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농촌의 고교 연극단[추천시글]

 

 

한여름 밤 농촌의 고교 연극단

2021.05.18

 

텔레비전은 물론 라디오도 귀해서 장날 약장수만 와도 구경거리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KBS 라디오에서 '삽다리 총각'이라는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어둑해질 무렵 라디오에서 “총각! 총각! 삽다리 총각!” 하는 드라마 주제가가 흘러나오면 동네가 조용해졌습니다.

 

라디오가 없는 집 사람들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안방에 사람이 가득차면 마루에 앉아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성우들의 목소리에 한숨을 쉬거나,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밤 10시가 되면 문화방송에서 '전설따라 삼천리'가 방송됩니다. 당숙 집에 놀러를 갔는데 '전설 따라 삼천리'가 방송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마니를 치시던 당숙은 이 시간을 기다리셨다는 얼굴로 담배부터 입에 무셨습니다. 담배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뒷문을 살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겨울바람 소리가 사나운데도 눈을 지그시 감고 들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때였습니다. 갑자기 연극을 하고 싶었습니다. 연극을 하려면 희곡을 써야 합니다. 그 시절에는 ‘극본’이라고 했습니다. 극본에 대한 상식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본 작품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연극을 하고 싶다는 열정에 4막5장짜리 단막극을 노트에 썼습니다.

 

​그 시절 화두가 ‘반공·방첩’이었습니다. 동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벽이며 전봇대, 담벼락에는 온통 빨간색 스프레이로 뿌려 쓴 ‘반공·방첩’이었습니다. 극본의 줄거리는 남파된 간첩이 아버지의 고향인 충청도로 갔다가, 이장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할아버지의 생애를 듣고 감동한 나머지 자수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극본이 완성되었으니까 공연을 할 차례입니다. 요샛말로 친구들을 꼬드겨서 방과 후에 연극 연습을 하기로 했습니다. 담임선생님께 찾아가서 극본을 쓴 노트를 내밀며 학교에서 연극을 공연하고 싶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일주일 후에 영어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는 전갈을 보내셨습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찾아갔더니 극본을 쓴 노트를 보여주시며 “이거, 네가 직접 쓴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너무 못 썼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제가 썼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영어선생님은 평소에 극본을 써 보았느냐? 연극을 직접 본 적이 있느냐? 평소에 글쓰기를 좋아하느냐 등 여러 가지를 물으셨습니다. 말씀 끝에 정말 잘 썼다며 교장선생님도 허락을 하셨다, 방학을 시작하는 첫날 자매결연 마을에 가서 공연할 것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기쁨에 대한 소감은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원작자 겸 연출자, 출연자로 극단을 이끌어 갔습니다. 가끔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서 안 하겠다며 빠지겠다는 친구를 찾아가서 설득을 하고, 때로는 없는 돈에 빵을 사주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연습을 하다 보니 방학식 날이 됐습니다.

 

강당에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 서무실에 근무하는 행정직원 등이 모였습니다. 수십 명의 선배들도 관람객이 됐습니다. 집에서 부모님들이 입으시는 코트며 치마에 저고리를 입고, 만물상에서 산 루주로 입술까지 칠한 친구들이 무대에 섰습니다. 저는 관람석에서 안 보이는 무대 옆에 숨어서 작은 목소리로 극본 내용을 읽어줬습니다.

 

 

그때는 한 막이 끝나면 징을 쳐서 알렸습니다. 무대 옆에 숨어서 징을 울리며 “1막이 끝났습니다” 라고 설명을 한 후에 막을 내리고 2막을 준비하는 식으로 진행이 됐습니다.

 

단원들의 서툰 연기에 웃음이 연신 터져 나오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마지막까지 공연을 하고 무대인사까지 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대견하다는 칭찬과 함께 봉사반 학생들도 동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대절해 주신 트럭을 타고 자매결연 마을로 갔습니다. 여름방학이라서 농촌은 한가한 때입니다. 그날 밤 무대가 될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 밑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학생회장이 학교에서 준비해 주신 농사용 분무기와 삽과 괭이 몇 자루를 이장님께 기증을 했습니다. 학생회장을 비롯한 봉사단원들은 냇가에 의자를 준비하고 어른들 이발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정자나무 밑의 들마루 위에 무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간판을 그리는 친구 삼촌이 그려주신 배경을 걸었습니다. 포장으로 분장실을 만들고, 정자나무 근처 집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등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두 명은 집집마다 순회를 하며 오늘 저녁 정자나무 밑에 연극 구경하러 오라고 안내를 했습니다.

 

저녁은 두 명씩 조를 짜서 각각 다른 집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저와 짝은 이장 댁에 배정을 받아서 푸짐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종찬이라는 친구와 형옥이는 노부부가 사는 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감자를 섞은 밥이 나와서 형옥이가 불평을 늘어놨습니다. 종찬이는 평소에도 좋아하는 감자밥이라 두 그릇이나 먹었다며 좋아했습니다.

 

드디어 밤이 됐고, 정자나무 밑에는 환하게 전등불이 밝혀졌습니다. 동네 강아지까지 구경을 왔을 정도로 50여 가구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우리는 예상보다 많이 나온 구경꾼들 때문에 긴장이 되었습니다. 긴장 탓인지 실수가 터졌습니다.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될 때입니다. 3막에서 나와야 할 친구가 불쑥 무대로 나가서 혼자 연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저는 잠깐 고민을 하다 2막을 빼기로 하고 그냥 진행을 시켰습니다. 서툴고, 어색하고, 민망하기까지 할 정도의 연극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무언가 미진한 얼굴로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즈음 유행하는 가요콩쿠르를 열기로 했습니다.

 

​이장님이 상품은 낮에 봉사반원들에게 기증받았던 삽이며 괭이를 주기로 했습니다. 배경 음악을 연주하던 친구가 기타로 반주를 하기로 하고 저는 사회를 보기로 했습니다. 칠순이 넘은 할아버지부터 초등학교 1학년까지 한밤중의 노래자랑이 흥겹게 이어졌습니다. 어르신들이 흥겹게 노래를 부를 때는 몇몇 분들이 앞으로 나가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며칠 후에 조선일보에 기사까지 난 연극의 밤은 자정이 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이튿날 각각 아침을 먹고 정자나무 밑에 모였습니다. 종찬이와 형옥이는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아침에 콩밥이 나와서 형옥이는 맛있게 먹었는데 종찬이는 억지로 먹었다는 겁니다.

훗날 나이가 들어서 친구들에게 자매결연 마을에 가서 연극했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종찬이와 형옥이 말이 나옵니다. 그때는 맛이 없었던 감자밥이며 콩밥이 지금은 너무 그립다며 웃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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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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