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이 티셔츠가 되기까지 [추천시글]

 

 

페트병이 티셔츠가 되기까지

2021.07.28

 

얼마 전 아웃도어 패션 기업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과 모임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요즘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페트병으로 등산의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회사 현장에 가보았습니다.  

 

강 회장은 전시장에 걸려 있는 티셔츠를 가리키며 "이게 페트병으로 만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트병이 옷이 되어 나온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몰랐습니다. 재질을 표시한 라벨에 '재활용 폴리에스터'란 표시가 없다면 페트병으로 만든 옷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블랙야크는 작년부터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을 위해 너댓 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팀장이 동영상을 틀어놓고 설명해주는 걸 들었습니다. 말로 들으면 과정은 간단합니다.

 

500㎖짜리 생수 페트병 15개를 재활용하면 반팔 티셔츠 1개가 나옵니다. 긴 바지 한 장엔 같은 크기 페트병 20개가 필요합니다. 페트병에 색깔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무색 페트병으로 만든 원사(原絲)라야 염색이 가능해서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의류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패딩점퍼는 페트병 18개와 1회용 냉커피 컵 10개면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카페에서 주문해 마시는 냉커피 컵은 투명하지만 색깔이 들어 있어 염색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컵으로는 솜, 즉 패딩을 만들어 페트병으로 만든 점퍼 속에 담으면 패딩점퍼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만든 아웃도어 의류가 블랙야크 매장 의류의 10%나 됩니다.  올해는 환경부와 협력 시범사업으로 티셔츠 1만 장을 만들어 경찰청과 군부대에 공급했다고 합니다. 강 회장은 폐기물 재활용에 열을 올리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당장 경제성이 없어 보입니다. 폐기물을 수거하고 가공해서 실을 뽑아내는 일이 원유를 직접 정제하여 실을 뽑아내는 일보다 훨씬 공정이 복잡하고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게 수거된 페트병을 잘게 부수어 조각(플레이크)으로 만들고 이를 녹여서 플라스틱 칩을 만듭니다. 이 칩에서 실(原絲)을 뽑아 천을 짜고 베트남으로 보내 티셔츠나 바지를 만듭니다. 아직 플라스틱 재활용 의류는 대량소비가 안 되니 대량 제작도 불가능합니다. 경제성이 없으니 기업이 손대기를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블랙야크가 주로 할 수 있는 공정은 원단을 베트남으로 보내 옷을 만드는 일입니다. 나머지 공정은 다른 기업이 해야 합니다. 환경부 등 플라스틱 재활용 방법을 모색하는 정부 부처의 협력을 얻어 블랙야크가 주간 기업이 되어 이 일련의 공정을 콘소시엄 형태로 추진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 바로 페트병을 깨끗이 분리 수거하는 일입니다. 쓰레기를 버리는 주민들이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입니다. 쓰레기를 쓰레기가 아니라 원료 다루듯이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블랙야크와 협약을 맺어 플라스틱 폐기물 분리수거에 참여하는 지자체가 서울에 10여 곳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강북의 은평구(구청장 김미경)와 강남의 서초구(구청장 조은희)입니다. 주민들이 깨끗이 버린 페트병과 카페가 수거한 1회용 커피 플라스틱 컵이 아웃도어 패션 의류로 변신하는 것입니다.  

 

블랙야크가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에서 선진국은 일본과 대만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재활용 플라스틱 칩 생산도 활발하고 칩 품질도 좋다는 것입니다. 원유에서 직접 뽑는 플라스틱 칩에 비해 일본산 재활용 칩은 가격이 60% 높고 국산은 80% 비쌉니다. 이 가격차가 플라스틱 재활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인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경제성이 없을 것 같다."는 내 말에  재활용 팀장은 "미래를 내다보며..."라고 희미하게 말했습니다.

 

강태선 회장은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의지를 보였습니다. "사업도 해볼 만큼 해봤고 돈도 벌어봤습니다. 이제 플라스틱 재활용을 기업 차원에서 해보려고 합니다." 가끔 히말라야 청소에 나서는 강 회장의 투박한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이런 일을 해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ESG 경영'을 현장에서 공부한 시간이었습니다.  

 

강 회장은 플라스틱 재활용과 관련하여 쓰레기 수거 행정의 그늘진 곳을 찔렀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이 애써 분리하고 정리해 놓은 폐기물을 청소트럭이 다시 뒤섞어 날라가는 일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이런 것 좀 고칠 수 없을까요"

 

정말 21세기는 '쓰레기 세기'라고 불러도 될 만큼 쓰레기처리 문제는 심각합니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가 큰 일거리입니다. 전문가들은  "자원순환이 해법"이라고 말합니다. 페트병은 재활용이 비교적 쉬운 플라스틱 폐기물인데도 수거에서 재활용까지 이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집에 들어가다 편의점에서 과일과 음료수를 샀습니다. 양손에 그냥 들기 힘들어 하는 것을 본 가게 주인이 "봉투 드릴까요? 100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편의점 로고가 붙은 포장용 비닐봉투, 아니 플라스틱 봉투는 싸고 편합니다. 일주일만 지나면 집에 생수 페트병이 여남은 개가 나옵니다.'옛날에는 플라스틱 봉투를 쓰지 않고 페트병 생수를 마시지 않아도 살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 기업 소비자 모두 플라스틱 폐기물 최소화하고 재활용하기 쉽게 합시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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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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