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창의력은 사회성과 반비례

아이의 창의력 발달은 '제약'부터 늦어진다


    사회성을 빨리 터득할수록 창의력은 발달하지 않는다. 창의력을 발달시켜야 할 시기에 외부요인을 더 신경 써야 하는 사회성을 습득하기 시작한다면 자율성은 축소되고 행동반경마저도 줄어든다. 사회성을 배우지 말아야 할 간단한 이유다.


사회성이라 하면 어느 집단에서 구성원들과 원활한 관계를 맺으면서 활동을 할 수 있는 성격이나 그 정도라고 보면 되는데 이것은 사춘기가 지나서부터 발달시켜야 한다. 사춘기가 시작되고부터는 감정의 기복이 커지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대인관계의 인식 변화 등 신체는 물론 성격, 가치관 등이 변화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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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나와 주변과의 연결성을 찾게 되고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한 고민을 하게 된다. 몸과 마음 모두 변화를 겪기 때문에 그 변화가 사라지고 안정적인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안정시켜야 하기에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무엇을 할 틈이 없다.



이 시기가 지나야 비로소 가치관이 정립되고 수월하게 사회성 및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만들 수도 있다. 어려서부터 사회성을 만들지 않아도 어차피 겪어야 할 변화를 미리부터 겪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어릴 때 만들어진 사회성은 사춘기가 지나면 재정립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올바른 대인관계와 사회성을 만드는 데 혼란스러울 뿐이다.


사춘기 이전까지는 억지로 무엇인가를 주입하려는 것보다는 미래를 위해서 꾸역꾸역 창의력을 발달시켜야 한다. 사춘기가 지나면 창의력의 발달은 끝이다. 이때부터는 그동안 만들어 놓은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게 경험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창의력이 그릇이라면 경험은 그릇에 담기는 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창의력 발달에는 자율성이 중요함에도 요새 교육방식을 보면 아이에게 너무 많은 제약을 준다. 공공장소에 가서는 떠들지 말고, 뛰지 말아야 하고, 어른들에게 예의가 있어야 하고, 남을 배려하고 등 정말 많다. 아이의 눈에서 보면 세상은 하지 말아야 할 것투성인 셈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누가 만든 것일까? 다 어른들이 만든 것이다. 왜 공공장소에서 떠들지 말아야 하나? 남에게 피해를 준다. 왜 어른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나? 어른들이 기분 나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체는 다 어른이고 남이다.


아이가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강요나 제약을 줄 때는 아이가 왜 그런지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 그러나 제대로 알려주는 부모는 극히 드물다. 아이도 부모가 하지 말라고 하니 하지 않을 뿐이다. 도서관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아니다. 도서관에 가는 목적은 일반적으로 책을 읽기 위해 가게 되는데 책을 읽으면 당연히 떠들 수 없다. 떠드는 아이는 책을 읽지 않는 아이다. 목적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아이일 뿐이다.


박물관에서는 왜 뛰어다니지 말아야 할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아니다. 다치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사각의 유리 상자가 많고 모서리가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 많고 바닥이 대체로 미끄럽다. 뛰어다니다 다칠 수 있고 만약 유물이 망가지면 부모가 배상해야 한다. 이런 설명이 필요하다. 아이가 주체가 될 수 있는.


아이가 사회성을 익히지 않고 자라면 이기적으로 클 것이라고 우려할 수 있겠지만, 아이는 어차피 이기적이다.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이기적으로 크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에 억지로 남을 배려하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에서 남이 아니라 아이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특히 아이들은 아이가 주체가 되었을 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하지 않는다. 아이가 말을 안 들었을 때는 아이와의 대화법이 잘못되었거나 제약의 주체가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창의적인 아이가 어떻게 사회성에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창의력이 높은 아이들을 한 반에 몰아넣고 여기에 단 한 명, 사회성이 높은 아이를 같이 있게 하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어른이라면 사회성이 높은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므로 도태되거나 잘 어울리지 못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창의력이 높은 아이들은 사회성 높은 아이의 말을 잘 듣는다. 사회성 높은 아이는 어른이 알려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면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되면서 모든 아이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이 생겨버린다. 그렇게 아이들에게는 제약이 생겨 창의력 발달에 악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여기에 사회성이 전혀 없는 창의력이 높은 아이들만 모아 놓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아이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창의성을 발휘하게 되고 서로 특별한 점을 배우기 시작한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가 있다면 이것에 흥미 있는 아이가 그 운동 잘하는 아이를 따라 하게 되고 배운다. 미술을 잘하는 아이가 있다면 다른 아이가 그것이 좋아 보이고 재밌어 보인다면 그것을 또 따라 한다. 이때 아이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 제약은 없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게 된다. 이것은 영재교육의 한 방법이다. 사회성이 없고 자율성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것. 이상적인 영재교육 방식 중에 하나다. 그래서 영재 아이를 일반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게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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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면 된다. 부모의 기준에 맞춰서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혼내지도 말아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면 설득을 해야 하고 이해를 시켜야 하지만 어차피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하지 말라니 하지 않는 것뿐이다. 이런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우리 아이가 만약 누군가에게 용돈을 받았다면 고맙다고 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른들이 아이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용돈을 주는 것뿐이다. 즉 자기들을 위한 것이다. 그냥 용돈을 주고 싶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부모는 고맙다고 하는 말도 시키면 안 된다. 용돈을 주면 고맙다고 해야 한다는 것을 파블로프의 개처럼 인식시키게 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이는 돈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힘든 일이다. 어디 가기만 하면 뛰어다니기 일쑤이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면 금방 녹초가 된다.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의 자율성이 존중되었을 때만 아이의 창의력이 크게 발달한다. 절대로 아이를 어른의 기준으로 가르치려 하거나 어른의 뜻대로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어른의 입맛에 맞게 아이를 키우려는 것은 가장 잘못된 교육 중의 하나다.


아이는 그냥 자연스럽게 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언어습득에 도움을 주고 책을 읽어주는 등 서포터의 역할을 해주기만 해도 된다. 통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만 해도 훌륭하게 아이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창의적인 측면에서는 말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많을수록 어떻게 키우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아이의 창의력은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아이가 무엇이 될지는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야 고민해도 늦지 않다. 어른이 만든 기준을 아이에게 적용하는 순간 아이의 모든 행동에는 제약이 생기고, 창의력은 더디게 발달한다.


아이의 창의력 발달이 더디어지는 순간은 아이에게 제약이 생기는 순간부터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글_정이도

(주)드림기획 대표이사

공학전문기자/작가/칼럼니스트


출처 : 공학저널(http://www.eng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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