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 사랑 [추천시글]

 

 

엉겅퀴 사랑

2021.07.19

 

마른장마 덕분에 밭에 잡풀이 많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 이름이 있는데 잡풀이라고 불러서 미안하죠. 한때는 풀 이름을 기억해두려고 핸드폰에 프로그램을 깔고 카메라를 부지런히 들이대었지만, 옷에 찰싹 달라붙고 식물을 휘휘 감으며 줄기에 잔가시가 돋아나는 천지에 흔한 환삼덩굴도 맞히지 못해 식물분류 전문가에 물어보고서야 알았습니다.

 

​풀 가운데 청초해 보이는 차가운 도시의 여자라고나 할까요, 밭 곳곳의 완두콩 옆에서, 감자 옆에서, 혹은 옥수수 옆에서 상추나 들깨와 공존하며 열심히 자라는 엉겅퀴가 있습니다. 인류의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하는데 엉겅퀴의 여리여리한 자태를 도시농부의 서툰 낫질로 차마 베어내지 못합니다.

 

 

​엉겅퀴만을 그리는 여류 화가가 있습니다. 엉겅퀴의 강인한 생명력에 심취해 그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엉겅퀴는 키도 그리 크지 않고 가녀리게 보이지만 자줏빛 꽃 밑의 잎새와 줄기에는 찔리면 제법 따가운 가시를 갖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엉겅퀴의 뿌리가 간에 좋다더라 하고 말했더니 고교 동창생이 “말려서 좀 줘 봐라”고 말했죠. 일이 많아 실천하지는 못했습니다. 떠도는 말로야 약이 되지 않을 풀이 없죠. 코로나 19에 좋다고 고춧대를 삶아먹은 사람들도 많다니까요. 억지로 한 번 마셔봤는데 나무 삶은 맛처럼 밍밍했습니다. 

 

엉겅퀴는 쑥이 돋아나는 이른 봄, 함께 나기 시작합니다. 그때 향내가 상큼한 갓도 함께 자라죠. 월동하는 식물은 한 해를 일찍 시작하여 모두 부지런한가 봅니다. 엉겅퀴는 이른 것은 5월 말에 꽃을 활짝 피우기 시작하는데 계속 여기저기서 꽃을 이어갑니다. 한쪽에서 꽃이 종자를 만들어 멀리 날아가는 갓털(冠毛) 다발을 챙기는데 그 옆에선 연둣빛 신초가 돋습니다. 한쪽은 추수를 끝냈는데 옆에서는 모내기하는 풍경이라고 할까요? 벌이 윙윙 날아다닙니다. 엉겅퀴도 밀원식물이라는데 꿀이 있나 신초가 꽃을 피우면 한 번 빨아봐야겠습니다.

 

 

​엉겅퀴가 밭이랑마다 많이 퍼져서 작물을 기르는 데 방해가 되고, 지나갈 때 살갗에 스쳐서 애물처럼 여겨졌지만 줄기는 그냥 물로 가득해 너무나 연약합니다. 궁리 끝에 한 포기, 한 포기 삽으로 퍼내서 도랑 곁으로 옮겨주었습니다. 살려주었으니 무성하게 자라서 고라니 같은 동물을 그 가시로 막아줄 것을 기대했지요. 그러나 수십 포기를 옮겨 심었지만 다른 풀에 가려 키가 크질 않았습니다.

 

​듣기로는 옛날 바이킹이 오밤중에 스코틀랜드에 침입하면서 소음을 방지하려고 맨발로 들어오다가 엉겅퀴 가시에 찔려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스코틀랜드군이 침공을 알아차려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문장(紋章) 속에 들어있습니다. 며칠 전 이민우 선수가 18언더파로 우승한 2021 유러피언 투어 스코티시 오픈 골프 중계 카메라가 언뜻 러프의 엉겅퀴 꽃을 비쳐주었습니다.

 

​가시에 찔리면 아픔의 크기는 매실이나 장미, 찔레나 두릅보다는 약하지만 아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가시야 물론 꺾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 하고 있겠죠. 엉겅퀴의 꽃말은 ‘독립, 보복, 엄격, 건드리지 말라’라고 합니다.

 

​엉겅퀴는 청정하고 양지바른 환경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겨우 몇 달만 싱싱할 뿐인 초본에 담장 역할은 과도한 기대였죠. 이젠 엉겅퀴를 봐도 옮겨주지 않고 다른 유용한 작물과 공존시키려고 합니다. 고운 자태는 장미보다 더 아름답게도 보입니다. 엉겅퀴를 바라보며 ‘그럼 아주 엉겅퀴만 모아줄 테니 모여서 잘살아 보겠어?’하고 말을 건네 봅니다.

 

​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게 야생화입니다. 그들은 나름의 질서를 갖고 독점하는 법이 없습니다. 비닐을 씌우지 않은 곳에 한 해는 쑥이 자그만 밭을 다 차지하여 쑥밭을 만들더니 이듬해엔 망초가, 그 다음엔 우슬초, 비름, 털별꽃아재비가 대세를 이어가는 식입니다. 누구도 독점하지 않죠.

 

​개가 핥은 듯이 풀이 사라진 밭이 아니고 작물과 잡초가 공존하는 밭을 보면서 영원한 땅의 지배자는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적절한 때에 양보하는 미덕, 아무리 지적공부(地籍公簿)에 인간의 이름이 올려졌다고 한들, 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욕심이 없는 식물과 동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손을 씻으려고 받아놓은 대야 물에 개구리 한 마리가 첨벙 뛰어들어 신나게 헤엄칩니다. 사람을 피하는 개구리도 너무 더웠나 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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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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