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국이 함부로 미워하지 마라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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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이 함부로 미워하지 마라

2020.11.04

“남국이 함부로 미워하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빵 터지는 웃음 준 사람이었느냐.”

11월 둘째 날 저녁, 좋은 분들과 모처럼만에 ‘소맥’ 몇 잔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늦은 지하철 타고 돌아오는 길에 이 글 읽다가 그냥 ‘빵’ 터졌습니다. 옆자리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다 봤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였습니다. 글 속 유머와 날카로움이 당대 논객 어느 누구 못지않을 오진영(번역가, 포르투갈어 전문) 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김남국이 허튼소리를 워낙 많이 해 조롱받는 걸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로 패러디한 이 글에도 그의 다른 글처럼 순식간에 '좋아요'와 댓글이 수두룩 붙었습니다. 김남국의 어리석음을 정색하고 꾸짖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웃겨주는 데도 후원금 18원을 못 보낸 게 미안해집니다”라며 또 다른 조롱을 댓글로 단 사람도 있었습니다.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가 전문(全文)인 짧은 시입니다. 느낌이 강렬해 “주옥같은 시”라며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지요. 하지만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수사가 한창일 때 그 부인이 “강남에 빌딩 갖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던가, 뭐 그런 기사가 나오자 “강남에 빌딩 갖는 꿈도 꾸지 말라는 말이냐”며 조국 부부를 감싸고돈 안도현을 진중권이 “참 주옥같은 망언”이라고 까기도 했습니다. 오씨가 이번에 안도현의 이 시에 빗대 김남국을 조롱한 게 재미있다고 생각한 건 그래서일  겁니다. 김남국은 ‘조국백서’ 필진으로도 이름을 알렸지요. 조국 편을 든 덕에 금뱃지를 달 수 있었다는 말도 있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오씨의 글을 읽고 웃다가 “이거 웃을 일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권 사람들이 국민 눈을 가리기 위해 자기네 역할을 나눈 게 아니냐는 의심 때문입니다. ‘바람잡이’가 피해자의 눈앞에서 엉뚱한 짓으로 바람을 잡는 사이 ‘기술자’가 면도날로 피해자의 가방 옆구리를  째고 귀한 걸 털어가던 왕년의 소매치기들처럼 저 사람들도 무슨 목적을 위해 바람잡이와 기술자로 역할을 나누었으며, 그 바람잡이 역할을 김남국이 맡은 게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의회와 SNS에서 김남국 못지않은 희한한 말로써 사람들을 웃겼던 김용민, 김종민, 정청래, 김진애 등 여권 의원들도 바람잡이일 겁니다.)

그럼 이 바람잡이들이 이번에, 이 며칠 사이 웃기면서 바람을 잡을 때, 이 당의 기술자들은 무엇을 털어갔느냐? 당장 생각나는 건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하도록 한 당헌을 고친 겁니다. 아시다시피 이 당의 당헌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돼 있습니다. 내년 보궐선거는 민주당 소속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범죄 때문에 치러지는 것인데, 당헌대로면 민주당은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원 투표 결과를 근거로 당헌을 고쳐 후보를 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26%만 참여한 당원 투표에서 86%가 찬성한 걸 두고 “전 당원이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며 자랑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잘못이 있으면 공천하지 않는다는 민주당 당헌은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인 2015년 당혁신위원회를 통해 만들어진 정치 개혁이라며 국민 앞에 내놓은 것입니다. 대통령은 당시 이 당헌을 “정치 발전의 출발점”이라고 자랑했지만 서울과 부산 보궐선거가 닥치자 손바닥보다 쉽게 뒤집어진 겁니다. 생각 같아서는 압도적인 의석을 방패 삼아 아무 주저없이 밀어붙이고 싶었겠지만 “양심과 미안함, 염치라곤 전혀 없는 집단”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는다고 생각했던지, 당원 투표라는 형식을 빌린 겁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김남국 같은 바람잡이들, 좀 웃길 줄 아는 같은 편 사람들을 앞세워 부글부글 끓는 국민 마음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려 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내가 억지를 부린다고요? 바람잡이들의 개그 같은 헛소리와 당헌 개정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에는 내 논거와 논리가 너무 떨어진다고요? 아니, 김남국은 로스쿨 나온 변호사입니다. 배울 것 다 배우고, 알 것 다 아는 사람이 자기 값어치 떨어지는 헛소리를 왜 하겠습니까? 계속 이렇게 헛소리하다가는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 외면받을 게 뻔한 걸 본인이 모르겠습니까? 다른 바람잡이들도 마찬가지예요. 김용민은 김남국처럼 똑똑한 사람들만 될 수 있는 변호사이고, 김진애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왔잖아요.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괜히 국민들을 웃기겠습니까? 역할 분담한 게 맞다니까요.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여기서 줄입니다만, 국민들이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정치적으로 끔찍한 일을 획책할 때는 꼭 그랬다는 느낌이 듭니다.  조만간 있을 공수처 출범 전후에 바람잡이들이 또 나타나 국민을 웃길 겁니다. 올 1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마포의 한 식당에서 그동안 해온 공언을 스스로 무시하고 위성정당을 출범시켜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둘 발판을 만들기 위해 은밀한 모의를 할 무렵에도 분명코 누군가가 바람을 잡았을 텐데 지금 기억이 안 나는군요. 꼭 알아내서 다음번에는 반드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김남국이 어떤 헛소리를 했기에 조롱받게 됐는지는 다음 기사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https://www.mk.co.kr/news/politics/view/2020/11/1122580/
https://www.news1.kr/articles/?4099863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1023/1035988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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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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