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스마트팜의 진화...세계최대 최초 터널형 인도어팜


LED `쨍쨍` 채소가 `쑥쑥`…버려진 터널, 세계최대 실내농장 됐다


SPECIAL REPORT : 한국형 스마트팜의 진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0년 7월 7일.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였던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이 열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28㎞ 구간을 2년5개월 만에 준공한 대역사였다. 공사에 투입된 연인원만 900만명, 중장비는 2000대였다. 그런데 개통식 직전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공사가 끝나가는 다른 구간과 달리 충북 옥천공구는 유독 진척이 더뎠기 때문이다. 바로 옥천터널(옛 당재터널) 구간이다. 대전과 대구를 연결하려면 반드시 뚫어야 하는 곳이었다. 당시로서는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했던 690m 길이에 산 전체가 암반으로 이뤄진 최악의 난구간이었다. 첫 삽을 뜬 지 13일 만에 낙반 사고로 3명이 순직했을 정도로 공포의 구간이었다. 하행선 터널은 개통일 두 달 전에 겨우 완공할 수 있었지만 상행선 준공은 개통식까지 불가능해 보였다. 공사를 맡은 곳은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이 직접 나섰다. "값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20배 빨리 굳는 조강시멘트를 생산해 투입하자"며 특유의 돌파력으로 공사를 이끌었다. 결국 개통식 이틀 전에야 가까스로 옥천터널이 완공됐다. 경부고속도로 공사에 생명을 바친 77명 순직자 위령탑도 바로 이 터널 근처에 세워졌다.


넥스트온(대표 최재빈)은 경부고속도로로 사용하다가 2002년 폐쇄된 충북 옥천터널(옛 당재터널)을 세계 최대 규모 인도어팜(식물공장)으로 바꿔놓았다. 사진 속 엽채류 선반은 전체 길이가 200m에 달한다.  [이충우 기자]




이 옥천터널이 현재 세계 최대 규모 인도어팜(실내농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급 채소와 딸기, 바이오 소재용 작물이 재배되는 최첨단 스마트팜이다. 바닥 면적이 6700㎡(약 2020평)로 `농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에어로팜스의 미국 인도어팜보다 더 크다.


터널형 인도어팜서 채소·딸기 재배

지난 9일 이 옥천터널을 찾았다. 서울에서 2시간 이상을 달려 경부고속도로 금강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뒤 5분을 더 가자 옥천터널이 나온다. 과거엔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으로 이용하던 터널이었지만 지금은 왕복 2차로 국도가 통과하는 곳이다. 바로 옆에 위치한 옛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터널이 바로 인도어팜으로 운영되는 현장이다.


터널 내부 전체가 외부와 밀폐된 인도어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터널 북쪽에서 인도어팜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엽채류 재배 공간이 나타났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속에서 다양한 엽채류가 수경재배 방식으로 자라고 있는 것은 다른 인도어팜들과 같았다. 그러나 규모가 완전히 달랐다. 압도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터널 바닥부터 천장까지 엽채류 선반이 국내 최대인 14단으로 구성돼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선반 전체 길이가 무려 200m(폭 7m)나 된다는 점이다. 재배 선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을 바라보면 가물가물할 정도다.


이곳에선 주로 샐러드용 채소가 재배되고 있다. 이자벨, 이자트릭스, 카이피라, 프리라이스 등 이름도 생소한 채소들이다. 고급 프랜차이즈나 일부 대형 유통업체로 납품돼 샐러드박스나 프리미엄 햄버거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1년에 300t 정도를 수확할 수 있다. 만약 노지에서 재배한다고 가정하면 5만평 땅에서 생산되는 물량이다.



터널 남쪽 공간에서는 딸기가 재배되고 있었다. 딸기 재배 선반은 8단으로 구성돼 있다. 흙이 아닌 특수 무기질 배지(미생물 배양물질)에서 딸기가 자란다. 재배 선반 길이가 무려 300m에 달했다. 여기서 생산할 수 있는 저온성 딸기는 연간 약 100t 규모다. 특히 인도어팜에서 저온성 딸기 대량생산에 성공한 것은 거의 세계 최초다. 잎만 기르면 되는 엽채류와 달리 과일류는 잎을 키운 뒤 꽃을 피우고 수정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난도가 높다.


LED 전문가 뭉쳐 설립한 넥스트온

터널형 인도어팜은 세계 최초다. 누가 이런 시도를 한 것일까. 바로 넥스트온이라는 벤처기업이다.


넥스트온은 상장사인 서울반도체 출신 LED 전문가 3인방이 2017년 1월 설립한 벤처기업이다. 주인공은 넥스트온의 최재빈 대표(50)와 이상민 부대표(53), 김정욱 마케팅본부장(49)이다. 최 대표는 서울반도체에서 사장을 역임했고, 이 부대표는 연구소장(부사장)을 맡았었다. 김 본부장은 LED 영업담당 임원을 하다가 지금은 야채와 딸기 영업을 총괄하고 있다.




최 대표는 서울반도체가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면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대로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한 2013년 12월 말 사표를 던지고 나와 이듬해 포스코LED(현 글로우원)를 인수했다. 자본 300억원이 완전 잠식된 회사를 불과 1년도 안돼 턴어라운드시킨 그는 LED 조명만으로는 미래 성장성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신규 사업을 모색했다. 최 대표는 LED 분야 경쟁력을 활용하면서 미래 성장성까지 담보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인도어팜이라고 봤다. 법인을 설립하기도 전인 2016년 9월부터 인도어팜 기술력 확보에 착수했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국내 다른 인도어팜 회사를 인수하려고 했지만 자체 기술력을 보유한 곳이 거의 없었다"며 "서울반도체에서 경험한 LED 기술과 공조 기술,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해 자체 인도어팜을 개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해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반 건물이 아닌 터널에 인도어팜을 설치하게 된 건 국내외 인도어팜 대부분이 비용 문제로 애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투자비와 운영비를 낮추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않고는 아무리 좋은 기술도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다. 전국의 폐터널을 물색한 끝에 지금의 옥천터널을 확보했다. 새 터널이 뚫리면서 2002년 이후 폐터널로 남아 있던 곳이다. 처음 들어갔을 때 터널 안은 온갖 폐기물이 가득해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김정욱 본부장은 "터널 안에서 나온 폐기물이 11t 트럭 15대 분량이었다"며 "클리닝 작업을 하는 데만 8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옥천터널(옛 당재터널)이 경부고속도로로 사용되던 당시 모습이다. 왼쪽이 현재 인도어팜으로 사용되는 상행선 터널이다. [사진 제공 = 넥스트온]


LED 조명·공조·ICT 기술 독보적

넥스트온이 엽채류와 딸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건 자체 기술력 덕분이다. 핵심은 태양빛을 대신하는 LED 조명이다.




넥스트온 창업 3인방이 몸담았던 서울반도체는 1만개가 넘는 자체 특허 기술을 보유한 세계적인 LED 업체다. 그곳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다 보니 처음부터 최적의 LED 개발에 공을 들였다. 넥스트온 LED는 발열이 적은 것이 강점이다. 다른 인도어팜에서 사용하는 일반 LED는 온도가 67도까지 오른다. 겨울에도 에어컨을 틀어야 하다 보니 전기료 부담이 크다. 이에 비해 넥스트온 LED는 열이 32도 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더 극적인 것은 식물의 광합성에 가장 유리한 파장을 내는 LED 설계 기술이다. 가시광선은 통상 350~750㎚(나노미터) 파장을 형성하는데, 넥스트온은 광합성에 최적인 450㎚와 650㎚ 대역 파장의 가시광선을 발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LED 제조공장에서 사용하던 공조 기술도 터널에 적용됐다. 엽채류가 미세한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도 인공적으로 초속 1m 바람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식물의 호흡을 돕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낮에는 20도 전후 온도를 유지하고 밤에는 10도 전후까지 온도를 내려 일교차를 만들어준다. 김 본부장은 "노지 재배 야채가 봄·가을로 맛있는 건 일교차 덕분"이라며 "엽채류 크기를 포기당 200g으로 다른 인도어팜보다 2배 정도 크게 만들 수 있는 것도 공조 기술 덕분"이라고 말했다.


수경재배용 파이프라인의 물 흐름을 일정하게 정밀 제어하는 ICT도 LED 공장 운영 경험에서 나왔다. 이에 더해 인도어팜 밖으로는 단 한 방울의 오폐수도 방출하지 않는 수처리 기술을 확보했다. 서울반도체 연구소장 출신인 이 부대표는 "완전 순환형의 오폐수 무방출 시스템을 구축한 인도어팜은 전 세계에서 여기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넥스트온 직원이 이자트릭스라는 채소를 수확하고 있다. 이 채소는 프랜차이즈와 온라인몰 등에 프리미엄 샐러드용으로 공급되고 있다. [이충우 기자]




기능성 천연물 소재 작물로 승부

터널 중간에는 넥스트온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비장의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하는 곳이다. 천연물 소재 작물 재배 공간이다. 기능성 식품이나 의약품에 들어갈 바이오 원료 작물을 기르는 곳이다.


12단 높이 선반이 150m 길이로 이어져 있는 이 공간에서는 얼마 전 눈 건강에 좋은 물질을 만드는 소재 작물을 수확해 제약회사로 납품했다. 최 대표는 "이 밖에도 뇌기능 개선과 어린이 성장, 식욕 억제, 간기능 개선 등 다양한 기능성 소재 작물 양산 계획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넥스트온은 국내 인도어팜 중 유일하게 의료용 햄프(대마)에 대한 재배·학술연구 허가도 보유하고 있다. 터널 남쪽 끝에는 시건장치가 돼 있는 작은 밀폐 공간이 나타난다. 바로 의료용 햄프가 재배되는 곳이다. 이 부대표는 "전 세계 시장 규모가 400조원으로 추정되는 의료용 햄프는 치매와 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 치료에 쓰일 수 있어 유럽과 미국에서처럼 판매가 합법화될 경우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넥스트온은 사업 확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세계 최대 도심형 지하 인도어팜을 추가로 늘리면서 기능성 천연물 소재와 의료용 햄프 생산을 위한 전용 설비도 따로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 사업에도 나설 태세다. 채소 재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중동 지역을 비롯해 싱가포르, 몽골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20/11/117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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