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의 아름다움 [노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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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의 아름다움

2020.11.30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 조카는 “시험 생각만 해도 떨리는데 주위에서 코로나19 확진자라도 나올까 봐 더 불안하다”며 집에만 있습니다. 먹을 때 말고는 자기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시험 공부에 잠을 제대로 못 자 볼과 코·입 주변에 뾰루지가 두둘두둘 올라왔습니다. 햇볕을 쐬지 못해 안색은 희멀겋고, 신경은 몹시 예민합니다. 운동은커녕 산책도 하지 못해 몸무게도 많이 늘었답니다.

올해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은 49만3000명입니다. 그들 대부분의 일상도 내 조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마다 가슴 졸였을 그들을 생각하니 안쓰럽기 짝이 없습니다. 길게는 12년 동안 책상에 매달려온 이들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일까요?

조카는 시험을 치른 후 가장 하고 싶은 게 ‘예뻐지기’랍니다. 피부과를 찾아 뾰루지를 없애고, 성형외과에선 쌍꺼풀 수술을 하고, 피트니스센터에서 열심히 운동해 살도 빼겠답니다. 공부로 소홀했던 외모에 신경을 쓰겠다는 겁니다. 아이섀도 등 색조화장품은 내가 사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대입 학력고사를 봤던 1980년대 후반으로 돌아가 봤습니다. 당시 학교는 시험을 치른 고3 학생들을 위해 ‘세련된 미인 되기’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1교시 화장하는 법. 2교시 머리 예쁘게 꾸미는 법. 3교시 아름답게 걷는 법. 4교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먹는 법 등등.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해 도시로 나가는 산골 아이들을 위한 학교의 배려였습니다.

‘아름답게 걷는 법’ 시간에 가장 많이 웃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 혹은 언니의 하이힐을 신고 걷던 친구들이 발라당 벌러덩 넘어져 웃음바다가 되곤 했지요. 여고 동창들과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하며 지금도 배꼽이 빠지도록 웃습니다. 그래도 저 수업 덕에 도시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촌년’ 소리를 듣지 않아 고마움이 큽니다.

갑자기 미인의 기준이 궁금합니다. 나는 둥글고 통통한 얼굴에 초승달 눈썹, 가늘고 긴 눈, 까만 눈동자, 마늘쪽 같은 코, 앵두 닮은 입술의 여인이 아름답습니다. 얼굴색이 밝고 이마가 반듯한 여인을 보면 예뻐서 한 번 더 쳐다보게 됩니다. 왠지 이런 사람은 마음씨가 착하고 몸가짐도 얌전할 것 같습니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속 그녀가 떠오릅니다. 중국 역사상 4대 미인 중 한 명인 서시(西施)의 모습도 그려집니다. 물속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물고기가 반해 넋을 잃고 밑으로 가라앉았다지요.

20대 조카들과 미인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내 기준과는 딴판입니다. 얼굴형이 가장 중요한데 갸름해야 합니다. 코는 오똑하고 눈은 크고 쌍꺼풀이 짙어야 합니다. 살이 찌면 안 되고 키도 커야 합니다. 이구동성으로 서구적 미모와 체형이 좋다고들 말합니다.

시대와 나라, 문화에 따라서도 미인의 기준은 다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서양과 동양의 미인이 비슷했습니다. 입술은 붉어야 합니다. 검은 눈썹과 눈동자도 미인의 조건입니다. 미간은 넓고 코가 작아야 합니다. 이목구비가 크고 뚜렷한 지금의 미인과는 차이가 납니다.

소수민족은 천차만별입니다.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해야 미인인 나라가 있습니다. 두꺼운 입술을 으뜸으로 치는 곳도 있고요. 베트남 소수민족인 자오족은 눈썹이 없어야 미인입니다. 태국 나이소이에선 목이 길어야 미인으로 대접받습니다. 부모들은 어린 딸의 목에 여러 개의 링을 걸어 인위적으로 목을 늘리기도 한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부모의 욕심이지요.

우리나라에는 수년 전부터 성형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성년의 날’ 기념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성형수술’을 선물하는 게 유행이랍니다.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코를 높이고 턱과 광대뼈를 깎는 성형수술을 받는다네요.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성형외과의 이른바 ‘수능 마케팅’은 애교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거리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젊은이가 많습니다. 연예인 ○○○처럼 고치는 ‘맞춤 성형’ 탓인 듯합니다. 유행에 휩쓸려 개성 넘치는 얼굴들이 사라질까 아찔합니다. 청소년들이 자기 정체성을 잃을까 걱정입니다. 자신만의 특징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존감 높은 사람이 진정 아름답습니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라 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고 하는 걸 나도 그렇다고 하면 나쁜 일이요, 세상 모두가 좋다고 하는 걸 나도 좋다고 하면 그 역시 나쁜 일이다. 좋고 나쁘고 아름답고 추함은 저마다의 기호와 취향이 있으니 누가 정해준 기준대로 칼로 무 자르듯 정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수능이 끝나면 조카에게 ‘쌍꺼풀 없는 눈’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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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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