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주택법...."분양 받아 집값 떨어지면 이사도 못가"

아파트 분양 받아 집값 떨어지면 이사도 못 가나...엉성한 주택법 논란


    로또 분양 당첨자들의 단기 이익환수를 막기 위해 강제매입 조항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에 집값 하락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정안에 따르면 분양가 상한제를 받은 수도권 아파트를 분양 받고 2~5년 의무거주기간을 채우지 못할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분양원가로 집을 되팔아야 하지만, 집값 하락기 땐 LH가 매입해주지 않는다. 이 경우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시장을 통해 제3자에게 집을 매도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전무한 실정이다.


일러스트=정다운


법조계에서는 "로또 분양을 이유로 의무 거주기간까지 두고 집값 하락시엔 LH 매입이나 제3자 매입까지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재산권 제약인 데다 사실은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침해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22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부터 입주자 모집 신청을 받는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적용 단지에는 거주의무기간이 적용된다. 입주 가능날짜로부터 90일 내에 실거주를 시작해 최소 2년에서 최대 5년까지 계속 거주해야 한다. ‘연속 거주 강제’가 없었던 기존의 의무전입이나 실거주 규정보다 훨씬 강화된 규제다.


개정안에 따르면 거주의무기간은 택지 종류와 분양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공공택지 주택은 분양가격이 인근 주택 매매가격의 80% 미만이면 5년, 80% 이상 100% 미만이면 3년 간 거주의무가 생긴다. 민간택지 거주의무기간은 분양가격이 인근 주택 매매가격의 80% 미만이면 3년, 80% 이상 100% 미만이면 2년이다. 예를 들어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의 분양에서 당첨된 사람은 준공과 동시에 2~3년의 거주기간을 채워야 한다.


만약 거주의무기간 동안 단 한번이라도 주거지를 옮기게 되면 주택 소유권을 상실하게 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거주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면 LH는 입주금(분양가)에 은행이자 정도를 더한 금액으로 주택을 매입한 후, 일반에 재분양한다.


국토교통부는 로또 분양을 받고 단기에 시세 차익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이와 같은 개정안을 만들었다. 다만 과도한 재산권 제약 등의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약 개인의 특수한 사정으로 거주가 불가능해진 경우에는 LH에 원가 매입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부동산이 하락장으로 바뀌게 될 경우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집값 상승기가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어 분양가보다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생각을 안하는 경우가 많지만, 집값이 내리는 일이 없을거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익명을 요청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모두 집값이 오른다고 예상하지만 불과 10년 전만해도 아무도 집을 사지 않았고, 집을 사면 바보라고 했던 시기가 있었다"면서 "분양가보다 집값이 오르지 않거나 떨어진 경우가 절반 이상을 넘었던 시절"이라고 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가 2009년 8월부터 2012년 7월 말까지 서울·경기·인천에서 입주한 아파트 23만3395가구를 조사한 결과, 이 중 55%가 현재 집값이 분양가와 비슷하거나 그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법은 이런 상황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집값이 분양가보다 떨어지는 상황에 대해선 상정해보지 않았다"면서 "집값이 분양가보다 떨어지면 LH가 매입할 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주택법 제57조 2항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LH가) 해당 주택을 매입해야 하지만, 주택법 하위 시행령에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부도·파산,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사유로 해당 주택의 매입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라고 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집값 하락은 특별한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나아가 LH가 매입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시세 하락을 이유로 LH에 매입을 거부당한 주택을 시장에서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도할 수 있는지 질의하자,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정해진 방침이 없다"고 답했다. 로또 분양의 단기 이익 환수를 목적으로 개정안을 새로 만들면서 주택 하락기를 상정하지 않아 재산권 제약이 생기는 경우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는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졸속으로 입안이 이뤄졌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고 지적한다. 19일 이후로 입주자 모집 공고를 하는 경우 2023년에나 입주하는 경우가 많고 의무거주기간 최대 5년까지 감안하면 2028년까지의 부동산 시장 상황을 예상해야 하는데, 이런 장기 전망의 경우 상승과 하락 양방향을 모두 감안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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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법률사무소 서담 변호사는 "‘현재 시세가 분양가보다 높다면 매입하여야 한다’ 등의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 분양가보다 시세가 떨어질 경우 수분양자가 LH 등을 상대로 매입을 요구하는 소송에 나설 소지가 있다"고 했다. 법원에서는 통상 입법자의 의도를 법의 해석 기준으로 삼고, 개정안의 입법 의도가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시세차익 환수와 투기수요 차단이라는 점에서 명확한 편이지만 법에 규정된 문구 자체가 가장 우선적인 기준이라는 점에서 보완 필요성은 있다는 것이다.


헌법상 재산권과 거래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란 비판도 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됐다고 하더라도 개인에게 소유권이 이전된 주택을 LH 외에는 매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토지 공개념’이라는 명분으로도 덮기 힘들 정도로 헌법상 재산권과 거래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게다가 LH가 매입을 거부하면 주거지를 옮기는 것조차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거주이전의 자유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규제로 인한 부작용을 더 과한 규제로 막으려다 보니 허점이 계속 나올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로 로또 분양이라는 문제점이 나타났고, 이를 개인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억제하면서까지 규제하겠다는 것이 이번에 시행되는 주택법 개정안"이라면서 "근본 원인인 분양가 상한제를 점진적으로 완화해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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