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추천시글]

 

 

사람의 향기

2021.06.10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특유의 향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같은 종류의 생명체라도 제각기 다른 향기를 품고 있습니다. 살아 숨 쉬는 생물이 아닌 물건조차 제 나름대로 냄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향기는 코로 맡는 게 아니라 오감(五感)으로, 아니 어쩌면 마음으로 맡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의 눈과 코,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의 맛은 특히 그 음식을 만들어 내어놓는 사람의 정성과 향기가 배어 더욱 감칠맛이 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코로나로 세상살이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 팍팍해지고 갑갑해졌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니 뭐니 해서 개인적인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생활에 윤기를 더해주던 이런저런 모임들이 갈수록 뜸해지고 아예 사라져갑니다. 친지들 얼굴 한번 보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세상 사는 재미가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지요.

 

 

그래도 숨은 쉬어야 하겠고, 어쩌다 한 번씩 콧구멍에 새 바람도 넣어야 할 것 같아 조심조심 몇몇 친구들과 자주 드나들던 음식점을 찾았습니다. 특별한 음식은 아니지만 비교적 정갈하고 간도 알맞아 입에 넣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던 집입니다. 무엇보다 여주인의 언사가 늘 싹싹하고 친절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따금 실없는 농담을 해도 크게 탓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잘 받아주니 그보다 편안한 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 여주인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좀 섭섭해서 전에는 자주 못 보던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기~ 사장님은 오늘 안 보이시네. 어디 가셨나요?”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다소 불편한 기색으로 대꾸했습니다.

“제가 주인인데요.”

“아니, 저기~ 그 키 좀 크고 이렇게 머리를 틀어 올린 여자분 있었잖아요?”

“아, 인천 아줌마요! 그 아줌마는 집안일 땜에 그만두었어요.”

 


그제서야 아차, 큰 실수 했구나 싶었습니다. 올 때마다 이것저것 성가신 부탁을 해도 시원시원하게 들어주는 바람에 주인인가 보다 했더니 완전히 잘못 짚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속았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아쉬운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주인으로 억측한 건 제 잘못일 뿐 그 아주머니가 자기 입으로 주인이니 사장이니 말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이상한 일은 음식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고, 진짜 주인이 특별히 섭섭하게 대한 것도 아닌데 그 후로는 더 이상 그 집을 찾아갈 기분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집 음식맛보다는 손님들을 스스럼없이 대해주던 그 아주머니의 향기에 더 취해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그 음식점뿐만이 아닙니다. 간단히 커피 한잔, 술 한잔 마셔도 커피나 술 맛보다는 손님을 응대하는 사람의 말씨나 자세가 더 손님의 마음을 좌우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더러는 거리가 훨씬 먼데도 차를 타고 달려가고, 값이 조금 더 비싼 듯해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는 것일 겁니다.

 

 

거꾸로 손님이 찾아올세라 내쫓는 듯한 가게도 없지 않습니다. 이따금 친구와 저녁을 함께 먹고 커피 마시러 가는 조그맣고 조용한 카페가 있었습니다. 그 집엔 언제 가도 주인은 보이지 않고 아르바이트생인 듯한 젊은 처녀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처녀는 밤길 걱정 때문인지 8시 반쯤 되면 벌써 안절부절 눈치를 주곤 했습니다. 10여 분쯤 앞당겨서 “저희 가게는 9시까지예요.” 하고 미리 통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늘 급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고 쫓겨나는 기분으로 나서야 했습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손님 마음을 좀 더 편안하게 해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찾아오고, 매상도 더 오르고, 그러면 주인이 기분이 좋아져서 보너스라도 더 줄지 모를 텐데. 속으로 늘 그런 생각을 했지만 처녀는 언제 가도 어김없이 손님을 쫓아낼 듯한 자세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손님이 들어오면 직원들이 반갑고 기쁜 표정으로 맞이하는 가게도 있고, 성가시고 피곤하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가게도 있습니다. 물론 그게 그 직원의 탓인지 주인의 탓인지, 속단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손님이 많이 들어와 매상이 많이 올라야 주인도 넉넉한 마음으로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더 챙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또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해야 보람도 느끼고 일하는 시간도 더 빨리 지나가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엊그제는 친구가 새로이 개발했다는 새 커피집을 찾아 한참을 걸었습니다. 커피를 시키면서부터 바리스타 처녀와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빈 커피잔을 돌려주면서 일부러 “저 친구 너무 성가시게 구는 거 아니에요?”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웬걸, 처녀는 “아뇨. 오실 때마다 늘 재미있으세요.” 하며 생글거렸습니다. 커피향보다 더 짙은 바리스타 처녀의 향기에 취해 친구는 아마도 그 커피집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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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2006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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