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매물 안 나오는 이유

 

   “벌써 5월 중순인데요. 5월 말 잔금 조건의 급매물은 이제 없다고 봐야죠.”

 

정부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 부동산 시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을 강화한 정책이 시행되는 오는 6월부터 다주택자들의 세금 회피 부동산 물건이 시장이 대거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세금이 오르기 전에 다주택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8일 서울 잠실의 한 중개업소에 ‘급매’ 게시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달 들어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는 매도인과 매수인 간 희망 가격 격차가 커 아파트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거래 절벽’이 나타나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오는 6월 1일부터 다주택 중과세율은 2주택자와 3주택자 각각 10%포인트씩 인상된다. 2주택자가 조정대상 지역에서 주택을 양도하면 26~65%, 3주택자는 36~75%의 세금을 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의 과세 기준일인 6월 1일 이전에 팔면 두 가지 세금을 이낄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주택자의 동요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1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시장에 매도 물건은 여전히 많지 않은 상황이다. 급매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직전 실거래가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5월 말 잔금 조건의 급매물이 나올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보고 있다. 벌써 5월 중순이 넘어가고 있어 계약을 5월 말까지 마치기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주택자들은 각종 세금 부담에도 왜 주택을 정리하지 않는 걸까.

 

① 지금 집 팔면 자산 대폭 줄어… “굳이 집 팔 이유가 없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자산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다주택자들의 셈법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집을 두 채 가지고 있을 때 자산과 이 중 한 채를 매도했을 때의 자산 규모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서초구의 반포자이 전용면적 84㎡(현재 28억원 호가)를 소유하고 거주 중인 A가 서울 마포구의 신공덕삼성래미안1차 전용면적 84㎡(13억9600만원 호가)도 2017년 12월부터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A의 자산은 약 42억원이다.

 

하지만 6월 이후 마포구 아파트를 현재 호가에 매도한다고 하면 양도소득세로 3억7605만원을 내야 한다. 6월 말까지 파는 경우보다 7000만원쯤 늘어난 금액이다. 만약 2019년 6월 1일에 5억원의 전세계약을 맺은 것이 있다고 하면, 매도액 13억9600만원에서 8억7605만원을 제외한 5억2000만원만이 수중에 남는다.

 

A의 자산은 반포자이 아파트에 아파트 매각이익을 더해 33억2000만원 수준으로 약 9억원 가량이 줄어든다. 순자산으로만 계산하면 4억원쯤이 주는 것이지만, 체감하는 전체 자산 감소 규모는 큰 셈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자문센터 세무사는 “이런 세금을 안내해주면 상담을 온 많은 분들이 매도를 재고해보겠다고 한다”면서 “자산 가치가 하락세에 접어든다는 판단이 들면 의사결정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현재는 그렇게 보는 분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집을 팔아도 세금 등 비용을 빼면 자산이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당장 자금 융통이 다급하지 않은 다주택자들 굳이 집을 팔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버티기’에 나서는 이들은 현행 양도세 규제가 과한 만큼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당·정에서 양도세 완화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부동산 양도소득세 과세가 정치 싱황이나 경제 상황 등에 연동돼 강화 기조와 약화 기조를 오간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967년 일부 지역 토지의 양도차익 50%를 과세하는 부동산 투기억제세(양도세)가 도입된 이후 1978년엔 양도세 강화, 1981년엔 양도세 완화, 1989년엔 또 다시 양도세 강화 등으로 정책이 바뀐 바 있다. 이는 1999년 이후로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버티면 자산 가격이 오를 것이고 양도세 규제는 완화 쪽으로 손질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워낙 큰 상황에서 당장 자산 손실을 감소하고 매도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② 내 아이는 내 집 갖기 어려운 시대… ”아이야 얼른 커라, 엄마가 버틴다”

10~20대 자녀를 가진 다주택자의 경우도 버티는 쪽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4~5년새 주택 가격이 급등하고 대출 규제가 가해지면서 자녀들이 서울이나 수도권에 내 집 마련을 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 마포구의 신공덕삼성래미안1차 전용면적 84㎡(13억9600만원 호가)를 현재 시점에 매수하고 거주하려면 적어도 자기자본이 9억3000만원은 있어야 한다. 그마저도 세후 연봉이 대기업 수준인 4800만원 이상이어서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4억5920만원을 조달할 수 있을 때 얘기다. 20~30대가 자기자본 9억3000만원 모으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주택을 성년 자녀에게 증여한다고 생각하면 다주택자 부모들은 큰 시름을 덜어낼 수 있다. 신공덕삼성래미안1차를 자녀에게 주면서 내야 하는 증여세는 3억6704만원이다. 자녀는 3억6000만원 정도의 자금을 통해 주택을 보유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다주택자 부모는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보유세 부담을 견뎌내면 양도소득세(3억7600만원)와 비슷한 비용으로 자녀에게 주택을 마련해줄 수 있다.

 

시중은행 부동산 전문가는 “예전엔 자식이 장성한 부모들이 자녀 집 마련을 걱정하곤 했는데, 최근엔 큰 부자가 아닌 일반 직장인들이나 16~17살 청소년 자녀를 가진 이들도 자녀 집 마련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양도세 부담이 증여세 부담보다 크기까지 한 만큼 다주택자 부모는 매도보단 증여를 더 우선으로 둘 수 밖에 없다”고 했다”고 했다.

 

 

16일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 단지 내 부동산 중개업소에 급매 광고가 줄지어 붙어 있다. 서울 부동산 시장은 8·2 부동산 대책의 여파로 급랭했다. 약세장(場) 지속 기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6개월~5년으로 의견이 갈린다.

 

③ 현금 들고 있기 무서운 시대… “팔고 딱히 살 것도 없다”

자산가치가 오르고 현금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이유다. 예를 들어 KB국민은행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이후 지금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34.95%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원구 집값이 지난 4년여간 52.09% 올라 서울에서 가장 많이 뛰었고, 영등포구 48.04%, 양천구 46.21%, 송파구 44.49% 순으로 나타났다.

 

https://www.etoday.co.kr/news/view/2026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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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으로 10억원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10억원짜리 집을 가지고 있었다면 3억4950만원의 평가이익을 봤을 것이란 뜻이다. 노원구에 집을 가지고 있었다면 약 5억2000만원의 평가이익을 볼 수 있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도 43%나 올랐다. 마찬가지로 현금 10억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보다 주식에 투자한 사람이 4억3000만원 만큼 훨씬 자산을 키울 수 있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면서 이자 상승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우리나라는 2017년 ‘6.19 대책’부터 조정대상지역 주택담보대출비율(LTV)를 70→60%로, 총부채상환비율(DTI)를 60→50%로 조정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2016년에 LTV 70%를 받고 신용대출 등을 모두 동원해 집을 산 사람의 경우 서울 시내 주택 가격이 2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에 LTV 비율은 40% 수준으로 낮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집을 팔고서 투자를 어떻게 할 지 모르겠는데다 집값이 한동안 더 오를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 다주택 상황을 쉽게 청산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재건축을 비롯해 규제 완화 기대감까지 가미되고 있어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보는 이들은 실상 많지 않고, 매물이 나올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했다.

연지연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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