세에 흔히 발생하고요.”

“선생님,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을까요?”

“과격한 운동이나 음주, 잘못된 자세, 평소의 생활 습관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고... 아, 성격과는 뭐 특별히 관계없으니 다행인 줄 아세요.”

조금 뜨끔하긴 했습니다. 내가 ‘한 성질’하는 것을 어떻게 알고?

 

다음은 물리치료실에서 나눈, 역시 만만치 않은 치료사와의 대화입니다.

“이쪽으로 오실게요.”

나를 침대에 눕히곤

“뒤집으세요.”

참, 엉덩이 쪽이 문제지. 곧이곧대로 하자 이번엔

“까세요.”

내가 무슨 참외나 양파도 아니고.

'양파란 것은 까다보면 마지막엔 아무것도 없다고요.'(혼잣말)

 

어쨌거나 병원에 다녀오고 약을 복용하니 그날은 괜찮은가 싶더니 다음 날부터는 또 마찬가지지 뭡니까. 코로나 시국에 무더위가 더해지고 통증까지 거드니 사는 게 ‘증말’ 사는 거 같아요. 죽고 싶은 생각만 빼고 온갑 잡 생각이 드는 터에 왜 현상과 본질, 존재와 부존(不存) 같은 형이상학적 고민은 뒷전으로 숨고 자질구레한 생각만 나는지 모르겠어요. ‘카드 비용 나가는 날인데.’ ‘택배가 온다고 했잖아.’ 주차를 몇 층에 했더라?'

 

​그 와중에 ‘야밤도주[夜半逃走]’ ‘환골탈퇴[換骨奪胎]’ ‘반심불수[半身不隨]’ 같은 되지도 않은 사자성어를 되뇌기도 하고, 뭐 잘났다고 오페라 아리아도 비장한 마음으로 웅얼거렸으며 “노래에 살고 통증에 살고”, 평소 하지 않던 기도까지 간절히 하게 되더라니까요. “주여, 당신 뜻대로 하소서. 다만 통증에서 구하소서.”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고질병(영감탱이병)이 된 아픔이 장난이 아니더라니까요. 아픔을 견디느라 별의별 수단을 다 써보았지요. 그나마 낮에는 짜증이라도 내며 그럭저럭 견딜 만한데 그놈의 밤이 문제였습니다. 왜 육체적 통증은 밤이면 더 심해지는지 모르겠어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고 통증은 밤에도 잠들지 않습니다. 내가 잠들기 전까진.

 

 

다시 통증과의 배틀이 시작되려 하네요. 통증을 실은 전동차는 끝이 보이지 않는 선로를 따라 닿지 못하는 역으로 향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목에서 어깨를 타고 흐르다 허리를 거쳐 엉덩이를 더듬으며 오르내립니다. 통증도 사랑을 닮았나봐요. 정처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옆지기의 천연덕스런 잠꼬대가 그러잖아도 불편한 심사를 들쑤시는군요. “근데 자기 왜 잠을 못자는 거야?”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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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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