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동네서 은퇴자·서민 쫓아내는 재산세


[최경선칼럼] 부자동네서 은퇴자·서민 쫓아내는 재산세

최경선 논설실장


3년간 2배뛸 재산세 폭탄에

소득없는 사람은

내집 1채 지키기도 힘들다

미국 뉴욕주 `2%룰`

한국에도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에는 `2% 룰`이란 게 있다. 재산세를 1년에 2%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막는 규정이다. 주택은 안식처다.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내 집 한 채에서 생기는 소득은 없다. 그런데 집값이 올랐다고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가정 소비는 엉망이 된다. `2% 룰`은 각 가정에서 집을 살 때 꿈꾸던 소비지출을 그대로 유지하게끔 돕는다. 물론 집집마다 납부하는 재산세는 다르다. 오래전부터 그 동네에 살던 주민은 재산세를 적게 낸다. 집값이 크게 오른 뒤 이사 온 사람은 훨씬 많은 세금을 낸다. 그런 재산세를 감당할 것인지는 집을 살 때 결정한다.




지난 7월 서울 광화문에서 `조세저항 촛불집회`가 열렸다. `집주인이 봉이냐` `임대인도 국민이다`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집회 인원이 한때 수천 명에 이르기도 했다. 코로나19 경각심으로 그 집회는 멈췄지만 `세금폭탄` 그리고 집주인들의 분노는 그때 그대로다.




우리나라 재산세는 매년 30%까지도 인상된다. 서울·경기에서 올해 재산세가 작년보다 30% 오른 주택이 64만채에 달한다. 종합부동산세는 50%까지도 올라간다. 그야말로 세금 폭탄이다. 미국 2% 룰은 어느 집이든 차등 없이 적용된다. 우리나라에선 집값이 비쌀수록 재산세가 더 맹렬하게 오른다. 공시가격 3억원 이하 주택의 재산세는 연간 5%까지만 인상되지만 6억원 초과 주택은 연간 30%까지 올라가는 식이다.


서울 영등포 A아파트를 보자. 이 아파트 공시가격은 올해 6억원을 밑돌았으나 내년에는 8억원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올해 107만원이던 재산세는 내년에 139만원으로 높아진다. 이런 식으로 3년이 흐르면 재산세는 2배 이상으로 불어난다. 공시가격이 20억원인 서울 강남 B아파트는 더 놀라운 상황이다. 올해 900만원 선인 보유세가 5년 뒤에는 3500만원으로 불어난다. 건강보험료를 비롯한 각종 부담금도 덩달아 뛰어오른다.


"장기 거주 고령자는 공제 혜택이 커서 문제없다." 정부는 그렇게 말하지만 그 속을 어찌 알겠는가. 한국의 부동산 세금은 지역에 따라 쪼개지고 집값에 따라 차등화된다. 보유 기간에 따라서도 갈라진다.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찔끔찔끔 뜯어고치다 보니 종부세·재산세·양도소득세 규정이 누더기처럼 볼썽사납다. 세무사들도 힘겨워할 정도로 암호 같다.


문재인정부는 얽히고설킨 경제 문제를 쾌도난마와 같이 처리할 때가 많다. 전세 기간을 2년 연장할 때 보증금을 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단번에 상한선을 만들었다. 법정 최고 금리도 24%에서 단번에 10%대로 끌어내리려 한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돼야 할 임대료·금리를 놓고도 이런 식으로 상한선을 그어버린다. 문제는 그 쾌도난마가 정부 부동산세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난수표 같은 부동산 세금을 단순화하는 조치가 없다. "세금을 더 거두려는 주택정책이 아니다"고 강변하면서도 재산세 인상한도를 30%에서 낮추려는 노력도 없다.




2017년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은 교통이 좋은 도심 지역에 공공임대주택을 매년 4만채씩 짓겠다고 공약했다. 부자와 서민이 한데 어울려 사는 동네를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요즈음 재산세 폭탄을 보니 그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 부동산 세금은 집값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 아니지만 국민소득과 비교하면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영국,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는 분석도 있다.


집값 올랐다고 재산세 폭탄을 퍼부으면 소득이 적은 은퇴자·서민부터 그 동네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이들을 내쫓고 순수 부자들만의 동네를 만드는 것이 문재인정부 정책 목표인가. 세금 때문에 주민들이 쫓겨나지 않도록 `2% 룰`과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최경선 논설실장] 매일경제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20/11/1160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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