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았을까 귀족이 될 줄...권력 잡고 특권층 된 그들"


누가 알았을까 귀족이 될 줄...권력 잡고 특권층 된 정의의 사도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돼지 나폴레옹이 인간 필킹턴씨와 마주 앉아 카드놀이를 하는데, 창밖에서 그 모습을 엿보는 동물들은 돼지와 인간을 분간조차 할 수 없다. 조지 오웰(1903-1950)의 “동물농장”의 마지막 장면이다. 볼셰비키 혁명이 스탈린의 테러정치로 변질되는 과정을 고발한 이 작품은 문학사에 길이 빛날 알레고리다. 요사이 오웰의 풍자가 더욱 빛을 발한다.


“반동 부모를 배반하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학교로 돌아가 철저히 혁명을 일으키자!” 베이징 중·소학교 혁명 사생(師生) 조반(造反)위원회 선포 1967년 2월“/ 공공부문>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혁명세력”의 반칙과 특권이 날마다 폭로되고, 표리부동한 권력집단에 분노하는 대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혁파, 착취의 종식, 부패의 척결, 적폐의 청산···. 혁명의 구호를 외치며 등장한 “정의의 사도들”이 권력을 잡고 나선 스스로 특권층이 돼버린다. “돼지”가 “인간”의 흉내를 내고 있나? “인간”이 “돼지”의 마스크를 벗어던졌나?


<중국의 인터넷 검열을 풍자한 만화. 2018년 2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 등은 중국의 인터넷에서 금칙어가 됐다.

https://www.zerohedge.com/news/2018-03-02/great-firewall-china-government-bans-orwells-animal-farm-letter-n>




특권과 특혜 누리는 혁명 유공자 자녀

권력의 세습과 특혜의 독점에서 중국공산당을 능가할 조직은 드물다. 2012년 시진핑 집권 당시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3명이 혁명원로의 아들 또는 사위였다. 중국인들은 흔히 이들을 전통시대 황실귀족에 빗대서 태자당(太子黨)이라 부른다. 태자당엔 늘 홍이대(紅二代), 홍후(紅後), 홍귀(紅貴) 등의 꼬리표가 붙는다. 대를 이어 권력을 누리는 “붉은 귀족”이란 의미다.



<“중국공산당 8대 가족, 거부를 해외에 숨겨 두다!” 뉴욕에서 출간되는 반중공(反中共)언론 “명경월간”  제75기 (2016년 4월)의 표지>


태자당을 장쩌민계의 상하이방(上海幫)과 후진타오계의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단파)에 맞서는 제3의 당파라고 오인하기 쉽지만, 태자당은 독립적 당파라기 보단 혁명투사의 자손들에 부여된 세습적인 엘리트의 지위를 의미한다. 당파와 상관없이 장쩌민, 리펑, 후진타오의 직계 자녀들이 모두 태자당으로 분류된다. 오늘날도 태자당은 중공정부 조직의 주요보직이나 국영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해 막대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


태자당 293명의 경력을 추적한 마카오대학의 토니 장 교수는 2019년 연구에서 중공정부의 권력승계는 “집체적 엘리트 재생산”이라 주장한다. 실제로 중국공산당의 파워-엘리트 집단은 대를 이은 권력의 승계에 집요한 관심과 노력을 경주해 왔다.




건국 초부터 일찍이 중국공산당은 혁명의 유공자들을 정관계의 요직에 앉히는 논공행상의 권력 배분을 시작했다. 그 결과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혁명 유공자의 자녀들은 교육, 취업, 승진 등 모든 방면에서 남다른 특권과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문혁이 막 시작되던 1966년 여름, 중국 중등학교 학생들은 이미 출신성분에 따라 신분서열이 나뉘어져 있을 정도였다.


“부모가 영웅이면 아이는 호걸, 반동이면 아이는 먹통”

1966년 8월 이후 홍위병 운동은 “보수파”와 “급진파”로 양분됐다. 이후 두 집단은 각각 보황파(保皇派)와 조반파(造反派)라 불렸다. 사전적으로 “보황”은 “황제를 보위한다”는 뜻이다. 문혁의 맥락에서 황제란 절대 권력자 마오쩌둥을 지칭한다. 조반파 역시 마오의 뜻에 따라 “반란을 일으키는” 마오주의자 집단이었다. 두 집단 모두 마오쩌둥의 호위세력을 자처했으나 출신성분과 정치노선에서 양자는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문혁 초기 고위간부의 자제들은 각 학교에 배치된 공작조의 지시를 따라 선제적으로 계급투쟁의 선봉에 나섰다. 혁명간부, 혁명열사, 혁명군인, 공인 및 농민 집안 출신임을 내세워 이들은 스스로를 홍오류(紅五類, 다섯 붉은 무리)라 불렀다. 홍오류는 지주, 부농, 반혁명분자, 파괴분자 및 우파분자 등 흑오류(黑五類)를 계급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다.


홍오류는 “봉건사회”의 착취계급 및 부르주아 잔류세력의 완벽한 제거를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흑오류를 “개새끼들”(狗崽子)이라 불렀다. 흑오류의 입장에선 터무니없는 신분적 멸시와 계급차별이 아닐 수 없었다.





1966년 8월 12일 베이징 공업대학 문혁소조의 조장 탄리푸(譚力夫, 1942- )가 써 붙인 대자보엔 이런 대련(對聯, 대구)이 적혀 있었다.


 

부모가 영웅이면 아이는 호걸이고(老子英雄兒好漢)!

부모가 반동이면 아이는 먹통이다(老子反動兒混蛋)!



최고 검찰원 부검찰장의 아들이었던 탄리푸는 전형적인 “붉은 귀족”이었다. 8월 20일 학생 변론회에서 그가 행한 연설이 매스컴을 타면서 그의 “혈통론”은 전국적 반향을 일으켰다.


 

<“부모가 영웅이면 아이는 호걸!” 소위 “혈통론”을 선전하는 포스터. 홍군이 인민을 해방하는 장면을 통해 혁명분자의 혈통이 신성함을 드러내려는 의도인 듯. 1966년 추정. 출처미상>




“반동 부모를 배반하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마오쩌둥은 중공중앙의 당권파를 축출하기 위해 문화혁명을 일으켰다. 혈통론을 부르짖는 홍오류는 대부분 고위관료, 혁명간부 등 중앙권력층의 자녀들이었다. 마오의 입장에서 혈통론이란 당권파에 복무하는 신분유지의 궤변일 뿐이었다.


마오의 계급론에 따르면, 출신성분 뿐만 아니라 정치사상과 혁명 활동이 중시된다. 출신성분이 좋아도 사상과 활동이 불량하면 정치천민으로 전락할 수 있다. 돌려 보면, 사상과 활동이 출중하면 성분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1966년 8월 초 중앙문혁소조의 장칭과 천보다(陳伯達, 1904-1989)는 탄리푸의 혈통론을 비판하면서 다음의 새로운 대구를 제시한다.


 

부모가 영웅이면 아이는 [부모를] 계승하고(老子英雄兒接班)!

부모가 반동이면 아이는 [부모를] 배반해야(老子反动兒背叛)!



이후 혁명가곡이 되어 널리 불린 이 대구는 흑오류를 일깨우는 신분해방의 나팔소리였다. 비록 부모가 반동이라도 그러한 부모를 “배반”만 할 수 있다면, 흑오류도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해 8월부터 조반파는 급속하게 동지들을 규합했다. 급기야 1966년 9월 6일 “수도 대전원교(大專院校, 고등교육기관의 통칭) 홍위병 조반 사령부”가 성립됐다. 물론 조반파의 구성원 모두가 흑오류는 아니었다. 대개의 경우 중간 계급 출신이 지도부를 구성했고, 더러 홍오류도 조반파로 넘어왔다. 요는 문혁에 참여하려는 흑오류는 모두가 조반파에 속했다는 사실이다. 출신성분이 나쁠수록 과격한 투쟁의 양상을 보였다. 결국 ‘신분차별’이 조반파의 폭력화를 설명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10월 9일 총리 저우언라이는 탄리푸의 혈통론을 전형적인 “형좌실우(形左實右, 겉만 좌파, 실은 우파)”라 비판했다. 10월 16일 천보다는 “혈통론”이 반동적이라 비판했다. 10월 24일 급기야 마오쩌둥이 입을 열었다. “학생들 일부는 출신 성분이 안 좋을 수도 있지. 설마 우리 모두 다 출신이 좋겠어?” 이 모든 발언은 이미 혁명의 주체로 급성장한 조반파의 활약에 대한 마오쩌둥 계열의 사후 승인이었다.


 

<“무산계급 혁명 조반파는 연합하여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을 끝까지 밀고 가자!"/ chineseposters.net>




그해 12월 혈통론을 외쳤던 탄리푸는 투옥되고 비투당했다. 보황파는 1966년 말에서 1967년 초 세를 잃고 와해된다. 중앙문혁의 지지를 받은 조반파가 홍위병의 주류가 되지만, 그들 역시 결국 마오쩌둥에 버림받고 말았다. 곧 이어 문혁의 바람이 교정을 넘어 노동자, 농민에까지 퍼져나갔다. 앞으로 보겠지만, 보황파와 조반파의 갈등은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무장투쟁으로 비화됐다.


2020년 7월 말 베이징대학의 비판적 지식인 정예푸(鄭也夫, 1950- ) 교수는 “누구를 위해 강산을 지키나?”란 문제의 칼럼에서 오늘날 중국정부는 집권세력과 특권세력의 보위에 천문학적 국부를 사용하는데, 그 자식들은 미주와 유럽에 살며 사치와 향락에 탐닉한다는 통렬한 특권층 비판을 쏟아냈다. “혈통이냐, 능력이냐?” 대대로 특권을 물려주는 “태자당”의 공화국에선 언제나 “그것이 문제로다.” <계속>


※ 필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최근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까치)를 출간했다. 중국 최현대사를 다룬 3부작 “슬픈 중국” 시리즈의 제 1권이다. 이번에 연재하는 ‘문화혁명 이야기’는 2권에 해당한다. 송 교수는 학술 서적 외에 국적과 개인의 정체성을 다룬 영문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2018)의 저자이기도 하다.

[<25회> 마오를 “계몽군주”라 숭배했던.. 홍위병들이 부른 파멸]

조선일보

케이콘텐츠

728x90

댓글()