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걷기 '줍깅' [추천시글]
착한 걷기 '줍깅'
2021.07.05
걷기는 참 좋은 운동입니다. 운동화만 신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제주도 올레길, 강원도 바우길, 지리산 둘레길, 바다 건너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힘들게 갈 필요도 없습니다. 동네 숲길도 좋고, 숲이 없다면 도심 가로수 거리를 걸어도 몸은 반응합니다.
나는 머릿속이 꼬였을 땐 무조건 걷습니다.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는 데 3시간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다리가 뻐근하다고 느낄 때쯤 도무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일의 해결책이 떠오릅니다. 그 이후엔 몸도 마음도 다 비워져 편안하게 나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여름밤 달빛·별빛 아래 걷는 것도 참 좋습니다. 눅눅했던 마음이 뽀송뽀송해지면서 한결 너그러워지거든요. 밤 산책의 마법이지 싶습니다.
요즘 걷기에 빠진 이들이 많습니다. 출근길, 정장에 운동화를 신고 나서는 ‘운출족’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걷는 ‘워런치(walunch·walking+lunch)족’, 속도와 보폭을 크게 늘리며 걷기 운동에 탐닉하는 ‘워크홀릭(walkholic)족’도 등장했습니다. 환경을 지키며 걷는 ‘플로깅(plogging)족’은 감동입니다.
플로깅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삭을 줍는다는 뜻인 스웨덴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조깅(jogging)을 합친 말입니다. 우리는 ‘줍깅(줍다+조깅)’이라고 하지요. 국립국어원도 ‘쓰담 달리기’라는 말을 내놓았습니다. 쓰레기를 담는 달리기라는 뜻입니다.
플로깅족은 길거리를 걷거나 뛰면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보호자들입니다, 등산을 하면서 산을 청소하는 ‘클린 산행’, 해변을 청소하는 ‘클린 해변’, 바닷속 쓰레기를 줍는 ‘수중 청소’ 등 장소와 방법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플로깅을 한다는 후배의 인스타그램을 보니 해시태그가 굉장합니다. 플로깅챌린지, 줍깅챌린지, 쓰담달리기, 쓰줍, ploggingday, plogging_seoul…. 함께 줍깅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청년의 게시물엔 “저요”라는 댓글을 달 뻔했습니다. 후배가 ‘20·30 남녀’ 조건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50~70 남녀’로 선배가 따로 모집하십시오.”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래, 넌 젊어서 참 좋겠다.'
줍깅의 운동 효과가 궁금합니다. 마니아들은 줍깅의 장점으로 스쾃 효과를 꼽습니다. 쓰레기를 줍기 위해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면 스쾃과 같은 근력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쓰레기가 담긴 봉투를 들고 달리기 때문에 단순한 달리기보다 50칼로리를 더 소모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습니다.
걸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습니다. 걷는 또 하나의 방법을 배웠습니다. ‘길 위의 명상가’에서 더 나아가 환경까지 생각하는 '착한' 걷기족이 되겠습니다. 함께하실래요. 와사보생(臥死步生·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 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 담당 연구원, 이투데이 교열팀장을 거쳐 현재 한국일보 교열팀장.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