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텃밭을 갖고 싶다 [추천시글]

 

나도 텃밭을 갖고 싶다

2021.08.03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나의 애초 계획은 이랬습니다. “주말마다 텃밭에 간다. 갓난아이를 키우듯 식물들을 잘 돌본다. 싱그러운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린다. 지인들을 초청해 하하, 호호 이야기꽃을 피우며 채소 잔치를 연다.”

 

텃밭을 가꿔본 사람은 압니다. 계획한 대로 식물들이 잘 자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몇 년 전 경기 하남의 민영 주말농장을 (공짜로) 분양받아 다양한 씨앗을 뿌렸습니다. 상추, 오이, 고추, 가지, 토마토, 땅콩…. 복잡한 회사 일을 잊고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는 게 좋아 주말이면 무조건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행복한 상상은 싹이 날 때까지, 아주 잠깐뿐이었습니다. 주말에 이런저런 일이 생겨 한 주, 두 주 거르면서 밭은 금세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잡초가 상추, 쑥갓 등 키 작은 채소들을 덮치고, 토마토는 벌레에게 먹혀 진물이 흐르고, 지지대를 세우지 않은 가지, 오이, 고추는 쓰러져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농부가 부지런해야 식물이 잘 자란다는 뜻이지요. 특히 싹이 난 이후엔 한눈팔지 말고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밭이 농부와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족이 채소 농사에 실패한 이유는 게으른 탓도 있지만, 그보단 텃밭이 너무 먼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짜에 눈이 멀어 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밭을 덜컥 받았으니 농사가 잘될 리가 없었지요.

 

올봄 꿈꾸던 텃밭에 다녀왔습니다. 경기 남양주시 B아파트 1층 뒷마당에 자리 잡은 텃밭입니다. 베란다 문을 열고 세 계단만 내려가면 바로 텃밭입니다. 빈티지한 연두색 철망엔 장미넝쿨이 피어오르듯 줄기를 뻗고, 그 아래 땅에선 로즈메리·바질·민트 등 갖가지 허브들이 향을 내뿜고 있습니다. 채소밭 옆 장독대에선 된장, 고추장, 간장이 익어가고 있고요.

 

텃밭 주인장 내외분은 텃밭에서 늘 하루를 맞이합니다. 텃밭에서 함께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그곳에서 자란 채소로 요리해 식사를 합니다. 밭이 가까이 있어 가능한 모습입니다.

 

 

텃밭을 아예 집 안으로 들인 이들도 있습니다. 요즘엔 집 안에서 채소를 키우는 게 유행이랍니다. 베란다는 기본. 거실과 주방 한쪽에 재배기를 설치해 식물을 키우는 ‘플랜테리어(식물+인테리어)’가 인기라네요. 식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을 주고 공기정화 효과도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반려식물’ ‘반려채소’라는 말이 떠오른 이유입니다.

 

집 안에서든, 들판에서든 식물을 가꾸면 삶이 즐겁습니다. 초록 식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생각이 넓어지잖아요. 영어단어 ‘culture(문화)’가 ‘재배·경작’이라는 뜻의 라틴어 쿨투라(cultura)에서 유래한 이유일 것입니다.

 

30년간 정원을 가꿔온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수 스튜어트 스미스는 ‘정원의 쓸모’에서 “식물 기르기는 우울증과 불안증 등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면서 “정원은 우리를 생명의 기본적인 생물학 리듬으로 돌아가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코로나와 더위에 지친 여름, 작은 텃밭을 가꾸며 자연의 리듬에 맞춰 지내는 건 어떨까요.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우울함을 벗어던지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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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 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 담당 연구원, 이투데이 교열팀장을 거쳐 현재 한국일보 교열팀장.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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