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세계화와 우리의 경쟁력[허찬국]

www.freecolumn.co.kr

코로나19, 세계화와 우리의 경쟁력

2020.12.30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의 해입니다. 세계화로 국경이 유명무실해져 역병이 확산된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국경이 통제되고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았던 1910년대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로 퍼져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역사를 보면 꼭 맞는 말은 아닌 듯합니다.

경제의 세계화, 즉 가파르게 늘어난 세계적 상업적 교류가 코로나19의 원인(遠因)이라는 지적이 의미 있어 보입니다. 각종 자원에 대한 수요가 커지며 천연 환경의 파괴를 수반하는 개발 압력이 높아졌지요. 생태계 교란의 결과 사람들이 적응하거나 대응할 방법을 모르는 새로운 병균들에 사람들이 노출되며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설명입니다.

코로나19 충격에 순식간에 주요국 경제가 얼어붙었습니다. 나라들마다 동파를 막으려 정부가 엄청난 돈을 들여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충격이 나라들 간의 무역에 미친 영향은 일정치 않습니다.

코로나19에 김빠진 미국의 중국 때리기 통상정책

지난 수십 년 간 미국과 중국의 거래를 보면 미국의 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큽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무역 불균형이 수출을 적극 지원하고 수입을 억제하는 중국 탓이라며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무역 분쟁이 이어졌고 미국은 중국 수입품에 부과되는 세금인 관세를 2018년 초 3% 수준에서 올해 20%로 인상했습니다.

수입 억제책이 주효하여 수입이 크게 줄었지요. 2018년 4,190억 달러에 달했던 미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2019년에는 3,450억 달러로 낮아졌습니다. 2018년 10월 520억 달러에 달했던 수입이 줄며 올 3월에는 200억 달러를 하회했습니다. 그런데 3월부터 다시 늘기 시작하며 10월에는 2018년 말 이후 월 최대 수준인 약 45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미국은 코로나19로 현재 심각한 경기불황을 겪고 있고, 불경기 때는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줄이기에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수입이 빠르게 느는 것은 뜻밖입니다. 두 가지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그동안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려왔던 중국은 다양한 공산품을 전 세계에 공급해왔습니다. 관세로 중국 수입품이 비싸져도 필요하면 살 수밖에 없지요. 올 초 미국 방역 당국은 마스크 등 기초적 방역 장비와 바이러스 검사 시료를 채취하는 데 쓰이는 면봉이 없어서 애를 먹었습니다. 이 품목들의 최대 생산국이 중국입니다. 트럼프가 뭐라 하든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수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째, 사회적 거리두기, 여행 금지로 집 밖 출입이 어려워진 소비자들이 내구재 구매를 크게 늘렸습니다. 각종 가전, ICT(정보통신기술)제품의 판매가 크게 늘었습니다. 이런 양상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에서도 목격되었지요. 이 분야 많은 제품의 최대 수출국이 중국입니다. 그 결과 늦봄부터 중국산 수입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여기에 연말은 크리스마스 시즌의 장식품, 장난감 등 중국 생산품이 특히 많이 팔리는 때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중국산 수입 증가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입니다.

이런 추세는 우리나라 수출 회복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부진하던 수출이 올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 가전, 반도체 등의 물품이 회복세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으로 직접 수출도 하지만 중국을 경유한 간접 수출, 그리고 ICT제품에 쓰이는 반도체와 같은 부품·소재를 중국에 많이 수출합니다.

세계화와 우리의 경쟁력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크게 줄며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드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지요. 이제 중국의 공장들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공산품에 익숙해진 국내외 소비자들의 행태가 조만간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환경 훼손, 플라스틱 쓰레기 양산도 이어지겠지요.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 미국에서 이런 현실을 부정하던 트럼프가 물러나고 기후변화의 책임을 인정하는 바이든 정부가 새해에 출범한다는 점입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세계화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국경을 통제하는 일도 종종 보게 될 듯합니다. 주요국들이 세계화의 부정적 효과에 대해 책임감을 공유하고 해결을 위해 공조하기를 바라보지만 전망이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백신 확보 경쟁 초기 단계에서 신속히 충분한 물량을 확보한 소수의 선진국들과 그러지 못한 나라들 간의 간극이 극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확산 초기 K방역 성공에 고조되어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라 하던 정부는 백신 조기 조달에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백신 확보 경쟁은 국제적으로 노골적인 자국 이익 우선 진검승부의 양상이었습니다.

방역에 대한 과신, 국산 백신의 독자적 개발 능력에 대한 오판으로 나타난 결과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이 심각한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 전략 수립과 집행 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합니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는 정치 현안에 상관없이 이런 과정을 진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안정적 체계를 갖추는 것이 선진국이 되는 필요조건입니다. 대표적 선진국 미국이 지난 4년 동안 웃음거리가 되다시피 했던 것은 탄탄한 국가전략 체계를 흔드는 충동적인 선동가 트럼프의 행보 때문이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