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요즘 유행하는 '주전세 매매'를 아시나요
자영업자 최모 씨(42)는 최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전용 84㎡짜리 아파트를 샀다. 매매가 20억7000만 원에 계약했지만 실제 최 씨가 매도인에게 준 돈은 8억1000만 원이었다. 매도인이 집을 판 뒤 해당 아파트에 세입자로 들어와 계속 살기로 했기 때문이다. 계약서상의 매매대금과 실제 거래가 사이의 차액인 12억6000만 원이 전세보증금이 된 셈이다. 매도인은 청약에 당첨된 새 아파트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 집이 필요했고, 매수인은 현금이 부족했다. 최 씨는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거래가 쉽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최근 주택시장에서는 이처럼 집주인이 세입자로 들어가 사는 조건으로 실제 매매대금 규모를 줄인 ‘주인전세(주전세)’ 거래가 늘고 있다. 대출 및 세제 규제와 집값 급등, 매물 품귀 현상이 맞물려 이례적인 거래 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주전세 거래는 매도인과 매수인이 매매계약과 전세계약을 동시에 맺는 식으로 이뤄진다. 매도인은 해당 매물의 세입자로 들어가고 매수인은 매매가에서 전세 보증금을 제외한 액수만 매도인에게 지불하는 것이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의 새로운 형태다. 전세계약 기간이 끝나 매수인이 매도인인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면 비로소 거래가 마무리되는 셈이다.
이런 거래는 주로 주택담보대출이 불가능한 15억 원 초과 고가 아파트가 밀집된 서울 강남권이나 경기 분당, 판교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업소는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집은 처분해야 하지만 현재 집에 계속 살고 싶어 하는 다주택자나, 청약에 당첨돼 입주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집주인들이 주로 주전세 방식으로 매물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매수자의 경우 향후 1, 2년 내에 매수 계획이 있지만 집값 오름세가 이어지자 추가 상승을 우려해 이런 ‘주전세’ 방식으로라도 집을 사려 한다.
문제는 주전세 방식이 실거래가 수준을 높이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임대차3법 이후 ‘갭투자’로 거래되는 집은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크게 벌어진 상태다. 기존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은 쉽게 올릴 수 없는 반면 매매가는 훌쩍 뛰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전세로 나온 아파트는 새로 전세계약을 맺는 만큼 대폭 오른 요즘 전세 시세대로 보증금을 받을 수 있다. 매수인도 당장 자금 부담이 줄어든 만큼 일반 갭투자 매물보다 높은 매매가에 동의해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다. 주전세 방식으로 집을 팔지 고민 중인 강모 씨(38)는 “올 들어 서초구와 판교 등에서 이런 방식으로 고가 거래가 많이 이뤄졌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집주인 입장에서는 번거롭게 이사를 갈 필요도 없고 시세 차익도 키울 수 있어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이런 주전세 거래로 매매가 수준이 높아지고 실수요자의 부담을 키우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주인 사정으로 집을 파는 것이니 ‘급매’로 가격을 낮춰 내놨어야 하는데 주전세 방식을 통하면 가격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매도자가 매수인에게 보증금 형태로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사(私)금융”이라며 “무리한 규제를 피해 시장에서 비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면서 일종의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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