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편협한 반국가적 역사 인식 그리고 文정권 최악의 잘못

 

[사설] 대한민국의 정당성 부정하는 정치인들의 반국가적 역사인식

 

국가지도층을 자처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잇달아 왜곡되고 편협한 반국가적 역사 인식을 드러내면서 국민적 공분을 자초하고 있다. 여권 대선 지지율 1위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1일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충격적인 역사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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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그는 "대한민국이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날에 우리나라가 친일 세력과 우리 땅을 점령한 미군의 합작품이라는 삐뚤어진 역사관을 노골적으로 노출시킨 것이다.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가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역사 인식이다. 미군을 점령군으로 콕 집어 말한 것도 심상치 않다. 앞서 친북·반미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김원웅 광복회장이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한 망언이 알려지면서 사퇴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련은 좋은 편, 미군은 나쁜 편'으로 몰아가려는 김 회장 선동에 힘을 실어줬다는 의심을 사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비판이 잇따르자 이 지사는 "승전국인 미국 군대는 패전국인 일제의 무장해제와 그 지배 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하였으므로 '점령군'이 맞는다"고 재차 주장했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민들은 점령의 사전적 의미를 묻는 게 아니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이 친일 세력의 나라이고, 6·25 때 함께 피를 흘린 혈맹 미군을 점령군으로 폄하해 건국의 정통성에 태클을 거는 의도가 뭐냐고 묻는 것이다. 좌파 운동권의 구시대 유물과 같은 편협한 역사 인식과 노동신문에나 나올 법한 요설로 국민을 갈라치고 갈등을 조장하는 건 지도자가 할 일이 아니다. 여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 역사 편가르기, 반미몰이, 죽창가로 강성 지지층을 끌어들이려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면 소탐대실이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인하는 삐뚤어진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매일경제

 

“보수·진보 모두 인정한 상식, 文정권 최악 잘못은 이를 파괴한 것”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한신대 윤평중(65)교수의 신문 칼럼 데뷔는 1994년 한겨레신문 1면이었다. 3달 간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번갈아가며 격주로 연재했다. 지금은 ‘합리적 보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30년 전엔 ‘진보적 지식인’으로 더 자주 불렸다. 공통점이 있다. 그 당시는 한국 사회에서 진보라는 딱지가 붙으면 불이익을 받던 시절이었고, 최근 10년은 보수라는 딱지가 그런 대접을 받는다는 것.

 

윤 교수는 오는 8월 정년 퇴임을 한다. 원래는 코로나 상황이라 퇴임식도 갖지 않으려 했으나, 몇몇 제자와 동문 요청으로 “방역 조치를 준수한 가운데” 지난달 16일 단출하게 치렀다고 한다. 강의를 계속해달라는 학교 요청도 완곡히 거절했다. “더 젊고 유능한 분들에게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게 사양 이유였다.

 

자유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윤 교수를 퇴임식 직후 두 동료 지식인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격했다. 2012년부터 본지 오피니언면에 기명 칼럼을 연재하며 보수를 미화하고 있다는 게 주요한 이유였다. 퇴임식 다음 날인 17일 칼럼니스트이자 소설가 고종석씨는 “(윤 교수는) 조선일보와 탐욕스럽게 결탁해 그 신문의 극우성을 가려준 미화원”이라며 “(그 덕분에) 조선일보는 ‘꽃을 든 괴물’이 되었다”고 썼다. 그다음 날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권혁범 교수는 “윤 교수의 글은 조선일보의 이분법적 세계관, 극우 성향, 사실 탐구와는 거리가 먼 선전 선동성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한다”고 했다. 윤 교수를 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칼럼니스트도 철저한 능력주의

-(웃으며) 정말로 조선일보를 미화하고 약점을 은폐했나?

 

“고 작가나 권 교수 두 분은 3주에 한 번 실리는 ‘윤평중 칼럼’의 역할을 과대평가한 것 같다. 나는 어느 매체에 기고하든 ‘내 목소리’를 글로 썼고, 조선일보는 그걸 막지 않았다. 다른 신문사와 마찬가지로 조선일보도 다양한 관점을 지닌 외부 논객의 글을 게재하고 있다. 나는 그중 한 명일 뿐이다.”

 

-두 사람의 비판이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그들은 아직도 2000년쯤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가 시작한 안티 조선 운동가들이 가졌던 오류에 빠져 있다. 특정 매체를 악마화하는 태도는 부작용이 너무 많다. 조선일보에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전두환 정권 때의 논조는 어용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문재인 정권에서 노골적으로 어용 언론의 길을 가는 건 한겨레 아닌가. 게다가 안티 조선 운동가들은 소위 ‘칼럼 시장’이 있단 걸 모른다.”

 

 

-그게 무슨 얘기인가.

 

“한국 언론사들은 칼럼니스트를 섭외할 때 철저하게 능력주의에 따른다. 오피니언 리더뿐 아니라 독자들 반응을 철저하게 고려한다.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교수도 원고지 10장짜리 칼럼은 못 쓸 수 있다. 독자들이 외면하는 필자는 생명력이 짧다. 언론사에서 칼럼 연재를 끝낼 땐 가차 없다. 수고했다는 얘기조차 안 할 때도 있다. 장기 연재를 한 건 시혜를 받은 게 아니라 내 글을 찾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찾아보니 신문 데뷔는 한겨레에서 했다.

 

“1994년에 고인이 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번갈아 칼럼을 연재한 게 시작이었다. 그땐 진보 지식인으로 분류됐다.”

 

-본지에 오래 연재해서 보수 지식인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다. 스스로는 보수라고 보는가, 아니면 진보라고 보는가.

 

“다른 신문의 칼럼 제안을 거절한 건 겹치기 출연을 하지 않겠단 내 나름의 상도의(商道義)였다. 물론 진보가 지식인 사회와 공론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보수의 목소리가 온전한 평가를 받기 쉽진 않다. 나는 총론적 관점에서 보수·진보 이분법보다 다양한 논점이나 정책을 각론으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대북 정책에 보수이지만 사회 경제 정책에서 진보인 걸 인정해야 한다. 나도 어느 땐 진보 지식인이었다가 지금은 보수라고 ‘명명’되고 있다. 그런 이분법적 호명을 거부한다. 특정 진영으로부터도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독립 지식인’이고자 한다.”

 

 

-칼럼으로 강도 높게 문재인 정권을 비판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 보나.

 

“나는 박근혜 정권도 강력하게 비판했다. 박 정권은 낡은 박정희 패러다임을 흉내 내다 국정 농단과 무능으로 파산했다. 문 정권의 국정 농단도 그 못지않게 심각하고 전 정권을 능가하는 새로운 적폐를 쌓고 있다. 최악은 자신들만의 진영 논리로 정의와 불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규범의 잣대를 파괴해버렸다는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받아들였던 보편적 상식과 양식이 해체됐다.”

 

김대중의 공화정치 중단한 문재인 정권

-보수·진보 간 갈등이 극에 달하는 추세다.

 

“두 나라가 있는 것 같다. 현 집권층뿐 아니라 보수 진영에도 책임이 있다. 적대와 배제의 정치가 제도화되어서 마치 조선시대 당쟁처럼 정치가 굴러간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 모두 책임이 있다?

 

“나는 보수의 기여는 인정하지만, 그들의 반공주의나 천민 자본주의는 비판해왔다. 그래서 ‘빨갱이’란 비난도 많이 받았다(웃음). 진보 역시 민주화에 대한 헌신은 인정하지만, 선악 이분법과 근본주의적 역사관의 문제를 지적해왔다. 진보는 나를 악의 세력에 부역하는 ‘회색분자’로 간주한다. 보수나 진보 모두 합리적인 분들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 중 어떤 부분을.

 

“다양한 평가가 있겠으나 나는 그가 통합과 화합의 정치에 앞장섰다고 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렇게 탄압했지만,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박정희 기념관 설립을 전폭 지원했다. 지역과 이념을 아우르는 탕평 인사를 하려 애썼다. 그가 공화(共和)정치로 가는 길을 닦았는데, 현 정권은 그 길을 잇지 못했다.”

 

-공화정치는 무엇인가. 민주주의와 비교해 설명한다면.

 

“공화정치는 진영으로 쪼개진 현 상황에 대한 응답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지배 체제다. 필연적으로 다수에 의한 중우정치가 될 위험이 있다. 공화정치의 핵심은 다수와 소수를 동시에 존중하는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제도적으로 대변되는 게 공화정이다.”

 

 

-말은 쉽지만 현실에서 다수와 소수를 동시에 존중하는 게 가능할까.

 

“최초의 공화정인 로마를 보자. 로마는 아테네 민주정이 중우정치로 무너지는 걸 보고 수정·보완한 정치 체제를 만들었다. 귀족을 대변하는 원로원과 민중을 대표하는 민회가 있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집정관은 민회가 선출하고 원로원이 승인했다. 집정관의 독재를 막으려고 2명씩 뽑았다. 그것도 모자라 별도로 호민관 10명을 선출해 집정관에게 거부권을 갖게 만들었다. 호민관끼리도 서로 견제했다. 다양한 정치 세력 간에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 분립이 작동하도록 제도를 만든 거다. 현대에선 그게 삼권분립이다. 현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건 결국 공화정치를 망가뜨리는 길이다.”

 

세대교체를 통해 시대 교체로

윤 교수의 요즘 화두 중 하나는 세대교체와 시대 교체다. 퇴임 후 강단에서 떠나기로 한 것도 스스로 세대교체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정말로 강의를 안 할 건가.

 

“그렇다. 정년 퇴임을 해도 학교에서 필요한 능력이 있는 석학이라면 강의를 해야 한다. 나는 33년간 충분히 강의했고 이제 떠나는 게 옳다는 판단을 내렸다.”

 

 

-왜 그렇게 판단했나.

 

“퇴임한 교수가 강의를 계속하면 학교에서 보통 2과목을 배정해준다. 그러면 그만큼 후학들 자리를 뺏는 게 된다. 대학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내가 몸담은 학교도 보수가 13년째 동결되고 재정 상황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젊고 유능한 철학 박사가 많은데 자리를 못 잡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하는 게 낫다. 당연한 일인데 화제가 되는 게 면구스러울 뿐이다.”

 

-강의 은퇴와 더불어 586세대 문제를 거론했다.

 

“세대교체 얘길 하면서 자연스럽게 꺼낸 것이다. 586 세대는 오랫동안 사회의 기득권을 누렸다. 1997년 외환 위기와 정권 교체라는 시대 변화 속에서 이들은 30대 때부터 정치·경제 권력의 핵심에 들어서서 20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과거엔 민주화에 헌신한 공(功)이 있었지만 이제는 과(過)가 많아졌다고 본다. 인상 비평이 아니라 학자들의 연구로 실증 데이터들이 나오고 있다. 서강대 이철승 교수의 연구나 ‘세습 중산층 사회’ 같은 책들을 보면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이준석 현상'이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되리라고 보는가.

 

 

“역사를 보면 기득권 세력이 스스로 결단해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는 경우는 없다. 지금 2030 세대는 ‘잃어버린 세대’다.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다 보니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세력도 없다. 사회 전체가 586세대 때문에 꽉 막혀서 체증이 일어난 상태다.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통해 시대 교체를 해야 한다는 열망이 이준석이라는 개인으로 분출된 것 같다.”

 

-본인 스스로 세대교체를 실행한 셈인데, 이대로 공론장에서도 퇴장할 건가.

 

“공적인 글쓰기는 독자들이 찾을 때까지 쓸 계획이다. 시장 원리에 따르겠다(웃음). 물론 한겨레로 데뷔한 후 27년간 거의 쉼 없이 칼럼을 써와서 그런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내 글이 가진 긴장감이나 호소력이 예전 같지 않으면 바로 퇴장할 것이다. 그래도 ’100세 철학자' 김형석 선생이 당신 전성기는 65세부터였다고 한 말에 용기를 얻고 있다.”

 

☞윤평중

“철학은 현실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일찍 공론장에 뛰어들었다. 진영 가리지 않고 치열한 지상(紙上) 논쟁을 즐긴 논객. 1956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고려대 졸업 후 미국 남일리노이 주립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한신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2012년부터 조선일보 ‘윤평중 칼럼’을 연재 중이다. 저서로 ‘극단의 시대에 중심 잡기’, ‘국가의 철학', ‘시장의 철학’ 등이 있다.

권승준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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