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파워]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던 MIT 공대생 지금은?

 

베이커휴즈 코리아 지예영 대표

 

글로벌 에너지 기술 기업 한국 지사 최연소 대표

 

“MIT에서는 내가 살아남아야 하더라고요.”

 

2002년 SBS 다큐멘터리 ‘세계의 명문 대학-죽도록 공부하기’편에 등장한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매사추세츠 공과 대학) 기계공학과 2학년 지예영 학생이 남긴 말이다. 당시 다큐멘터리에는 이 학생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담겼다. 도서관에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8시간 내리 공부만 해 화제였다. 그리고 MIT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베이커휴즈 코리아 지예영 대표. /베이커휴즈 코리아 제공

 

학창 시절 MIT에서 치열하게 공부하더 지예영 학생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2019년 한국에서 그의 근황이 한 번 더 화제였다. 당시 그는 GE 계열사이며 세계 2위 유전 서비스 업체 베이커휴즈(Baker Hughes)에서 이사였다. 2년이 지나 베이커휴즈 한국 지사 최연소 대표로 선임됐다는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 베이커휴즈 코리아 R&D 센터에서 지예영 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기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베이커휴즈 코리아 신임 대표 지예영입니다. 2010년 베이커휴즈에 입사해 마케팅, 사업 개발 등에 집중해왔고 얼마 전 한국 지사 신임 대표로 선임됐습니다.”

 

-베이커휴즈는 조금 생소한 기업입니다. 어떤 기업인가요.

 

“베이커커휴즈는 에너지 및 산업 고객에게 솔루션을 제공하는 글로벌 에너지 기술 기업입니다. 석유와 가스를 추출하고 운송 및 정제하는 전 영역에서 최첨단 설비와 서비스, 디지털 솔루션을 제공해요. 2017년 GE 오일앤가스와 합병했고 120개국에 지사가 있습니다. 전 세계 약 5만50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베이커휴즈 한국 지사에는 120여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주로 국내외 해양 플랜트, 화공 플랜트, 액화천연가스(LNG) 플랜트 등의 설계·조달·시공을 담당하는 종합건설사 및 조선소, 정유·화학회사가 주요 고객입니다. 산업용 2D X-ray 및 3D CT 검사시스템, 실리콘 기반 고성능 압력 측정 솔루션 등도 제공하고 있어 자동차 제조사 등도 주 고객입니다.”

 

-베이커휴즈 한국 지사 신임 대표로서 현재 집중하고 있는 사업은 무엇인가요.

 

 

“베이커휴즈 코리아 전반적인 비즈니스 전략 수립 및 운영을 담당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발맞춰 국내 고객에게 필요한 저탄소 솔루션을 제공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삼성 엔지니어링과 탄소중립과 수소 부문에 대해 업무 협약을 맺었어요. 이런 협력을 통해서 한국에서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하는 기업을 늘려가고자 합니다.”

 

2002년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지예영 대표. /유튜브 캡처

 

지예영 대표는 재미교포로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생활했다. 과학 고등학교를 거쳐 MIT에 입학했다. MI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보잉에서 일했다. 이후 베인앤컴퍼니로 이직하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MI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학창 시절 꿈이 무엇이었나요.

 

“대학교 진학 전까지만 해도 의사 또는 생물학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과학 고등학교를 거쳐 MIT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학교 분위기가 공대 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더라고요. 이 영향도 받고 1학년 때 물리학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물리학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학문이 기계공학이에요. 더 공부를 해보니 기계과학이 현실적이고 건설, 자동차, 플랜트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또 대학생활을 하다 보니 막연하게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좋아했던 교수님께서 대우 그룹에서 임원을 하셨던 분이었는데, ‘기업인도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업을 통해 많은 사람이 생계를 이어가고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 말에 기업인에도 관심이 생겼죠.”

 

-당시 MIT에서 8시간씩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이 화제였습니다.

 

“화제가 될 줄 몰랐어요. MIT에 있는 다른 학생도 저처럼 똑같이 공부했기 때문이에요. 힘들어도 열심히 했죠. 힘들었던 건 롤모델이 많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성공한 여성 임원, 여성 CEO 등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고 싶은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런 분들이 많이 없었죠. 그래도 부모님께서 격려도 많이 해주셨고 중간에 포기한 학생이 되고 싶지 않아서 오기로 버텼습니다.”

 

-졸업하고는 어떤 일을 했나요.

 

“2004년 졸업 후 보잉에 취업을 했습니다. 열역학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보잉을 다니면서 컨설턴트 출신이 많더라고요. 그때 경영 및 컨설턴트 쪽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일을 다니면서 시카고 대학교 부스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 과정을 마쳤어요. 그렇게 5년의 보잉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2009년 베인앤컴퍼니로 이직했습니다. 경영컨설턴트로 1년 정도 근무하다가 GE로 이직했습니다. 컨설팅도 매력 있었지만 전문성을 갖춘 일을 하고 싶었어요. 다시 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죠.”

 

제너럴일렉트릭코리아 공식 홈페이지, 베이커휴즈 코리아 제공

 

 

지예영 대표는 2010년 GE의 핵심 인력 양성 프로그램인 ECLP(Experienced Commercial Leadership Program)를 통해 입사했다. ECLP는 로테이션 프로그램이다. GE의 다양한 업무와 제품을 다루면서 회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왜 하필 GE였나요.

 

“제품이 사회에 주는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당시 GE 홍보 영상을 봤는데, 우리 사회, 일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라고 생각했어요. 홍보 영상은 GE에서 만드는 제품과 솔루션이 우리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담고 있어요. 하루에 수십만명이 GE 의료장비로 검사를 받고, 전 세계 인구 4분의1이 GE 제품을 통해 전기를 공급받는다 등의 내용이에요. 지금 봐도 설레는 영상이에요.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줬으면 하는 생각에 부합해 GE를 택했습니다.”

 

-어떤 일을 했나요.

 

“입사 후 GE 오일앤가스 사업부 아태 지역 마케팅을 담당했고 2017년에는 아태 지역 마케팅을 총괄했습니다. 예를 들어 본사에서 태양광 사업을 진행하는데, 아시아 태평양 지역 시장 진출을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지 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이었어요. 직접 고객을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해당 시장 정부 정책 등을 파악했죠. 그리고 거기에 맞춰 어떤 전략으로 사업을 진행하면 좋을지 계획을 짜고 진행했습니다.”

 

 

-2021년 5월, 10년 넘게 몸담은 회사에서 대표로 선임됐습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아시아 지사 사장님, 인사부 총괄과의 미팅에서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며 말씀해 주셨어요. ‘이제 어쩌지’하는 생각과 함께 걱정이 앞섰습니다. 물론 기쁘고 감사하기도 했죠. 그때 사장님께서 ‘그냥 하던 대로 계속하면 돼’라고 해주셨는데, 그 말이 지금까지도 큰 힘이 됩니다. 자신감을 가지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대표로서의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예영 대표 선임 당시 마리아 스페루자(Maria Sferruzza) 베이커휴즈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은 “지예영 신임 대표는 그동안 한국 뿐만 아니라 아태지역에서 주요 고객 및 파트너사와 다양한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에너지 업계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베이커휴즈 코리아의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을 이끌 것으로 확신한다”고 전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기존 사업을 잘 키우면서도 새로운 분야에서 다른 기업보다 먼저 움직이고 국내 고객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앞서가는 베이커휴즈 코리아로 만들고 싶습니다. 또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 문제가 심각한데요. 기업들도 ESG 전략을 많이 세우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도 좋은 전략 파트너로서 최선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글 CCBB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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