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멘탈왕’ 조국의 농간 [추천시글]

 

‘최고의 멘탈왕’ 조국의 농간

2021.06.14

 

15년쯤 전입니다. 어느 회사의 부장이 해사행위를 한다고 그 아래 차장이 회사에 보고한 일이 있습니다. 회사 재산을 함부로 사용(私用)하고, 임의로 용역계약을 체결한 외부 회사가 실은 본인 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인사위원회가 열렸을 때 위원들은 차장의 말을 별로 믿지 않았습니다. 말이 어눌하고 생긴 것도 볼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답답하다는 듯 “우리 부장은 황우석 같은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한 뒤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그 한마디로 위원들은 부장의 실체를 알게 됐습니다. 희고 미끈한 얼굴에 인사성 밝고 언변도 좋은 사람의 이미지 뒤편에 감춰진 부정직과 비리가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그는 징계를 받았고, 얼마 안 돼 퇴사한 그의 자리는 차장이 물려받았습니다.

 

황우석이라는 이름에 조국을 바꿔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훤칠한 용모에 멋지고 선량한 표정, 학식과 지성으로 포장된 정의로운 활동가의 추한 실상이 드러난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수난당하는 예수라도 되는 듯 오히려 더 비호하고 응원·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가 낸 회고록 ‘조국의 시간’이 몇 주째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출판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며 골수팬들이 열광하는 것과 달리 냉정하거나 비판적인 이들은 무성의한 짜깁기와 SNS의 글을 옮겨 올린 지적 수준이 한심하다고 말합니다. 자기애에 빠진 감상적이고 유치한 글인 데다 참회록을 써도 시원찮을 판에 글의 절반은 할 필요가 없는 말, 나머지 절반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썼더라고 혹평한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사에 대해 촌철살인적 논평을 잘 하는 블로거는 책 제목 ‘조국의 시간’을 보자마자 ‘조국의 농간’이라고 바꿔 불렀습니다. 농간(弄奸)은 ‘남을 속이거나 남의 일을 그르치게 하려는 간사한 꾀’입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의 종합 베스트셀러 코너. 6월 8일 촬영.

 

나도 그의 평가를 받아들여 그동안 조씨가 어떤 농간을 부렸는지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겉으로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으면서 속으로는 위선과 부정직, 범법행위로 세상을 살더라도 중요한 벼슬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농간을 부렸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은 아무나 맡을 수 있는 자리가 됐습니다. 특히 법무부 장관은 조국 이후 사악하고 부정직한 위선자들이 독점하는 자리가 돼버렸습니다. 게다가 조씨는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계속되면서 논란이 커지자 취임 35일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남으로써 문재인 대통령에게 큰 마음의 빚을 떠안기는 농간을 부렸습니다.

 


그 이후, 조씨의 딸은 표창장을 위조해 의전원에 입학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아내는 공직자에게 금지된 사모펀드와 주식 차명거래를 한 게 드러나 구속됐습니다. 딸도 경우에 따라서는 의사직을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조씨 부부의 지인들은 실력으로 의대나 법대에 가기 힘든 조씨의 딸과 아들을 위해 서류를 위조해 주거나 인턴을 했다고 허위 증언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조씨의 책에 빗대어 ‘위조의 시간’에 허위서류를 만들었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힘들고 괴롭고 남들에게 피해를 준 게 미안해서라도 자숙하거나 참회를 할 텐데 조씨는 그러지 않습니다. 수년간 SNS에 썼던 거룩한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신을 공격하는 '조로남불‘현상이 계속되는데도 억울하게 고초를 겪는 것처럼 처신하는 농간을 부리고 있습니다. 서민 단국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멘탈왕 조국‘입니다.

 

그런 조씨가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책을 써내려갔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하며 복수하듯 책을 냈습니다. 이런 책을 냄으로써 조씨는 출판이란 게 문화적으로 그리 엄숙하고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농간을 부렸고, 경영에 애로를 겪는 출판인이 책을 내자고 먼저 말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이제 제발 그만했으면’ 하고 생각하는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에게 큰 짐이 되는 농간을 부리고, 내년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거나 간을 보는 사람들에게 언제 책을 내야 ‘조국의 시간’을 비켜 가나 하고 눈치를 보게 만들었습니다.

 

 

정의와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도 머리를 쓸어 넘기는 멋진 포즈와 언변으로 자신을 포장해온 사람이 이제는 정권의 굴레가 됐습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근본 원인은 본인 잘못이지만 조씨의 농간도 작용한 게 엄연한 사실입니다. 지식인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 소위 진보 지식인 중에 이런 인간형이 실재한다는 것을 조씨는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농간이 앞으로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합니다. 다만 나는 그가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이런 단계를 거쳐 발전해왔습니다. 정보화 다음은 공정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6·29가 한국사회 민주화의 큰 분수령이었다면 조국은 한국사회 공정화의 큰 분수령이 아닐까요? 공정의 가치와 중요성을 조씨처럼 실증적으로, 구체적으로 알려준 인물은 아직 없었습니다. "그 사람 조국 같은 사람입니다", 이 한마디로 문제가 정리될 수 있는 경우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의 실체가 드러난 건 대한민국을 위해 정말 다행이며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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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미디어SR 주필,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등 수상. 저서 ‘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 ‘손들지 않는 기자들’, ‘노래도 늙는구나’,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등.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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