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을 따던 소녀[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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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을 따던 소녀

2020.11.16

충북 영동읍에는 가로수가 감나무입니다. 읍내 거리에만 감나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로수로 심은 감나무가 5만여 그루니까 어지간한 도로에는 감나무가 서 있습니다.

감이 익어 가는 시기에 영동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읍내는 물론이고, 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감나무들이 신기해서 사진을 찍거나, 차에서 내려 구경을 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길가에 서 있는 감나무의 감은 군청에서 따 가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감나무 관리는 군청이 합니다. 감꽃이 피어날 무렵하고, 감나무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라났을 때쯤 약을 한 번씩 쳐 주거나, 감나무 가지가 너무 무성해서 건물을 가리게 되면 가지를 쳐 줍니다.

감 수확은 감나무 뒤에 있는 가게주인이나 집 주인, 혹은 밭이나 논 주인이 합니다. 그도 저도 아니고 주인이 없는 산을 낀 도로에 서 있는 감나무의 감은 군청에서 따갑니다.

감을 수확할 때는 까치 같은 새들의 몫으로 까치밥을 남겨 둡니다. 시내에 있는 감나무나 감 농장에 있는 감나무는 까치밥을 남겨두지 않습니다. 까치가 영리해서 먹이가 있다는 걸 알면 다시 찾아오는 까닭입니다.

요즈음은 산에 있는 밭둑이나 빈터에 감나무를 심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산에도 감나무가 많았습니다. 늦가을 서리가 내릴 즈음에는 산에서 놀다가 까치밥이 있는 감나무가 보이면 갑자기 군침이 돕니다.

까치밥은 감나무 꼭대기거나 가지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장대로 쉽게 감을 딸 수 없는 부분이라 팔 길이가 짧은 아이들은 감 따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빨갛게 익은 홍시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나무타기를 잘하는 아이가 올라가서 가지를 흔들거나, 발로 가지를 구릅니다.

손으로 따지 않은 홍시가 얌전하게 떨어질 확률은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풀밭이나 덤불 같은 곳에 떨어지는 홍시는 멀쩡하지만, 맨땅에 떨어지는 홍시는 프라이팬에 깨 넣은 달걀 신세가 됩니다. 떨어지는 감을 받겠다고 홍시를 쳐다보고 있다가, 손바닥이 아닌 얼굴에 떨어져서 홍시범벅이 되기도 합니다.

인숙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인숙이는 또래의 여자들과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땅따먹기 같은 것을 하지 않고 남자들과 어울렸습니다. 성격도 괄괄해서 웬만한 남자들은 느닷없이 뒤통수를 때리거나, 다리를 걸어서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기도 합니다.

그 시절에는 특별하게 가지고 놀 것이 없어서 나무에 올라가 노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나무를 탈 때는 늘 제일 높은 곳까지 점령을 하기 일쑤입니다.

냇가로 가는 길목에 수령이 이백 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세 그루 서 있었습니다. 느티나무는 아이들 서너 명이 손을 잡아야 둘레를 잴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다. 나무 밑에는 봇도랑이 흐르고 있는 데다 가지가 무성해서 여름에 올라가 있으면 시원합니다.

인숙이는 가끔 느티나무에 혼자 올라가서 동네 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의 인숙이 모습은 선머슴이 아니고 얌전한 소녀처럼 보입니다. 훗날에야 인숙이가 가끔 외로움을 타는 이유를 알았지만, 그 시절에는 좀 생뚱맞게 보였을 뿐입니다.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까치밥을 따 먹기 위해 일부러 산에 올라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골목이나 장터에서 노는 것이 지겨우면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에는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는 입맛을 다실 것들이 많습니다. 봄에는 칡뿌리를 캐러 올라가거나, 삐삐를 뽑으러 가기도 하고, 찔레나무 새순을 꺾어 먹으러 올라갑니다. 여름에는 산딸기나 개암, 보리수 열매, 으름 등이 있습니다. 가을에는 산사과며 돌배, 오미자, 머루, 밤 같은 것이 있어서 올라갑니다.

지금 생각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지만, 까치밥을 따러 감나무에 올라가는 일은 인숙이 몫입니다. 남자애들은 밑에서 마른 침을 삼키며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해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숙이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작은 가지에 올라서거나, 꼭대기에 매달려 산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줌을 지릴 정도로 애간장이 탑니다. 연신 마른 침을 목이 아프도록 삼키며 인숙이가 떨어지지 않기를 빕니다.

이윽고, 몇 개의 홍시를 떨어뜨린 인숙이가 원숭이처럼 빠르게 감나무에서 내려옵니다. 홍시를 딴 사람은 인숙이니까, 분배도 인숙이 몫입니다. 이를테면 인숙이가 우리들 대장 노릇을 하는 겁니다. 깨지지 않고 말짱한 것은 인숙이 몫이고, 깨지거나 금이 간 것은 분배를 해 줍니다.

하루는 규동이란 녀석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홍시를 뒤늦게 주워서 들고 산 아래로 도망을 쳤습니다. 화가 난 인숙이 규동이를 향해 돌멩이를 던졌습니다. 그 시절에는 장난치고 도망치는 아이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습니다. 대부분 겁을 주기 위해 던지는 것이라서 일부러 사람을 맞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날은 규동이 일진이 나빠서 그랬는지, 인숙이가 돌을 잘 던져서 그런지 규동이가 머리를 싸매고 주저앉았습니다. 홍시를 들고 뛰어가 보니 뒤통수가 깨져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습니다. 겁이 난 인숙이가 마른 쑥을 뜯어서 대충 상처를 막고, 동네를 향해 내려갔습니다.

규동이 상처는 다행히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된장을 바르고, 헝겊으로 싸맨 것으로 대충 마무리를 지었지만 인숙이는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밤이 늦도록 장터를 서성거리고 있는 인숙이에게 규동이가 찐고구마를 갖다 주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가 됐습니다.

그 규동이는 지금 포도농사를 크게 짓고 있습니다. 인숙이는 읍내로 시집을 가서 곶감을 깎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을에 남의 집 곶감을 깎아 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다섯 동이나 한다고 합니다. 감 한 동이 백 접이니까 1년에 5만 개나 곶감을 깎는 셈입니다.

인숙이의 아들은 제 자식하고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농협에서 근무를 하는데 언젠가부터 하나로마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놈을 볼 때 마다, 너희 엄마가 예전에는 왈가닥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충동에 입이 간질간질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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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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