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패권주의 온몸으로 막은 베트남..."한국은 서해 내줘"
시진핑의 패권주의 늑대외교 노골화, 정부는 中 서해공정 방치
배성규 논설위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대국 굴기를 선언했다. 외부 세력이 중국을 괴롭히면 피 흘리는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면서 중국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화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중국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주변국에 대해 패권주의 노선으로 나갈 것임을 노골화한 것이다. 미국과 동맹관계인 우리로서는 미국의 대중 견제와 중국의 반격 사이에 끼이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들어 한국을 겨냥해 중국에서 나오기 시작한 말은 ‘서해 공정’이다. 현재 한·중 간에는 서해 경계 협정이 체결돼 있지 않다. 국제적 관행은 양국 간 중간선을 긋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자기들이 땅도 넓고 인구도 많으니 한국 쪽에 훨씬 가깝게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그리고는 동경 124도선까지 자기들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백령도에서 불과 40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이다. 중국은 매일 몇차례씩 해안순시선과 군함을 124도선 부근까지 보내고 해상 초계기도 띄우고 있다. 중국 잠수함이 이 해역에서 작전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중국 해군 사령관은 우리 해군참모총장에게 “한국은 124도선을 넘어오지 말라”고 요구했다. 자기들은 매일 일방적으로 우리 해역 쪽으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나 군 당국은 여기에 제대로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군함과 비행기가 얼마나 넘어오는지 현황도 공개하지 않는다. 중국 눈치만 보면서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서해 공정을 좌시하다간 124도선이 한·중 간 암묵적 경계선으로 굳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시진핑의 패권주의가 가속화할 경우 그럴 위험성은 더 커진다.
이런 일이 실제 벌어진 곳이 남중국해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자기들 마음대로 명나라 시대 지도를 앞세워 구단선이란 경계선을 그었다. 구단선은 베트남 필리핀 등 주변국의 근해만 뺀 남중국해 90%를 중국의 바다로 획정해 놓았다.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억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2016년 필리핀이 중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무시한 채 난사 군도(스프래틀리)와 시사군도(파라셀)를 계속 점거하고 있다. 심지어 이곳에 콘크리를 부어 인공섬을 만들고 군사 기지를 지어 주변국을 위협했다.
베트남의 대응은 달랐다.
베트남은 중국이 2014년 시사군도에 석유 시추선을 보내자 남의 바다에 들어오지 말라며 초계함과 어선 등을 대거 보내 육탄 돌격전을 폈다. 양측이 부딪혀서 싸움이 벌어지고 베트남 배가 침몰하기도 했다. 중국은 베트남에 항의를 했지만, 베트남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베트남에선 대대적인 반중 시위가 일어나 중국인 공장이 불타고 중국인들이 자국으로 대거 대피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베트남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거의 매번 대립하고 충돌했다. 베트남은 기원전 111년 한 무제에게 멸망 당했다. 이후 1000년 가까이 중국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갈등과 싸움이 이어졌다. 베트남은 중국이 공격하고 보복해도 물러나지 않았다. 1979년에는 중공군이 캄보디아에서 베트남군의 철수를 요구하며 국경을 넘어 전면 공격했다. 북서부 지방도시들을 점령했지만 베트남 군의 반격에 고전하다 20일만에 철수했다.
베트남은 중국이 협박하고 보복을 경고해도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나면 중국이 더 세게 압박하고 요구할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강하게 나가면 중국이 베트남을 함부로 건들지 못한다. 베트남은 시사·난사군도 갈등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합참의장을 베트남으로 초청했다. 1971년 베트남전 때 이후 43년 만이었다. 미국의 힘을 빌려 대중국 견제에 나선 것이다. 이번에도 베트남은 미국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화상 통화를 통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미국 입장에서도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려면 베트남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자주성 상실
(편집자주)
"왜 중국에는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도 서해 문제에 있어서 베트남처럼 초기부터 강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우리의 내해를 중국에 야금야금 빼앗길 수 있다.
외교 관계에서 과격한 대응은 피해야 할 일이지만 상대방 눈치만 보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공중증(恐中症)은 심각한 수준이다. 중국에 아무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기 일쑤다. 그래서 사드 배치 때도 중국에 끌려다니다 경제 보복을 당하고 우리 안보 주권인 ‘3불(不)’까지 내줬다. 이런 추세라면 서해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동해에서 독도 부근에 일본 순시선이 한번만 나타나도 득달같이 달려가 대응하는 정부가 왜 중국에는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안 그래도 중국은 시진핑 체제 들어 ‘전랑(戰狼) 외교’를 노골화하고 있다. ‘늑대 전사 외교’라는 전랑 외교는 중국의 이익을 앞세우기 위해 상대방에게 거친 언사와 공격적 태도로 맞서는 일종의 ‘싸움꾼 외교’다. 미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을 향해 공세적 외교를 하는 인사들에겐 박수 갈채를 보낸다. 공세적 민족주의를 통해 국민들의 지지와 단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진핑식 내치(內治)의 한 방편이기도 하다. 시진핑은 이를 통해 자신의 3연임을 관철하려는 속내가 강하다. 시진핑 집권기가 길어질수록 한국을 향해서도 이런 전랑외교가 펼치질 가능성이 크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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