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추리꽃 너머로 본 어청도항 [추천시글]

 

 

원추리꽃 너머로 본 어청도항

2021.07.22

 

원추리꽃 너머로 본 어청도항의 고운 모습.

 

7월의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날 어청도 탐방길을 나섰습니다. 군산항 서쪽 72km의 해상에 있는 어청도(於靑島)는 우리나라 영해의 중부 서해 끝으로 중국과 우리나라 공해 영역 한계선에 있는 섬입니다. 지명 유래는 BC 202년경 중국의 초(楚)나라 항우(項羽)가 유방(劉邦)에게 패하고 자결하자 재상 전횡(田橫 ?~ BC202)은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망명길에 올라 서해를 떠다니던 중 갑자기 푸른 산 하나가 우뚝 나타나 이곳을 맑을 청(淸)이 아닌 푸를 청(靑)자를 따서 어청도(於靑島)라 이름 지었다는 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지명 유래설로 미루어 어청도는 물도 맑지만 산 또한 푸른 섬이었나 봅니다.

 

어청도는 지금은 인구가 줄어 섬 안의 초등학교마저 폐쇄된 상황이지만 조선 시대 말기와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고래잡이와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한 정략적 거점이었고 장항, 군산항의 번영에 힘입어 서해의 어업 전진기지로서 번창기를 누리기도 했던 섬입니다. 일찍이 1903년에 우편수취소가 설치되고 1912년에 어청도 등대가 설치되었으며 1925년에 어청도 공립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가 들어섰던 곳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군산항에서 09시에 어청도행 배를 타고 너른 바다를 3시간 30분 동안 항행하여 12시 30분, 어청도에 도착했습니다. 민박집 식당에서 바로 점심을 해결하고 섬 동쪽의 주 능선인 ‘안섬넘길’ 트레킹 코스를 탐방하기 위해 데크(deck)로 잘 정비된 1km 정도의 해안산책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어청도는 푸름에 감탄한 지명 유래에 걸맞게 천연림이 우거진 섬으로 유명하지만, 봄·가을로 남반부와 북반부를 오가는 철새들의 낙원으로 더 유명한 곳입니다. 영국의 환경운동가 나일 무어스(Nial Moores)가 2002년 어청도에서 228종의 조류가 서식하는 것을 확인하고 국제조류보호협회에 소개한 이후 미·중·일·유럽 등 해외 조류학자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세계적 명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국내의 탐조가들에게도 이곳 어청도는 반드시 다녀와야만 하는 필수코스라 합니다.

 

세계적 탐조 명소인 어청도에는 어떤 야생화가 자라고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해안산책길을 따라 걸으면서 보니 여름꽃이 제법 피어 있었습니다. 해당화, 장구채, 갯기름나물, 싸리나무류, 참나리, 하늘말나리 등이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평소에 자주 보고 만났던 우리 꽃은 어디를 가나 정겹고 반가워 마치 이웃 지기를 만난 것만 같습니다. 물론 말로만 들었던 해변노간주 등 희귀종도 만났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여러 종류의 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꽃은 아무래도 ‘안산넘길 목넘쉼터’에서 만난 원추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육지에서도 7월이면 원추리가 한창입니다. 한여름 무더위에 산에 오르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우리 꽃입니다.

 

 

해안산책길을 벗어나 능선을 올라, 잠시 쉬기도 하고 풍광도 구경할 겸 왔던 길을 뒤 돌아보았습니다. 절경이었습니다. 푸른 숲이 우거진 야트막한 산줄기와 항구의 파란 바닷물 가운데에 둘 아니면 셋 같기도 한, ‘농배섬’이 남한강의 도담삼봉처럼 멋지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금상첨화로 길섶에 화사한 원추리가 곱게 피어 있어 원추리꽃 너머로 어청도항을 굽어보니 그야말로 환상적인 그림이 신기루처럼 펼쳐집니다. 좋은 풍경에 멋진 꽃을 더하니 그 효과는 단순한 더하기 이상의 곱절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청도항+원추리꽃의 어울림이 경이로운 풍경으로 변했습니다. 멋진 풍광에 특별하지도 않은 원추리꽃 너머로 굽어본 어청도항의 마술적 변화를 바라보며 문뜩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곱절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비단 자연에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야도 꽃처럼 고운 마음을 통해서 보면 훨씬 더 아름답고 곱게 변한 별천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백운산원추리 (백합과) 학명 Hemerocallis hakuunensis Nakai

 

원추리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이른 봄에 싹을 틔웁니다. 원추리의 종류는 ‘넘나물’이라 고 통칭하면서 예전부터 식용 나물로 이용되었던 식물입니다. 봄에는 주로 활처럼 휘어진 잎을 키우고, 여름이 되면 꽃대를 세우고 꽃을 피웁니다. 꽃은 여러 개의 봉오리가 차례로 생기는데 꽃이 하루밖에 못 간다고 해서 데이 릴리(day lily), 하루백합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자생종으로는 몇 종류의 원추리가 있습니다. 백운산원추리, 각시원추리, 노랑원추리, 섬원추리, 왕원추리, 골잎원추리, 애기원추리 등 나리류(참나리, 중나리, 하늘나리, 말나리 등)와 마찬가지로 종류가 많습니다. 주로 꽃의 모양이나 색깔에 따라 붙여진 이름인데 우리가 산행 중에 흔히 마주치는, 원추리라고 부르는 황색 야생의 꽃은 대부분이 백운산원추리인데 일반인은 보통 원추리라고 부릅니다. 다만 중국에서 들여와 식재하고 있는 주황색 꽃의 원추리만 따로 왕원추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청도에서 만난 황색의 원추리꽃도 일단은 백운산원추리로 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꽃의 색깔이 황색으로 향기는 없었고 주간(晝間)개화에 포엽(苞葉)이 피침형이었습니다. 꽃자루가 깊이 갈라지는 것으로 보아 태안원추리는 아니었습니다.

 

한여름 어청도 ‘안산넘길’ 산행에 잠깐 쉬면서 마주친 원추리 꽃송이, 그 고운 꽃 너머로 보이는 어청도항이 더욱더 고와 보였습니다. 한 폭의 맑고 깨끗한 환상적 풍광이 신비로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고운 꽃을 통해서 그 너머의 다른 풍경을 보는 것, 마치 프리즘을 통해 다른 물체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프리즘에 형성된 빛의 밝기와 선명도에 따라 보이는 물체의 모습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거친 세상도 밝고 고운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 세상도 밝고 고와 보일 것입니다. 원추리꽃 한 송이를 통해서 보는 어청도 풍경이 더욱더 고와 보이듯 상식에 벗어나지 않는 공정하고 고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면 더욱더 멋지고 신나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원추리꽃 같은 맑고 고운 마음의 창을 간직할 수 있을까? 날로 거칠고 폭력적 언어로 상식과 공정성을 벗어난, 뻔뻔한 막말이 난무하는 우리의 정치 사회를 볼 때마다 원추리꽃 너머로 굽어본 어청도항의 환상적인 풍광이 눈앞에 어른댑니다.

 

(2021. 7월 원추리꽃 너머로 본 어청도항을 기리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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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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