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보다 나은 것"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

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자율주행차 등 첨단산업 한국이 일본 추격

韓 청년인재, 日 장애인 배려가 각각 장점

기술과 문화 어느 하나 뒤처지지 않은 한국

장애인 인권과 복지 대하는 인식과 태도 바꿔야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살고 나머지 절반은 미국과 일본에서 살았다. 한국에 올 때마다 이 나라가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는지를 느낀다. 작년부터 한국 생활을 시작한 아내는 한국의 배달 서비스와 홈쇼핑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KTX 모바일 예매 서비스의 편리함에 감동했다. 불과 삼사 년 전만 해도 한국은 자율주행차, 전기차, 로봇, 우주항공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일본에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무섭게 일본을 추격하고 있다. 불과 삼사 년 만의 변화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20년 넘게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한국이 일본보다 나은 것은 어떤 점인지, 또 일본이 한국보다 나은 것은 어떤 점인지를 묻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한국이 일본보다 나은 것은 청년 인재이고, 일본이 한국보다 나은 것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라고 답한다.

 

일본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시골에서 휠체어에 탄 장애인이 시외버스에 탑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몹시 부러워했다. 시외버스 자체에 휠체어를 탑승시킬 수 있는 장치가 있었고 운전사가 그 장치를 가동시켜 장애인의 탑승을 도왔다. 도쿄에 이주한 후에는 시내버스에도 같은 장치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미리 연락을 하면 정류장에 도우미가 와 있다가 운전사를 도와 휠체어를 탑승시킨다. 장애인의 승차를 돕다 보면 버스가 잠시 정차하게 되는데 승객 중 아무도 불평하는 이가 없다. 모두들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장애인 고용률 2.3%에 대비한다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장애인에 대한 「매니지먼트」와「배려」의 밸런스  HRプロ

 

障害者法定雇用率が令和3年3月1日から引き上げられ、民間企業の雇用率は2.2%から2.3%となりました。新たに障害者雇用率の該当になった企業、担当者の方が、障がい者雇用をはじめるにあたり「知っておくとよいこと」、「進めていくために必要なこと」について、4回にわたりお伝えしています。

 

障がい者雇用というと、必要な配慮が強調されがちです。もちろん配慮も必要ですが、それよりも大切なのは、障がい者が仕事を遂行できるように教えることや、マネジメントすることです。最終回の4回目は、「障がい者のマネジメントと配慮のバランス」について考えていきます。

 

(장애인 법정 고용률이 3월 1일부터 변경되어 민간 기업의 고용률은 2.2%에서 2.3%가 되었다.새롭게 장애인 고용률에 해당이 된 기업, 담당자가, 장애인 고용을 시작함에 있어서 「알아 두면 좋은 것」, 「진행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에 대해서, 4회에 걸쳐 전하고 있다.

 

장애인 고용이라고하면 필요한 배려가 강조되기 쉽다.물론 배려도 필요 하지만,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 일을 수행할수 있도록 가르치고 관리하는 것이다.)

https://www.hrpro.co.jp/series_detail.php?t_no=2351

 

edited by kcontents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친한 일본인 친구 중에 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끼리 친하다 보니 엄마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데 항상 밝고 명랑한 부인이라 아내가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부인의 장애인 아이는 형과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아이를 전담하여 봐주는 선생님이 따로 계셨다. 아내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학교에서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에 대해 따로 수업료를 내야 하는지 물어본 모양이다. 부인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만일 돈까지 따로 내야 한다면 더 슬플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4학년 무렵에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 중에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가정이 있었다. 한번은 친하게 지내는 몇 가정이 같이 여행을 갔는데, 관광지에 도착하자 도우미가 우리를 맞이했다. 장애인 아이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 아이는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일본인 교사들이 한국의 장애인 복지제도에 대해 관심 있게 묻곤 했다고 한다. 아이의 엄마는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실 그대로 말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쓰렸기 때문이다.

 

와세다대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젊은 경제학자가 있었다. 하루는 같이 차를 마시다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지을 때 인근 주민이 심하게 반대하는 경우가 있는지를 물었다. 과거에는 그런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거의 들은 바가 없다고 한다. 장애인 시설이 인근 주민에게 피해를 줄 거라는 선입견이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최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언론의 편향성을 지적하면서 외눈이라는 표현을 써서 동료 정치인의 비판을 받았다. 그가 장애인을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오히려 장애에 대해 편견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를 향한 비판에 억울해하는 것이 그래서 이해가 간다. 우리는, 특히 50대 이상 세대는 장애와 관련된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절름발이 정부, 눈먼 장관, 외눈의 언론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뜻이 내포돼 있다.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이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지만,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라는 면에서 한국은 아직 대부분의 선진국에 한참 뒤처져 있다. 제도나 시설의 문제만이 아니다. 장애를 보는 우리의 인식 자체도 후진적이다. 봉준호 감독이나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수상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은 기술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일본에 뒤처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보다 못한 것이 있다면 장애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과 태도일 것이다.

동아일보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