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공무원들은 왜 ‘철밥통을’ 버렸나


임용 1년 내 퇴직 공무원 1769명···그들은 왜 ‘철밥통’ 버렸나


     ‘37.2 대 1’과 ‘10.4 대 1’. 2020년도 국가직·지방직 9급 공무원 공채시험 경쟁률이다. 매년 약 20만명의 응시자 중 이 경쟁률을 통과한 이만 공무원이 된다. 그러나 최근 국정감사에선 2019년 재직 5년 미만 공무원 퇴직자가 6664명으로 2018년(5670명), 2017년(5181명)에 비해 대폭 늘었다는 공무원연금공단 자료가 공개됐다. 이 중 임용 1년도 안 돼 공무원을 그만둔 경우가 전체의 26.5%(1769명)에 달했다.


긴 수험생활을 거쳐 공무원증을 쥐고도 그만두는 이들의 속사정은 무엇일까. 4일 임용 2~4년차에 의원면직한 전직 지방직 공무원 3명에게 물었다.


충청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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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공통적으로 민원 대응의 어려움을 꼽았다. 특히 민원인의 폭력과 욕설 등으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3년간 일했던 A씨(28)는 “민원인이 눈앞에서 위협하는데도 제지할 수가 없었다. 잘못이 없는데도 사과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늘 저자세일 것을 지나치게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강원도의 한 군청 공무원으로 약 3년간 일했던 오렌지인(28·닉네임)도 “‘눈을 보고 밝게 인사한다’와 같은 친절 응대 매뉴얼은 있지만, 악성 민원 대처 방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며 “(상급자가) 원하는 것은 공무원 개인의 참을성을 최대한 발휘해 그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관계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한 뒤 상사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때 그는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고 했다.




업무량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 소속으로 4년간 일하다 최근 퇴직한 B씨(31)는 “한 달 내내 주말이 없을 때도 있었고 밤 10시, 11시까지 야근하는 날도 많았다”고 말했다. 오렌지인도 “우박 피해, 수해 피해, 조류인플루엔자 등 재난·재해가 많아 비상근무가 잦았다”며 “365일 24시간 긴장 상태였다”고 말했다.


과도한 의전 문화나 유연성이 떨어지는 업무방식 등 조직 문화도 젊은 공무원들을 나가떨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B씨는 “‘보여주기’를 위한 업무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며 “효율을 중시하는 청년 공무원들을 딜레마에 빠지게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업무 인수인계의 부재, 저연차에 집중되는 기피 업무 배정 등도 요인으로 꼽혔다.


공시 열풍 속 업무나 적성에 대한 고민 없이 시험에 뛰어든 것도 어려움을 더했다. B씨는 “하고 싶은 일이 없는 데다 공무원이 되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가 안 맞는다는 걸 깨닫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 ‘공무원은 편하다’는 세간의 인식이 더해지며 고충을 말하기도 어려웠다. 실제 저연차 퇴직자들은 “공무원도 못 하면 무슨 일을 하겠냐”는 주변 반응에도 시달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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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퇴직을 고민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A씨는 “그만뒀을 때 사무실의 모두가 나를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그가 퇴직 후 일상을 연재하는 블로그엔 매일 30~50명이 ‘공무원 의원면직 행복’ ‘공무원 의원면직 부모 설득’ 등 검색어 입력을 통해 들어온다. 오렌지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Orange_in)에서도 퇴직을 고민하는 공무원들의 상담이 이어진다.


최병대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저연차 공무원의 퇴직 증가에는 폐쇄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와 늘어나는 악성 민원, 신규 직원의 기피 업무 배정 등 복합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20~30대 신입직원이 국장급 상사에게 각종 지원과 조언을 하는 ‘역멘토링 프로그램’을 인사처 내에서 시범 운영하는 등 공직문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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