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대통령의 사저 [추천시글]

 

퇴임 대통령의 사저

2021.05.06

 

퇴임 대통령의 사저는 끊임없는 말썽거리이다. 정상적으로 퇴임하지 않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과 5·16 군사혁명으로 중도 퇴진한 고 윤보선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서거에서 5공 출범까지의 과도기 대통령이었던 고 최규하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이 퇴임 후 사저문제로 곤욕을 치렀거나 아직도 치르고 있다.

 

그런 생생한 역사가 교훈이 되지 못하고 퇴임을 1년이나 남겨둔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양산의 고향에 퇴임 후의 사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다시 물의를 빚고 있다. 당장 농사를 지을 형편도 아니면서 농지를 매입한 것부터 불법 시비를 불렀다.

 

지난달 사저가 들어설 마을 주민들이 ‘주민 동의 없는 사저건립은 없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자, 원래 살던 동네에선 ‘우리 동네로 와서 농사짓고 사세요’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고향에서 대통령을 놓고 마을끼리 반목하는 것은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청와대는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라며 일단 공사를 중단했다.

 

 

전직 대통령이 오게 되면 조용하던 시골 동네가 시끄러워지고, 주민들의 사생활에 제약이 뒤따르는 등의 불편이 생길 수 있다. 그렇기로 대통령의 귀향을 반대하는 시골 인심이 야박하다는 생각과 함께 문 대통령의 소통 미숙의 단면을 보는 듯도 하다.

 

대통령 사저 문제는 늘 경호 및 경비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독립주택이 아니라 집단주택에서 살았다면 퇴임 후에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경호경비의 애로는 물론 이웃들에게 주는 불편이 크기 때문이다.

 

​사저가 단독주택이라면 인근에 경호원 숙소를 지을 땅이나 집을 장만해야 한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경우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초 서초구 내곡동에 새로 집을 지으려고 땅을 샀으나 불법매입문제가 불거져 포기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삼성동의 단독주택을 팔고 내곡동에 집을 샀으나 뇌물죄 추징금문제로 검찰에 압류당해 입주가 불투명하다.

 

​전직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전직대통령예우에 관한 법에 규정돼 있다. 퇴임 후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연금이나 각종 수당 등의 예우가 박탈되지만 경호경비 예우만큼은 받게 돼 있다. 신변상 위해가 가해지는 것만은 막자는 취지에서일 것이다.

 

신변 위해와 관련해서는 북한의 테러 가능성이 우선 꼽히지만, 내부적으로 재임 중 반대세력들에게 원한을 살 일이 많았다면 위해의 위험성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5·18의 원죄를 안고 있는 전두환 대통령은 아마도 그중에서 대표적인 경우로서 사저문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에 대한 경호가 허술했다면 그와 함께 12·12 사태의 주역인 노태우 대통령의 사저까지 있는 서대

 

퇴임 후 경남 양산으로 귀향할 예정인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 건립을 둘러싸고 주민들이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전직 대통령 사저문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 철통같은 경호 경비로 신변위험에 대비하고 있다.

 

문구 연희동 일대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경호의 삼엄도는 재직 중의 실정의 정도에 비례하는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 사저는 추징금을 둘러싸고 그의 가족과 검찰 간에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본채와 정원은 뇌물관련성이 없다고 보았으나, 최근 법원은 별채의 건물과 부지는 뇌물관련성이 인정돼 검찰의 압류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미국의 경우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현직에 못지않게 삼엄하다. 이는 미국이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많이 해온 나라로서 국가나 단체 차원의 적들은 물론 9·11테러처럼 미국 내부에 자생적 테러단체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부에 많은 적을 두게 되는 독재국가일수록 국가원수의 경호가 삼엄해지는 것도 같은 원리라고 하겠다.

 

 

​같은 미국 대통령이라 해도 치적에 따라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의 강도는 달라진다. 전쟁을 주도한 적이 없는 카터 대통령은 고향 조지아주 플레인즈 시에서 자신이 지은 침실 두 개짜리 집에서 산다고 2018년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그는 17만 달러로 그에게 붙은 경호차량 한 대 값보다 싼 집에서 할인마트에서 사온 포도주를 주민들과 마시며 산다고 했다.

 

​그런 예는 우리에게도 있다. 최규하 대통령은 퇴임 후 마포구 서교동의 자신이 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사저에서 연탄불 갈며 이웃 주민과 어울려 지냈다. 집 앞의 시유지에 경호동이 있었지만 사실상 경호가 필요치 않은 삶을 살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사건으로 인해 퇴임 후가 평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고, 그것이 보다 효율적인 경호를 위해 내곡동 사저 신축계획을 세웠던 이유라고 하겠으나 대통령의 사저 부지를 회사 사장이 공장 부지를 사듯이 하다 낭패를 보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삼성동 자택을 보완해서 경호시설을 갖출 생각 대신, 내곡동 가옥매입을 선택, 퇴임 후 그 집에서 20여일 머물다 영어의 몸이 됐다. 재직 중에 이렇다 할 원한 살 일은 없었던 대통령으로서 경호에 과잉 신경을 썼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처럼 귀향을 택한 것은 바람직한 선택이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처럼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가 주민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생을 마감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은 것은 비단 필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귀향한 대통령의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중 두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 4명의 국정원장 등 최고위 공직자 다수를 감옥으로 보냈고, 수사 과정에서 자살한 고위공직자도 여럿이다. 전두환 대통령 정도는 아니더라도 경호에 상당한 긴장을 요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양산 사저 설계에 경호 개념이 과잉이면 주민설득은 물론 귀향에 장애가 될 뿐임을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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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주간한국,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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