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읽는 재미 [추천시글]

 

셰익스피어 읽는 재미

2021.06.16

 

요즘 셰익스피어에 푹 빠져 있습니다. 책으로, 실물로 만난 셰익스피어 전문가들에게서 자극을 받아 셰익스피어 전작(희곡 38편, 시집 3권) 읽기에 나섰는데 재미와 배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영국에서 “과거의 인물 중 오늘 저녁에 초대하고 싶은 한 사람을 고르라”는 조사를 했더니 “셰익스피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 나도 그런 생각입니다. 그와 저녁을 함께 하게 된다면 그에게 바쳐진 찬사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말문을 틀까 합니다.

 

첫 번째 찬사는 “셰익스피어는 우리들에게 은쟁반에 황금의 사과를 담아준다네. 우리도 그의 작품을 연구함으로써 은쟁반을 얻게 되지. 하지만 우리는 거기다가 감자를 담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고약한 일이라 하겠지”라는 괴테의 토로입니다. 독일의 자랑인 괴테는 셰익스피어가 황금빛 나는 사과라면 자신은 흙 묻은 감자밖에 안 된다고 한 겁니다.

 

 

다음은 셰익스피어의 '언어 창조 능력'을 사람을 만든 하느님의 능력에 비유한 그리스 작가 카잔자키스의 ‘찬양’을 전할 겁니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인물들의 입에서는 지극히 거칠거나 지극히 부드러운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하느님도 피조물의 입에 넣어주지 못한 단어들이었다.”

 

그를 깎아내린 사람도 있었다는 말도 전할 겁니다. 만년의 톨스토이가 그랬습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흔히 여겨지듯 셰익스피어는 그렇게 위대하지도, 글을 빼어나게 잘 썼던 작가도 아니었다”라고 혹평했습니다. 하지만 <동물농장>의 작가 오웰에 따르면 “이 격렬한 공격은 금세 잊혔고 그 공격을 담은 톨스토이의 에세이는 절판돼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대화의 문이 트이면 정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의 작품을 읽을수록 그가 “ 바람직한 정치는 어떤 것인가, 어떤 정치가 참된 정치인가, 무엇이 인간을 갈등으로 밀어 넣는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작품을 썼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사극에서는 권력을 둘러싼 쟁투가 계속됩니다. 배신과 복수, 충성과 아부, 협박과 회유, 간계와 술수, 투옥과 암살, 교수형과 참수형, 암살이 끊이지 않습니다. 용감하고 헌신적인 왕도 나오지만 무능하거나 자격 없는 왕, 오직 권력만을 추구한 왕, 심지어는 자신이 악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왕이 된 왕도 나옵니다. 그런 왕들이 비참히 파멸하는 과정도 그려집니다. 왕이나 남편을 꼬드겨 악의 길을 선택하게 하려는 왕비와 귀족 부인도 나오고, 지도층의 무도함 때문에 먹고살기 어려워진 평민들의 시위와 반란도 전개됩니다. 어떤 반란은 권력을 찬탈하려는 귀족의 사주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글을 재미로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한 시기는 400여 년 전인 엘리자베스 1세 때입니다. 이 땅에서 임진왜란이 벌어졌던 무렵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다른 왕들에 비해 정치를 잘 했다고는 하지만 전제군주였습니다. 왕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걸로 평민은 물론 귀족도 죽이거나 감옥에 처넣어 자유를 빼앗을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왕을 어리석고 무능하다거나 전쟁터에서 반군의 칼에 목이 날아가 왕조가 바뀌었다거나 하는 작품을 써서 무대에 올린 이유가 궁금합니다.

 

표현의 자유? 어림도 없습니다. 말실수가 목숨을 날리게 한 시대였습니다. 왕과 귀족을 희롱하고, 민중을 자극할까봐 희곡은 사전검열을 받아야 했던 시대였습니다. 그가 희곡을 쓰고 공연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지만 돈 때문에 이처럼 위험천만한 사극을 썼다고 보기도 어렵지요. 주변에 가난한 사람이 많아서?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는 평민을 돕기 위해서? 이것도 아니랍니다. 그는 부유한 중산층 출신이었고, 스스로는 지주였기 때문에 농민의 지위가 강력해질수록 피해를 보게 될 처지였습니다.

 

사극 이야기가 끝나면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같은 작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이들 작품에서도 정치에 대한 그의 의식이 읽힌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유대인인 샤일록이 파멸하는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인종 갈등은 물론 종교 갈등과 젠더 갈등이 숨어 있다고 하는데, 그런 걸 의식하고 작품을 썼습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은 거지요. 어떤 연구자들은 이런 점을 들어 그를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존 로크 등 위대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올리기도 한다는 말도 전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도 물어볼 겁니다.

 

 

헤어져야 할 때가 되면 ‘옥스퍼드 레퍼런스(Oxford Reference)’라는 사이트에서 들은 “그는 우리를 잘 아는데,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라는 말을 전할 생각입니다. (“How come we know so little about him when he knows so much about us?”)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책은 성경입니다. 그다음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입니다. 어떤 ‘인용구 사이트(Quote Site)’에는 4,000여 개가 실려 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아시다시피 여러 세대에 걸쳐 여러 사람이 쓴 책이나 셰익스피어는 혼자서 그 많은 '인용구'를 만들어낸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카잔자키스가 경탄할 수밖에 없지요.

 

400년이 지났는데도 그의 문장이 4,000개나 인용되고 있다면 그 이유는 그의 작품 안에 사랑, 결혼, 성장, 가족, 나이 듦, 죽음, 돈, 정치, 종교 등등…, 모든 인간의 모든 관심사가 들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우리가 즐겁고, 무엇 때문에 우리가 불행해 하는지를 알았던 겁니다. 반면 그 모든 작품을 과연 그가 썼을까 등등 그를 둘러싼 몇 가지 오래된 의심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작품과 생각은 너무나 뛰어난데, 작가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기에 생겨난 의심입니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관련한 셰익스피어 말씀 하나 인용합니다. “What is past is prologue.” 말년 작 ‘템페스트’에 나옵니다. 직역하면 “과거라는 것은 전주곡이다”쯤이 될 이 말을 나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가 사극을 통해 우리에게 하고자 한 말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셰익스피어 읽는 재미’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글이 산만하고 길기만 해서 ‘횡설수설 셰익스피어’라고 바꾸고 싶습니다. 아마추어의 한계입니다. 정말 셰익스피어 읽는 재미를 느끼고 싶으시다면 안내인 역할을 해줄 책 두 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다>와, <세계를 향한 의지>입니다. 앞에 것은 한국외국어대학 외래교수이면서 자유칼럼 필진인 권오숙이, 뒤에 것은 하버드대의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스티븐 그린블랫이 저자입니다. 그린블랫은 2018년에는 '폭군'을 출간했는데, 트럼프 같은 인물이 어떻게 해서 대통령까지 되었나, 민주주의는 왜 망가졌는가를 셰익스피어 사극을 토대로 분석한 책이라고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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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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