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상식도 양심도 없는 가덕도신공항


상식도 양심도 없는 가덕도신공항


검증위 결론에 없던 가덕공항, 선거 앞두고 갑자기 부상

접근성 떨어져 불편하고 김해와 空域 겹쳐 안전 위험

혈세로 표를 사겠다는 정치권… 이번 기회에 본때 보여야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영남권 신공항이 거론된 후 대구·경북이 미는 밀양과 부산·경남이 미는 가덕도를 놓고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다. 기술 수준, 객관성, 중립성 등을 담보하기 위해 파리공항관리공단에 판단을 맡긴 결과, 김해 공항 확장안이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로 1위, 밀양 2위, 가덕 3위라는 결과가 나왔다.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가 다 양해한 신의 한 수였다.


전국 시·도의회의장 14명이 가덕신공항 지지선포식에 참석한 7일 오후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에 가덕신공항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김동환 기자




그런데 내년 보궐선거로 세금 267억원을 허비하게 만든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그의 요청에 따라 총리실에 설치된 신공항 검증위원회는 지난달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냈다. 검증위원장은 “김해 공항의 백지화는 물론 가덕도의 ㄱ자도 거론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 보고서를 빌미로 여야가 앞을 다투어 가덕도 공항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보완이 필요하다면 그 비용까지 더해서 세 후보지를 다시 비교하는 것이 ‘재검토’이지 2등을 한 밀양도 아니고 전문가들이 구제불능 수준으로 평가한 가덕도로 몰고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김해 못지않게 가덕도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수요 예측부터 다시 검증해야 한다. 지난 10월 대구·경북 민군통합 신공항을 군위·의성에 건설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러면 대구⋅경북에서 가덕도까지 와 줄 사람은 줄어들 것이다. 김천~진주 KTX가 생기면 서북부 경남, 서부 경북 사람들은 차라리 인천공항으로 가겠다고 할 수 있다. 공항 수요에서 접근성은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광주 공항을 대체하려고 했던 무안 공항이 광주의 수요를 별로 흡수하지 못했고, 영종도 인천공항을 열고도 김포공항을 닫지 못했다. 속초⋅강릉 공항을 닫아도 그 수요는 양양 공항으로 오지 않았다. 가덕도 공항을 만들어도 김해 공항을 닫지 못하면 국내선 수요가 가덕으로 오지 않을 것이고 김해와 가덕은 공역(空域)이 겹쳐서 심각한 안전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비용은 더 걱정스럽다. 지금으로서는 가덕도 10조7000억원, 김해 4조3000억원 든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 언제나 늘어나기 마련인 총사업비가 같은 비율로 늘어난다고 해도 차액은 더 커질 터인데, 바다를 메우는 사업은 돌발 변수가 특히 더 많다. 매립 토사가 예상보다 센 물살 또는 태풍에 다 쓸려 내려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1989년 1조3000억원이면 된다고 시작한 새만금 사업은 5조5000억원짜리가 됐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3조4000억원 든다던 인천공항 1단계 사업은 5조6000억원이 들었다. 영종도나 새만금처럼 갯벌도 아니고 수심 20m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겠다는 것은 너무 큰 모험이다. 부산시가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갈 게 뻔하다.




가덕도 신공항을 성사시켜 주면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사람들이 표를 몰아 줄 것으로 착각하는 부분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남권 신공항 입지를 놓고 TK가 미는 밀양과 경합할 때 부울경에서 차마 부산시 강서구에 있는 김해 공항을 앞세우긴 다소 낯 뜨거울 수 있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TK는 대구와 상주, 안동 사이에 자체 신공항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부울경 사람들로서는 가덕보다 접근성이 좋은 김해에 신공항을 짓자고 해야 정상 아닌가. 부울경 주민 투표라도 해서 진정한 민심이 뭔지 따져봐야 한다.


가덕도 인근에 땅 투기를 한 사람들이나 바다에 하염없이 토사를 퍼붓기만 하면 족히 5년은 땅 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벌 수 있는 토건 업자들은 가덕에 집착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역 언론과 정치인들이 계속 가덕을 지지한다면 그 동기는 과연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나라 재정이 빚구덩이에 빠져 들어가고 있고 달리 돈 들 데가 한없이 많은데 다른 국민에게 ‘최소’ 6조4000억원의 쓸데없는 부담을 지워가면서까지 자자손손 더 먼 길을 왔다 갔다 하겠다는 바보짓을 왜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시민단체가 부산에는 없다는 말인가? 6조4000억원이면 전 국민에게 1인당 12만원씩 나눠줄 수 있으며, 5억원짜리 아파트 1만3000채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최근 국가 채무 급증을 우려하는 정론을 펼쳐 온 시민단체들과 언론들도 관심을 가지고 국민에게 실상을 알리는 데 동참해 주길 기대한다. 여야 양당이 모두 눈이라도 먼 듯 가덕을 지지하고 있으니 진영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홀가분하게 비판할 수 있는 여건이다. 이번 일이 정의롭게 마무리된다면 국민의 혈세로 표를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정치인이 사라지는 계기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0/12/09/CKI23SZVBZHHVCGCLDWMRMJ2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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